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스바겐의 디젤게이트 이후 디젤엔진 배기가스가 미세먼지 오염의 주범으로 지목되면서 디젤엔진의 신차 출시가 급속도로 줄어들고 있다. 국내는 물론 수입 완성차 업체들은 최근 디젤 대신 가솔린과 하이브리드 위주의 신차 출시에 나서면서 업계 판도가 변화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20일 한국GM 관계자는 “최근 디젤 엔진에 대한 여론 악화를 고려해 말리부 디젤 엔진을 당분간 출시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전 세대 말리부에서 디젤 모델이 누렸던 높은 인기를 고려해봤을 때 이번 결정은 다소 이례적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 해 1월부터 11월까지 1세대 말리부 판매량에서 디젤 모델이 차지하는 비중은 전체 1만5177대 중 6991대인 46%였다. 관계자는 “디젤 엔진을 개발할 능력은 충분히 갖춰져 있지만 현재 국민 정서를 고려했을 때 적절한 타이밍이 아니라고 생각된다”라고 말했다.
한국GM 말리부는 2세대 모델이 본격 판매되기 시작한 지난 달 3340대가 팔리며 전년 동월 대비 169% 성장할 정도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하지만 현재 트림 구성이 1.5터보, 2.0터보 등 모두 가솔린 엔진으로만 구성돼 있어 인기 고공행진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파워트레인 추가가 필수적이다.
한국GM은 디젤 엔진이 빠진 자리에 하이브리드를 추가해 새로운 고객 수요를 잡겠다는 계획이다. 말리부 하이브리드는 1.5kWh 리튬이온 배터리와 1.8리터 에코텍 엔진, 2개의 전기모터를 탑재했으며 복합연비는 리터당 17.1km 수준이다. 말리부 가솔린 하이브리드 모델은 이르면 7월 중 출시될 예정이다.
현대차 고급 브랜드 ‘제네시스’ 역시 EQ900와 G80의 디젤 모델 국내 시장 출시를 보류했다. 일단 이번 달 부산모터쇼에서 공개된 G80의 2.2 디젤 모델 국내 출시 일정을 연기한 것. 현대차에 따르면 내년 하반기 출시 예정이던 EQ900 디젤 모델 계획도 재검토 중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최근 국내에서 디젤 엔진 신뢰도가 많이 떨어진 상태”라며 “당장의 출시를 보류하고 엔진 완성도를 높이겠다”라고 말했다.
변화는 디젤 엔진 판매 비중이 70%에 육박하는 수입차 업계에서도 감지된다. 아우디는 최근 신형 A4를 출시하면서 가솔린 모델 2개 차종만을 내놨다. 아우디 관계자는 “최근 디젤 엔진 인증을 받는 절차가 다소 까다로워졌다. 수입차 업계에서 같은 이유로 디젤엔진 도입을 주저하고 있는 브랜드가 상당수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해 구형 아우디 A4 전체 판매량(4943대) 중 디젤 모델의 판매(4769대) 비중은 96%였다. 폭스바겐도 신형 파사트를 가솔린 모델로만 출시했다. 벤츠 또한 하반기 신형 E클래스를 출시할 때 디젤 모델은 단 한 개만 포함할 계획이다.
실제 전체 수입차 시장에서는 디젤차 판매 비중이 떨어지고 있다. 2008년부터 지속 상승해 오던 수입차 시장 디젤 차량 판매 비중은 지난해 68.85%로 정점을 찍고 올해 들어 66.43%로 하락세로 전환했다. 반면 2003년부터 해마다 떨어져 온 수입차 시장 가솔린 차량 판매 비중은 지난 해 26.95%로 저점을 찍고 올해 들어 5월까지 28.31%로 반등세다. 하이브리드 판매 비중도 처음으로 5%를 넘어섰다.
이러한 경향은 지난 주 폐막한 부산모터쇼에서도 그대로 관측됐다. 업체들이 선보인 46종의 신차 중 랜드로버 레인지로버 이보크와 폭스바겐 티구안을 제외하고는 디젤 신차를 찾아보기 어려웠던 것이다. 반면 기아차가 K7 하이브리드와 K5 플러그인하이브리드를, 한국GM이 플러그인하이브리드인 볼트(Volt)를 선보이는 등 친환경차 신차 공개가 두드러졌다.
업계에서는 디젤차의 입지가 좁아지는 것이 결코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고 보고 있다. 김필수 대림대학교 자동차학과 교수는 “배출가스 기준 이하를 충족한 디젤차에 대한 환경개선 부담금 면제 등 구매 혜택이 없어지는 등 디젤차에 대한 압박은 날로 심해지고 있다”며 “이에 따라 소비자 구매 심리가 위축되고 있다. 수입 승용차 시장에서 디젤 판매 비중이 70%를 넘나들던 시절은 다시 오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박창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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