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모바일 시대에 제때 대응하지 못해 수세에 몰렸던 일본 기업들이 시장 주도권을 다시 쥐기위한 대반격에 나서며 분위기를 반전시키고 있다.
소프트뱅크와 도시바는 영국·미국 기업 인수와 공동투자를 통해 모바일 반도체 시장 입지를 단숨에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전자왕국 일본의 상징이었던 소니와 닌텐도는 모바일 핵심 센서와 게임으로 돌파구를 찾고 있다.
변화에 대한 대처가 느린데다 한 우물에만 집착하다 실패했던 일본 기업들이 한국보다 빠르고 과감한 변신을 시도하고, 도전을 두려워하지는 않는 벤처정신으로 부활하고 있다는 평가다. 때문에 스마트폰, 모바일 반도체와 게임에서 강세를 보여왔던 한국 기업들에게 앞으로 상당한 위협이 될 것이라는 경고가 잇따르고 있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사장의 영국 반도체 설계회사 ARM 인수 소식이 이후 일본 재계에서는 “손정의만이 할 수 있는 승부수”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2013년 미국 스프린트 인수후 불어난 부채와 경영악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와중에 36조원이라는 엄청난 금액을 베팅, 신성장 동력을 찾아나선 손 사장의 승부사 기질이 다시 한 번 발휘됐다는 평가다.
시장에서는 “일대일생의 도박”이라는 우려와 함께 소프트뱅크 신용등급 하락 경고와 주가 폭락이 이어졌지만 손 사장은 전혀 개의치 않고 있다. 손 사장은 닷컴 시절 야후, 알리바바 등에 투자한데 이어 보다폰 일본통신자회사(현 소프트뱅크) 인수, 스프린트 인수 등 굵직굵직한 M&A에 승부를 걸어왔다. 이번 ARM 인수는 매출 10조엔 이상의 대기업을 일군 지금까지도 도전 벤처정신이 살아있다는 것을 입증했다는 진단이다. 손 사장은 “모바일 이후는 사물인터넷(IoT)”이라며 인공지능(AI) 로봇 등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해나가겠다는 야심을 감추지 않고 있다. 손 사장의 베팅으로 일본은 스마트폰 두뇌인 AP(마이크로프로세서) 설계의 95%를 도맡아하고 있는 핵심기업을 손에 넣으면서 한국, 미국 등에 밀려 고전해온 반도체 재건의 계기를 마련했다.
소프트뱅크에 앞서 부정회계로 촉발된 구조조정 마무리에 들어간 도시바도 낸드 플래시 분야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기로 했다. 도시바는 샌디스크를 인수한 미국 웨스틴디지털(WD)과 미에현 욧카이치공장에 3년간 1조5000억엔(약 16조원)을 투자해 3D 낸드 플래시 생산라인 증설에 나서는 등 삼성전자와의 정면승부를 준비하고 있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이 보도한 바 있다. 도시바는 지난해 부정회계가 발각된 이후 불과 1년 만에 가전 매각 등 빠른 속도로 구조조정을 진행, 실탄을 확보한뒤 반도체 분야에 집중투자할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
한때 전자·게임왕국으로 불리며 눈부신 성장을 했지만 스마트폰 시대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실패 경영의 대명사’로 전락했던 소니와 닌텐도의 부활은 더욱 극적이다. 닌텐도는 증강현실(AR)을 적용한 스마트폰 게임 ‘포켓몬고’로 전세계에 신드롬을 일으키며 부활하고 있다. 출시된 지 채 보름이 안됐고, 정작 일본 내에서는 아직 출시도 되지 않은 게임 하나 덕분에 닌텐도 주가는 2배 이상 껑충 뛰었다. 19일에도 닌텐도 주가는 무려 14%나 급등하며 시가총액(4조5000억엔·48조원)이 닛산자동차(4조5700억엔) 수준까지 육박했다. 닌텐도는 게임보이·닌텐도DS·위(Wii) 등 자체 콘솔게임기와 수퍼마리오 같은 빅히트 게임에 취해 스마트폰을 외면하다 최근 10년 사이에 매출이 3분의 1 토막이 나면서 위기에 봉착했다.
하지만 지난해 경영쇄신에 나서면서 스마트폰 시장 진출을 선언한 후 불과 1년여만에 대히트작을 만들어내며 존재감을 각인시키고 있다. 포켓몬 등 그 동안 쌓아온 캐릭터 지적재산권을 최대한 활용하고, AR이라는 신기술을 접목하는 과감한 전략을 편 것이 주효했다는 분석이다. 이번에 히트를 친 포켓몬고는 닌텐도의 지적재산권 관리회사인 포켓몬컴퍼니와 게임개발사 나인앤틱이 합작해 만든 것이다. 닌텐도는 그동안 쌓아온 캐릭터 지적재산권이 방대한 데다 스마트폰 뿐 아니라 기존에 강점을 갖고 있던 게임기 신제품 출시도 예고하고 있어 모바일 게임 시장에 일대 변혁을 가져올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2년 전까지만 해도 애플과 삼성전자에 밀려 자체 제조 스마트폰이 설자리를 잃으면서 1958년 상장 이후 처음으로 배당을 하지 못했을 정도로 경영위기에 몰렸던 소니도 빠른 속도로 명성을 되찾고 있다.노트북 등 수익이 나지 않는 사업부를 분사시키고, 좀처럼 회복 기미가 없는 스마트폰 제조 대신 스마트폰 모바일 핵심부품인 영상센서와 게임기 플레이스테이션(PS)을 두 축으로 구조개혁을 한 것이 주효했다. 사물인터넷(IoT)과 함께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는 영상센서 강화를 위해 최근 도시바에서 센서 관련사업을 사들인 것은 두 회사 모두에게 윈윈이 되는 거래였다는 평가다. 히라이 가즈오 소니 사장은 최근 “2017년도에 (20년래 최고치인) 5000억엔 이상의 영업이익을 달성하겠다”며 소니가 완전히 회복 단계에 접어들었음을 선언한 상태다.
[도쿄 = 황형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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