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해운발 물류대란의 최대 피해자인 수출입업계에서는 거래한 포워딩업체(운송에 관한 제반 업무를 대행하는 업체)의 능력에 따라 희비가 엇갈린 것으로 나타났다.
19일 수출입업계에 따르면 경험이 많은 포워딩업체들은 한진해운이 불안하다고 판단해 미리 화주들을 다른 해운사로 유도했다. 반면 위기를 미리 감지하지 못하고 한진해운 선박에 화주들의 짐을 실은 포워딩업체들은 대규모 손실 위기에 처했다.
북미지역 한 하이퍼마켓 체인의 한국지사는 2개월 전부터 한진해운 대신 다른 해운사를 이용해 화물을 운송, 물류대란의 여파를 피해갔다. 이 업체 한국지사장은 “2개월 전 포워딩업체 측에서 한진해운이 불안하니 해운사를 바꾸겠다는 통보를 해왔고, 이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 포워딩업체는 북미지역을 향하는 화물 운송을 대행하는 경험이 많은 곳”이라며 “화물 운송은 포워딩업체에 일임하는 편”이라고 전했다. 이 업체의 한국지사는 한국산 상품을 매입해 캐나다 매장에 공급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반면 화주보다 정보가 느려 큰 손실을 입힐 뻔한 포워딩업체도 있다. 한진해운 선박에 미국산 멜론을 실어 부산항으로 들여오려다 하역이 중단돼 발을 동동 구르던 한 과일 수입업체는 뉴스에서 하역 재개 소식을 듣고 포워딩업체를 재촉해 물건을 건졌다.
문제는 포워딩업체가 하역 재개 소식을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 이 업체 관계자는 “미국산 멜론은 당도가 높은 대신 신선도가 빨리 손상된다”며 “하마터면 야적장에 멜론이 방치돼 물건을 다 버릴 뻔 했다”고 회상했다. 문제의 포워딩업체는 이 수입사 고위직의 지인이 운영하는 회사로, 수입 물류 대행 업력이 길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에서 한국으로 수입하는 물류 대행을 처음 맡았다가 문제를 일으킨 포워딩업체도 있다. 가축사료를 제조하는 업체로부터 미국에서 주정박(에탄올을 짜고 남은 옥수수 찌꺼기)을 수입하는 업무를 받은 포워딩업체는 저렴한 운임 때문에 한진해운 컨테이너선에 화물을 실었다. 미주지역에서 아시아를 향하는 화물은 제품보다 원재료가 많아 컨테이너선 운임이 벌크선보다 저렴하게 책정되기도 한다.
하지만 화물을 실은 한진해운 선박이 항만에 입항하지 못하고 바다 위에 떠 있게 되면서 사료업체는 컨테이너 수 백개에 나눠 담은 원료를 제 때 공급받지 못해 생산 일정에 차질이 생겼다. 사료업체 관계자는 “주로 동남아시아 지역 노선을 오가는 화물에 대한 업무를 대행하던 이 포워딩업체는 이번에 미주지역에서 들여오는 화물에 대한 일을 처음 맡았다”며 “일정 시간 이상 입항이 지연되면 구매를 취소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료업체가 원료 구매를 취소하면 포워딩업체는 물품대금을 내놓고 늦게 도착한 화물을 떠안아야 한다.
이번 한진해운발 물류대란 사태로 화주들은 거래 상대방과 약속을 지키지 못해 피해를 입었다. 화주가 입은 손해는 우선 포워딩업체가 배상해야 한다. 포워딩업체는 추후 한진해운에 손해 배상을 청구할 수 있지만 한진해운이 이를 책임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정부 합동대책 태스크포스(TF) 관계자는 “한진해운이 손해를 배상할 여력이 없어 중소 규모의 포워딩업체들은 (생존이) 위험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11일 주형환 장관 주재로 긴급 수출 애로 점검회의를 열고 한진해운 사태로 어려움을 겪는 중소 포워딩업체들에 긴급경영안정자금 4000억원을 지원키로 했다. 긴급경영안정자금은 업체당 5억~20억원 한도로 지원된다. 포워딩업체들은 이 자금을 활용해 한진해운 선박에 실었던 화물을 최종 목적지로 보내는 대체 운송수단을 마련하고, 화주들이 입은 손해를 배상할 예정이다.
[디지털뉴스국 한경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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