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님. 12월24일 오후 8시20분 46번 게이트에서 미국 로스엔젤레스(LA)로 가는 항공편이 출발합니다. 미리 준비해주세요.’
A씨가 인천공항 아시아나항공 비즈니스 라운지에 들어서자 스마트폰 모바일 항공권이 켜지며 알림 메시지가 뜬다. 최근 아시아나는 휴대폰에 저장된 티켓을 자동으로 인식해 사전에 비행 스케쥴을 알려주는 정보통신 설비(비콘)를 공항에 구축했다. 따로 항공권을 보여주지 않아도 라운지에 입장할 수 있도록 하면서 승객이 차분히 비행을 준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전용 장치다.
아시아나는 국적사로는 처음으로 내년 1분기 최신예 항공기(A350-900)에 기내 와이파이를 설치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승객 눈과 귀를 잡으려는 항공사간 기술 대전이 시작됐다. 해외 여행객은 늘어나는데 항공사 경쟁은 치열해지며 나타난 현상이다.
주요 취항지를 가상현실(VR)로 미리 경험할 수 있게 하고, 기내에 증강현실(AR·현실 이미지에 3차원 이미지를 겹쳐 보여주는 기술) 기기를 비치하는 것은 기본이다. 최근에는 대화형 안내 로봇까지 도입하는 등 잠재 승객을 잡기 위한 보이지 않는 IT 전쟁이 본격화하고 있다.
독일 항공사 루프트한자는 이번달부터 페이스북 메신저를 기반으로 한 대화형 로봇(마일드 레드)을 도입했다. 가장 저렴한 항공편과 클래스, 날짜 등 승객들이 궁금해 하는 비행 정보를 24시간 실시간으로 알려주는 시스템이다.
예를 들어 페이스북 검색창에서 ‘Lufthansa Best Price’를 찾아 독일에서 한국까지 가는 비행기를 물어보면 루프트한자 로봇 알고리즘이 구글 위치 정보 데이터베이스를 확인해 가장 가까운 공항과 최저가 항공권을 알려준다. 토르스텐 빈겐터 루프트한자 디지털혁신 부문장은 “디지털 환경이 빠르게 변화하면서 승객 피드백이 매우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VR 마케팅 바람도 불이 붙었다. 국내 최대 저비용항공사(LCC) 제주항공은 올 상반기 경기 수원역 AK타운에 일반인들이 직접 항공기(B737-800)를 조종할 수 있는 가상현실 시뮬레이터를 설치해 체험 마케팅에 나섰다. 시뮬레이터에는 실제 비행 교관이 배치돼 잠재 승객들이 직접 취항 도시까지 운항해볼 수 있도록 꾸몄고, 전략 취항지를 VR을 통해 미리 둘러볼 수 있도록 했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여행지를 직접 체험해 보는게 중요한 업종 특성상 가상현실을 통한 ‘경험 마케팅’ 약발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외항사들도 체험 마케팅 대열에 합류했다. 네덜란드KLM 항공은 최근 VR 기술 활용해 서울 삼성동 도심에서 암스테르담 등 네덜란드 명소 체험할 수 있는 전용 전망대를 설치했고, 중동계 항공사 에미레이트 항공은 8월 세계 최초로 AR 기술이 들어있는 편의 장비를 전 기내에 도입했다. 에미레이트 항공 모바일 앱을 스마트폰에 다운받은 후 칫솔, 수건 등 각종 편의 제품이 들어있는 주머니(어메니티 키트)를 스캔하면 AR이 접목된 여행 정보, 음악 등 각종 비주얼 콘텐츠를 접할 수 있다.
한 항공 전문가는 “비행기 승객들은 통상 구매력이 좋고 유행에 민감한 경우가 많다”며 “한발 앞선 정보통신(IT) 기술로 편의성을 높이려는 차별화 전략이 두드러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김정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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