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한 방울로 암을 진단한다'는 기술개발 내용은 20여년 전부터 심심찮게 뉴스로 나왔지만 실제 의료현실에서는 잘 사용되지 않고 있다. 대부분 연구실에서 나온 기초기술 수준이거나 혈액속 종양 DNA가 워낙 미량이라 정확하게 검출할 기술이 필요했고 유전자 분석 결과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 지 등 많은 연구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특히 높은 검사비용은 상용화의 장애로 작용했다.
이런 가운데 차세대 염기서열분석(Next generation sequencing·NGS) 등 유전자 분석 기술을 배경으로 액체 생체검사(생검) 암진단 기술이 나와 주목을 받고 있다. 말초혈액 속에는 암 세포들이 깨지면서 나오는 DNA 조각들이 돌아다니는데, 액체생검은 이렇게 미량으로 존재하는 돌연변이 유전자를 찾아내 암을 진단하는 원리다. 액체생검을 활용한 암 진단 시장은 크게 동반진단용(이미 암이 발견된 환자를 위한 맞춤치료 등 목적)과 조기진단용(건강인을 대상으로 암 발견 위한 진단)으로 구분할 수 있다.
액체생검 기술은 전세계적으로도 아직 초기 단계이다. 조기진단용 제품 개발을 위해 유전자 염기서열 분석 기업인 미국 일루미나사가 작년초 신생 계열사 '그레일(Grail)'을 차렸다. 이 회사는 아마존 창립자 제프 베저스와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공동창립자 등에게서 1억달러를 투자받으며 화제를 모았다. 최재훈 한국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그레일은 불과 1년만인 이달초 9억달러를 추가로 유치하며 임상자금확보에 성공했다. 이는 시장의 기대가 그만큼 크다는 것"이라며 "업계에서는 액체생검이 점차 이 시장을 대체해 갈 것으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는 지노믹트리 등이 조기진단 시장을 타겟으로 진단키트 개발에 나서 지난달 식약처로부터 혈액으로 폐암을 진단하는 키트의 임상시험 승인을 받았다.
동반진단용 제품은 한걸음 더 나아가 정부 승인을 받는 제품이 잇따르고 있다. 작년 6월 로슈진단 액체생검 암진단 키트가 세계최초로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허가를 받았고, 우리 분자진단기업 파나진도 지난달 식품의약품 안전처에서 암 진단용 의료기기 허가를 받았다. 파나진이 개발한 '파나뮤타이퍼 EGFR 키트'는 액체생검으로 폐암 등 돌연변이를 검출할 수 있는 제품으로, 비소세포폐암 환자의 관찰과 맞춤치료에 사용되는 동반진단 시약이다. 김성기 파나진 대표는 "지난 2014년 연구용 제품을 완성했지만 조직검사 결과와 혈액검사 결과를 비교하고, 암으로 진단할 수 있는 기준을 설정하는 등 까다로운 임상절차를 거쳤다"면서 "이미 보편화된 실시간 분자진단 장비(Real-Time PCR)를 사용해 일선 병원에서 직접 진단이 가능한 것도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분자진단 기업 씨젠과 유전체 정밀의학 기업 마크로젠 등도 시장 진입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씨젠 관계자는 "그동안 분자진단 타겟시장의 63%를 차지하는 감염성 질환에 집중해왔는데, 앞으로 암 등 다른 질환으로 확대를 모색중"이라며 "기술은 다 확보된 상태라 내년쯤 액체생검 관련 제품을 선보일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달 상장을 앞둔 의료기기 업체 아스타도 액체생검 시장 주요 업체로 분류된다. 이 회사는 기존에 며칠이 걸리던 미생물 분석 시간을 분 단위로 단축시키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이 말디토프(MALDI-TOF) 진단시스템을 갖춘 회사는 전 세계에 브루커와 비오메리오, 아스타 3곳뿐이다. 아스타 관계자는 "우리는 표본 채취 자동화 시스템부터 단백질 패턴 분석, AI 정보 처리 역량을 겸비한 기업"이라며 "현재 유방암, 난소암에 대해서는 개발 완료 단계이며 다른 암질환 관련 DB를 확충하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 비씨씨 리서치에 따르면, 액체생검이 차지하는 시장은 2015년 16억달러로 추산되고, 매년 22.3% 성장해 2020년 45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최종락 세브란스병원 진단검사의학과 교수는 "액체생검은 미국 등 전세계 학자들이 열심히 연구·검증하고 있는 분야"라며 "다만 더 많은 근거들이 쌓여야 하기 때문에 실제 환자들에게 사용되기까지는 생각보다 오래 걸릴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 <용어 설명>
▷ 액체생검(Liquid Biopsy) : 혈액 등 체액 속 DNA에 존재하는 암세포 조각을 찾아 유전자 검사로 분석한다. 절개하거나 침을 찔러 넣어야 하는 조직 검사에 비해 빠르고 간편하며, 종양세포 특유의 돌연변이나 기타 유전적 변화를 분석하기 때문에 위양성(false positive·본래 음성이어야 할 검사결과가 양성으로 잘못 나오는 것) 판정 가능성도 낮다.
[신찬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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