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년 삼성그룹 역사상 '총수부재'라는 초유의 위기가 닥쳤다."
연간 매출만 300조원에 달하는 글로벌기업 삼성이 그야말로 패닉에 빠졌다. 법원이 17일 새벽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하면서 삼성은 전례없는 '총수 부재 사태'를 맞게 됐다. 1938년 삼성상회가 설립된 이후 삼성그룹 총수가 구속된건 이번이 처음이다. 2008년 삼성 특검때도 이건희 회장은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았다.
새벽까지 구치소 앞에서 밤새가며 결과를 기다리던 삼성 직원들은 큰 충격에 휩싸인 모습이었다. 삼성 미래전략실의 한 임원은 "법원이 우리의 결백을 믿어주지 않으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는데 비상상황이 벌어졌다"고 말했다.
삼성 미래전략실 임직원들은 영장 발부 직후 서울 서초동 사옥에 곧바로 모여 향후 대책과 비상경영시스템에 대한 논의에 들어갔다.
한 삼성 임원은 "이 부회장 구속으로 삼성그룹의 글로벌 경영 전략이 최소 3년 이상 늦춰지게 됐다"며 "그룹 총수가 뇌물 혐의로 기소된 상태에서 제대로 된 비즈니스 활동을 기대하기란 힘들다"고 우려했다. 이날 소집된 삼성그룹 수뇌부 회의를 통해 윤곽이 드러나긴 하겠지만 당분간 계열사와 사업부 대표들을 중심으로 집단경영체제가 구성될 전망이다.
사실 삼성 그룹의 경영시계는 이미 지난해 말 멈춰섰다.
연말에 발표되던 삼성그룹 사장단 인사가 기약없이 미뤄진 상태다. 사장단 인사가 미뤄지면서 각 계열사별 경영전략도 마련하질 못하고 있다. 계열사별로 CEO가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연간 경영전략을 짤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구체적인 투자전략이나 규모 결정, 임직원 신규 채용 일정 지연으로 이어졌다. 삼성의 올해 경영 계획이 사실상 모두 중단된 셈이다.
삼성 관계자는 "CEO와 임원진이 짜여져야 새로운 경영계획에 따라 신규 채용규모와 충원분야를 결정할 수 있다"며 "특히 이재용 부회장이 직접 결정하는 최우수 핵심인재인 글로벌 S급 인재 채용은 당분간 중단될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앞으로가 더 문제다. 이 부회장이 특검에 의해 기소되면 대법원 확정판결까지는 2년여의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이 기간동안 삼성은 최대한 보수적인 경영전략을 취할 가능성이 높을 전망이다. 인사폭을 최대한 줄이고 과감한 투자도 자제할 것으로 예상된다. 신규 인원 채용도 마찬가지다. 현상 유지 차원의 의사결정은 이루어지겠지만 공격적인 경영 판단은 보류할 것이란 전망이 많다.
지난해 등기이사 선임을 계기로 '책임 경영'에 나선 이 부회장의 새로운 삼성 만들기 행보도 당분간 중단될 전망이다. 이 부회장의 사법 처리가 결정된다면 법적인 지위가 제약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등기이사직에서 물러날 가능성이 크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최태원 SK 회장, 이재현 CJ그룹 회장 등도 사법 처리 직후 등기이사에서 물러났다.
그동안 활발히 진행중이던 삼성전자의 지주사 전환 작업도 무기한 연기될 가능성이 높다. 미래전략실 해체 작업도 당분간 어려울 것이란 예상이다. 전문경영인보다는 그룹 총수인 이 부회장이 직접 나서서 진행해야할 성격의 사안들이기 때문이다.
대규모 투자나 인수·합병(M&A) 분야에서도 이 부회장의 빈자리가 클 전망이다. 과감한 투자 결정이 필요한 반도체, 디스플레이 사업의 경우 자칫 적절한 타이밍을 놓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삼성전자가 새롭게 힘을쏟고 있는 전장산업 분야나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분야에서도 다른 글로벌 IT기업들과의 경쟁에서 아무래도 뒤쳐질 수도 있다. 그룹 전체적인 그림 속에 시너지를 고려해 결정해야하는 경영판단들이기 때문이다.
이 부회장이 활발히 전개하던 글로벌 경영에도 제동이 걸릴 전망이다. 이 부회장은 매년 4개월여를 해외에서 보내며 글로벌 기업인들을 만나 친분을 쌓고 사업에 대한 아이디어를 교환했다. 삼성전자가 작년 11월 80억 달러에 사들이기로 결정한 미국 전장기업 하만의 경우도 이 부회장이 직접 나서서 거래를 마무리한 사례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자칫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이 불법행위의 결과물로 인정돼 국민연금과 삼성그룹이 손해배상 소송 등에 휘말릴 경우다. 삼성 관계자는 "국내외 투자자로부터 동시다발적인 소송에 휘말릴 가능성이 있다"며 "이 경우 상당히 오랜기간 법적 공방이 벌어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 부회장에 대한 대법원의 최종 판결이 내려지려면 최소 2년은 걸리지 않겠나"라며 "삼성은 이 기간을 고스란히 허비하게 될 가능성이 크며 이로인해 글로벌 기업들 사이의 경쟁에서 도태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고 덧붙였다.
[송성훈 기자 / 김동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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