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에 들어가기만 하면 잘 팔리던 시대가 저물면서 패션업계가 유통망 재정비에 나섰다.
가성비를 중시하는 소비자가 많아지면서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는 중가(中價) 브랜드는 백화점에서 과감하게 철수시키고, 일부 고가 브랜드도 온라인 판매를 유도하며 비용 절감을 꾀하고 있다.
과거 백화점은 입점하기만 하면 손님들이 찾아오는 절대적인 유통망이었다. 하지만 SPA(제조·유통 일괄) 브랜드가 득세하고, 백화점을 찾지 않는 젊은층이 늘어나면서 패션업체들도 변화를 시도하고 있는 것.
패션업체 LF는 지난해 중가 브랜드인 질바이질스튜어트와 일꼬르소 백화점 매장 40여개를 철수시켰다. 백화점 수수료를 감안할 때 그만한 이익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후 가격을 낮춰 온라인에서만 판매하고 있다. LF 관계자는 "두 개 브랜드 모두 중가 브랜드로 백화점에서 판매해서는 이익을 내기 어려워 온라인으로 전환을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모(母) 브랜드인 질스튜어트를 비롯해 헤지스, 라푸마 등 고가 브랜드는 앞으로도 백화점에 집중해 판매하고 있다. 이 관계자는 "백화점에 맞는 브랜드와 온라인에 맞는 브랜드를 나눠 성격에 맞게 유통망을 활용, 효율적인 운영을 하겠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삼성물산 패션부문은 지난해 경쟁력 없는 브랜드를 아예 접은 이후 온라인 판매 확대에 힘을 쏟고 있다. 가격대가 비싼 고급 브랜드는 온라인 판매가 어렵다는 것이 업계 정설이었지만 고가 브랜드인 르베이지와 톰브라운, 10꼬르소꼬모를 자사 통합 온라인몰에 순차적으로 입점시켰다. 르베이지는 온라인 판매 첫 날 전체 매출의 20%가 온라인에서 나왔을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40~50대 여성을 위한 고가 브랜드로 가디건 가격이 160만~340만원, 풀오버 88만~120만원대지만 온라인에서도 순조롭게 판매되고 있다. 삼성물산 패션부문 관계자는 "인터넷과 모바일 환경에 익숙한 50~60대 소비자가 늘어나면서 고가 시니어 브랜드도 온라인에서 판매가 잘 되는 추세"라고 말했다. 10꼬르소꼬모의 에코백은 전년 대비 20배 이상의 판매율을 달성했다.
휠라골프도 백화점 철수를 전격 선언했다. 휠라골프는 내년 봄·여름 시즌부터 골프 전문점과 골프장 클럽하우스 등 홀세일(도매) 채널 중심으로 유통방식을 바꾸기로 결정했다. 지난 2년 간 골프의류 브랜드가 10개 이상 생겨나면서 경쟁이 격화된 만큼 유통에 투입되는 비용을 효율화해 수익성을 개선하기 위해서다. 휠라코리아 관계자는 "홀세일 채널로 전환하면 기존 유통방식을 활용할 때 들던 높은 마진을 낮출 수 있다"면서 "향후 안정적인 수익 창출을 기대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오는 8월 20개 백화점 매장을 접고, 절감한 비용은 골프의류와 골프화 라인 확대에 투자할 계획이다. 그 동안 일상복과 겸해서 입을 수 있는 라인, 필드에서 입을 수 있는 라인으로 나누어 출시했던 의류도 골프 전용으로 압축해 전문화를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휠라코리아는 앞서 속옷 브랜드 인티모를 백화점이 아닌 대형마트 위주로 유통해 성공한 경험을 갖고 있다. 지난 1997년 론칭한 이후 마트와 대리점을 통해서만 판매했지만 매출액이 805억원(2016년 기준)에 달하는 효자 브랜드다. 다만 스포츠 브랜드인 휠라와 휠라키즈는 백화점 중심 영업을 계속하며 투트랙 전략을 구사한다.
와이드앵글 같은 신생 골프 브랜드도 가격 경쟁력을 바탕으로 가두점 중심 영업에 성공한 사례가 있어 중가 브랜드의 백화점 이탈은 앞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한 패션업계 관계자는 "백화점에 30% 가량의 수수료를 지불하면 SPA나 가두점 브랜드와 도저히 가격 경쟁이 불가능하다"면서 "원단이나 디자인에서 큰 차이가 벌어지지 않기 때문에 고가 브랜드가 아니고서는 백화점 유통으로 버티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질바이질스튜어트와 일꼬르소 매출은 백화점 철수 이후 감소했다. 그러나 LF는 장기적으로는 이를 만회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백화점 수수료가 절감되고 온라인 고객이 점차 늘어나는 추세이기 때문이다. SK증권에 따르면 LF의 온라인 매출 비중은 2015년 16%에서 지난해 약 20%까지 높아졌다. 삼성물산 패션부문 역시 자사 통합몰SSF를 2015년 선보인 이후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첫해 5%에서 지난해 10%로 성장했다.
[강다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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