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직장인 스즈키씨는 매년 연말 즈음에 습관처럼 후루사토납세 사이트를 찾는다. 연봉 약 600만엔의 기혼자인 스즈키씨가 기부할 수 있는 한도액은 대략 6만5000엔. 스즈키씨는 전국 각지 지자체에 1~2만엔씩 나눠 기부금을 낸다.
기부금을 낼 때는 지자체가 주는 답례품을 보기도 하지만 학창시절을 보냈던 지역이나 지진, 홍수 등의 재해 피해를 입은 곳에는 답례를 바라지 않고 기부를 한다. 스즈키씨가 기부한 돈 가운데 2000엔이 넘는 6만3000엔은 모두 정부(소득세)와 지자체(주민세)로부터 되돌려받기 때문에 실제로 그가 부담하는 돈은 2000엔이 불과하다. 이런 구조 때문에 후루사토납세는 ‘2000엔으로 호화로운 답례품을 받을 수 있는 제도’로 알려져있다.
총무성에 따르면 지난해 기부금 1653억엔 가운데 약 40%가 답례품을 구입·배송하는 데 쓰인것으로 나타났다. 지방재정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부분은 60%라는 의미다. 그러나 40%의 답례품도 대부분 과일, 야채 등 지역 농산물이나 특산물을 구입하는 데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지역 경제를 활성화시키는 효과도 있다. 지난해 후루사토납세가 4.3배나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은 기부액 한도를 두 배로 늘리고 라쿠텐 등 인터넷 쇼핑몰 서비스가 늘어난 덕분이다. 특히 아베 정권의 핵심인사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정부 대변인)이 정책의 키를 잡고 후루사토납세제도 확대를 독려하고 있는 것이 커다란 힘이 되고 있다.
후루사토납세는 아베 1차 정권 때 도입이 결정됐는데 스가 장관은 “당시는 물론 2차 정권 들어서도 후루사토납세를 정착시켜야 한다”며 강력한 시행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후루사토납세는 구조적으로 수도권에 몰릴 수 밖에 없는 세금을 지방으로 이전시키는 효과를 낸다. 총무성에 따르면 올해 도쿄와 수도권 3개현(가나가와현, 치바현, 사이타마현) 주민세는 전년 대비 469억엔 감소했다. 후루사토납세가 확대되면서 수도권 주민세가 지방으로 흘러들어간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지난해 후루사토납세 1위를 차지한 미야자키현 미야코노조시는 42억엔(460억원) 이상을 끌어모았다. 미야코노조시는 지역에서 나는 고기와 전통술을 기부자들에게 답례품으로 제공해 큰 호흥을 얻었다. 지자체들은 후루사토납세를 연결고리로 삼아 지역경제를 되살리기 위한 다양한 아이디어를 강구하고 있다. 홋카이도는 9월부터 1만엔 이상 기부자들에게 답례품으로 도내 온천시설이나 동물원 이용권, 이벤트 참가권 등을 보내주고 있다. 단순히 선물을 보내주는 것을 넘어서 휴가나 연휴 때 홋카이도를 찾도록 유도, 지역경제 활성화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다.
후루사토납세는 지자체가 어려움에 빠졌을 때 납세자들이 온정의 손길을 보내는 창구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다. 지난 4월 진도7.0 강진이 덮친 규슈 구마모토현이 대표적이다. 구마모토현에 따르면 강진후 1개월만에 22억8000만엔 규모의 후루사토 납세 기부금이 답지했다. 지진 피해를 복구하느라 대단한 답례품을 제공하지도 못했지만 작년 1년간 받은 기부금의 무려 24배에 달하는 기부금이 한꺼번에 몰렸다. 각 지자체의 후루사토납세 답례품을 비교하고 고를 수 있도록 만든 인터넷 사이트들도 구마모토 기부를 독려하며 분위기를 조성하기도 했다.
다만 기부금을 한 푼이라도 더 받기 위한 지자체간 경쟁이 과열양상을 보이면서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지자체 입장에서는 기부금 1만엔을 받기 위해 1만엔어치 지역특산품을 답례품으로 내놔도 손해볼 게 없는 장사다. 지자체 재정에는 도움이 안되지만 지역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오히려 지자체 재정에서 일부 출혈을 감수하고서라도 답례품 공세를 펴는 것은 이때문이다.
경쟁이 과열되면서 일부 지자체는 거액을 기부할 경우, 지역 특산물과 전혀 관련없는 아이패드와 같은 전자제품을 답례품으로 내놓거나 돈이나 다름없는 금권(상품권 등)까지 선물목록에 올려놔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고 있다.
납세자 형평성 논란도 불거지고 있다. 후루사토납세는 소득이 높을수록 이에 비례해 세금공제혜택이 커지는 구조다. 예를 들어 자녀2명(고교·대학생)을 둔 직장인의 연봉이 300만엔인 경우, 기부상한액은 1만1000엔에 불과하다. 반면 연봉 2500만엔의 고소득자는 81만8000엔까지 기부가 가능하다. 연봉 2500만엔 고소득자는 실질적으로 2000엔만 부담하면 81만8000엔에 달하는 ‘답례품 쇼핑’을 즐길 수 있다.
지난해 무려 18억엔의 기부금이 몰려 화제가 된 치바현 오타키쵸는 이같은 논란을 불러일으킨 대표적인 지자체 중 한 곳이다. 2014년 말 오타키쵸가 기부금의 70%를 금권(상품권)으로 지급하기로 결정하자 부유층들의 기부가 폭발적으로 늘었다. 연봉 1억엔 직장인이 400만엔을 기부하면 오타키쵸에서 기부액의 70%인 약 280만엔의 상품권을 받게 된다. 어짜피 내야할 세금 400만엔의 납부처를 오타키쵸로 돌린 대가로 280만엔(2000엔만 자기부담)의 절세효과를 본 것이나 다름없다. 고소득층일수록 절세효과는 더욱 커진다. 논란이 커지자 오키타쵸는 금권 답례품을 지난 5월 폐지했다. 총무성은 부랴부랴 가전이나 금권은 답례품으로 주지 말 것을 각 지자체에 요청하는 등 대책 마련에 들어갔다.
일부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기는 하지만 후루사토납세가 도입 8년 만에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이며 정착단계에 접어들자 이에 고무받은 일본 정부는 올해부터 ‘기업판’ 후루사토납세도 본격 도입에 나섰다. 기업이 지자체 고용창출이나 저출산대책 등 지역활성화에 도움이 되는 사업에 기부를 할 경우, 기부액의 최대 60%를 법인세나 법인주민세·사업세 등에서 손금처리해주는 제도다. 현재도 기부액의 30%를 손금으로 인정해주고 있는데 두 배로 확대해 후루사토납세를 본격적으로 확대해가겠다는 복안이다. 다만 기업에 대해 지자체가 답례를 하는 것은 부정 논란 소지가 있기 때문에 허용되지 않는다.
[도쿄 = 황형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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