"평생 유전자 분야를 연구해 온 사람으로서 '유전체 정보를 가지고 있으면 뭐가 좋은가'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내놔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선택한 것이 할리우드 배우 앤젤리나 졸리 덕분에 유명해진 브라카(brca 1, 2) 유전자입니다."
정밀의학 전문기업 마크로젠을 설립한 서정선 회장(한국바이오협회장)이 22년전 연구목적으로 설립한 한국유전체의학연구재단을 최근 '공우(空牛)생명정보재단'으로 이름을 바꾸고 첫 프로젝트로 유전성 유방암을 검사해주는 '브라카 스토리 캠페인'을 시작했다. 키워드는 '대중 속으로'다. 유전체 정보의 유용성을 널리 알리고, 나아가 개인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며 유전정보를 갖고 놀게 만들겠다는 전략이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100만원이 훌쩍 넘는 브라카 유전자 검사를 1000명에게 무료로 해주는 프로젝트다. 인종간 차이가 있긴 하지만, 사람들 중 0.5%가 브라카 유전자 돌연변이를 가지고 있다. 브라카1과 브라카2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있는 경우 유전성 유방암은 최대 80%, 난소암 발생 확률은 최대 49% 증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방암 환자들은 브라카 유전자 검사에 급여가 적용되지만, 가족력 때문에 불안한 사람들은 비싼 비용을 지불하고 검사를 받아야 했다. 공우 재단이 주목한 것도 이 부분이다.
서 이사장은 "1년의 준비 기간을 거쳐 지난 8월 말 국내 프로젝트를 론칭했다. 해외 협력기관과의 협약이 마무리되는대로 연내 글로벌 프로젝트로 확대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브라카스토리 홈페이지(www.brcastory.com)에 접속해 캠페인에 참여하면 50달러(약 5만 원)에 유방암 유전자검사를 받을 수 있다. 공우재단이 확보한 기금을 활용해 모든 유전자검사 비용을 지원하며, 마크로젠이 기술기부로 유전체 분석을 맡는다. 50달러는 검체 배송비와 평생 보관하는 서버 유지비용이다. 캠페인 초기 1,000명에 대해서는 마크로젠이 모든 비용을 후원해 무료로 검사할 수 있다. 단, 반드시 협력병원 의료진과 상담을 통해 대상자로 확인되어야 한다. 병원 진료비는 별도이다.
"수 천만명이 스마트폰을 사용하듯, 내 유전체 정보를 개인이 가지고 다니는 시대가 올 겁니다. 정보를 모으고 가두면서 독점하려는 시대는 끝났어요. 모두에게 정보를 줘서 유전적 취약성을 알고 위험을 피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나아가 앱스토어처럼 누구나 유전체 정보를 가지고 놀 수 있는 '놀이터'를 만들고 싶습니다."
서 이사장은 여기에 '풀뿌리 유전체학'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대상은 전 세계 74억 인구다. 브라카 스토리 소식을 접한 스리랑카 콜롬보 대학병원은 환자들 검체를 보내며 좋은 캠페인을 계속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브라카 유전자로 시작했지만, 다른 유전성 암 등으로 확장할 계획도 갖고 있다. 서 이사장은 "공우재단이 전 세계에서 정보를 받게 되면 철저히 관리하되 공익적 목적으로 오픈할 예정"이라며 "유전체 분석을 하면서 가장 먼저 데이터를 보게 되는 마크로젠 입장에서도 상업화 아이디어를 얻는 등 글로벌 빅데이터 컴퍼니로 도약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공우재단은 유전체 정보를 등록하면 보관해주면서 편리하게 검사·관리할 수 있는 등록사업과 기금을 통해 검사비용을 지원하는 후원사업, 유전체 빅데이터를 공유하는 연구지원 사업 등을 펼칠 예정이다. 무엇보다 유전체 분석의 문턱을 낮추고 누구나 활용할 수 있도록 교육과 캠페인에도 적극 나서겠다고 서 이사장은 밝혔다.
"2000년에 마크로젠을 세우고 인터뷰하면서 '우리는 외나무다리에서 구글과 만나는 회사가 될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공우재단을 시작하는 지금도 그 생각은 유효합니다. 모두가 세상의 정보를 빨아들이며 거대한 플랫폼을 만들고 있지만, 그 정보는 3분의 1밖에 안됩니다. 나머지 3분의 2는 사람, 유전체 정보가 만드는 거에요. 우리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 정보를 다 열어버릴 겁니다. 개인들이 유전체 정보를 가지게 될 때, 세상이 어떻게 바뀔지 기대가 됩니다."
[신찬옥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에 대해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