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연구진이 3세대 유전자 가위 기술을 능가하는 4세대 유전자 가위를 활용해 생쥐의 유전자를 교정하는데 처음으로 성공했다. 유전공학의 최첨단 분야인 유전자 가위 기술에서 그동안 미국, 중국 등과 경쟁해온 한국은 이로써 기술적 우위를 점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김진수 기초과학연구원(IBS) 유전체교정연구단장과 바이오기업 툴젠 공동 연구팀은 'Cpf1' 효소를 장착한 새로운 유전자 가위가 현재 사용되고 있는 3세대 유전자 가위 기술인 '크리스퍼 CAS9'에 비해 정확도가 월등히 높음을 확인했다고 6일 밝혔다. 공동 연구팀은 이 기술을 활용해 쥐의 유전자를 교정해 돌연변이 쥐를 만들어내는데 성공했다.
또 이상욱 울산대 의대 교수 연구팀도 Cpf1을 활용해 생쥐의 유전자가 갖고 있는 기능을 없애는데 성공했다. 두 연구팀이 발표한 3건의 논문은 세계적 학술지인 네이처 바이오테크놀로지 6일자(현지시간)에 동시에 게재됐다.
유전자 가위란 생명체의 기본 단위인 유전자를 잘라내는 기술이다. 병에 걸렸거나, 병을 유발하는 유전자만을 제거해 질병을 치료하는데 적용된다. 인간이 아닌 동·식물에 적용할 때는 유전자 교정이나 제거를 통해 신약개발, 농작물 생산량 증대 등을 기대할 수 있다. 인간에 이 기술을 사용하는 것이 극히 제한적으로 허용되고 있지만, 불치병 치료 등을 실혈할 수 있는 미래기술로 각광받으며 개발경쟁이 치열하게 펼쳐지고 있다.
공동 연구팀은 소위 크리스퍼 가위라고 불리는 '크리스퍼 CAS9'의 CAS9을 Cpf1으로 바꿔 연구를 진행했다. CAS9은 특정 DNA를 자르는 효소다. Cpf1은 지난해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의 장펑 교수팀이 발견했지만 DNA를 정확히 자르는지 등 작동여부는 입증되지 못해 왔다. 연구팀은 자체 개발한 '절단 유전체 시퀀싱' 기술을 활용해 처음으로 Cpf1 유전자 가위의 정확성을 규명해냈다. 절단 유전체 시퀀싱 기법은 유전자가위 처리 전과 후를 한 눈에 파악해 잘린 위치를 구별해 내는 기술이다.
김 단장은 "Cpf1를 이용해 인간 유전체 DNA 32억개 염기서열 중 표적 위치만 정확히 자르고 원치 않는 부분은 한군데도 자르지 않았다"며 "CAS9과 비교했을 때 높은 정확성을 갖고 있음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공동 연구팀은 이번에 Cpf1의 정확성을 입증하기 위해 생쥐를 대상으로 실험을 시도했다.
연구팀은 생쥐의 배아에서 면역체계와 백색증에 관여하는 유전자인 'Foxn1'과 '티로시나아제'를 제거하는데 성공했다. 두 유전자가 제거된 생쥐는 털이 빠지거나 하얀색 털이 나는 돌연변이 현상을 나타내 유전자 가위가 제대로 작동했음이 확인됐다. 이상욱 교수팀도 별도의 논문을 통해 Cpf1을 이용해 쥐에서 특정 유전자를 제거하는데 성공했다.
2000년대 초반부터 R&D가 활발하게 진행된 유전자 가위는 1세대인 '징크핑거'와 2세대 '탈렌'을 거쳐 현재는 3세대 기술인 크리스퍼 CAS9이 주로 활용되고 있다. 가격이 비싸고 실험과정이 복잡한 1~2세대 유전자 가위와 비교해 3세대 유전자 가위는 저렴하고 간편해 많은 과학자들이 연구에 뛰어 들었다. 현재 유전자 가위를 활용해 병충해에 잘 견디는식물은 물론, 근육량을 늘린 돼지 등이 이미 개발됐으며 미국에서는 혈우병과 에이즈 치료제 개발을 위한 임상시험을 앞두고 있다.
공동 연구팀의 Cpf1을 활용한 유전자 가위가 3세대보다 정확도 면에서 우위가 입증된 만큼 향후 유전자와 줄기세포 치료제 개발, 고부가가치 농축산물 품종 개량 등에 널리 활용될 것으로 예상된다. 유전질환의 원인이 되는 돌연변이 DNA를 교정하거나 부작용 없는 항암세포 치료제 개발도 가능하다.
김 단장은 "유전자 가위를 실제 적용할 때는 표적 DNA의 정확성 뿐 아니라 원하지 않는 DNA는 건드리지 않아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것도 중요하다"며 "Cpf1 기술은 앞으로 생명공학과 분자의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원호섭 기자 / 이영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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