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 노동조합원들이 29일부터 상경해 시민 선전전과 거리 시위를 벌이고 있는 가운데 대주주인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의 사재출연을 요구하고 나서서 논란이 되고 있다. 한진해운 자율협약(채권단 공동관리) 신청과 관련,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사재출연 요구가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주장은 같은 주장이 제기돼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대주주 사재출연은 기업구조조정촉진법 등 법률에 근거가 있지는 않다. 다만 채권단이 자율협약 등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대주주가 책임감을 보이는 상징적인 조치로 이뤄졌을 뿐이다. 이른바 ‘국민정서법’에 따른 것이다.
현대중공업의 경우 경영난을 겪고 있고 있지는 하지만 채권단 공동관리나 회생절차에 돌입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노조의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분석이 많다.
현대중공업 노조 관계자는 “정몽준 이사장은 지난 10여년간 배당으로 3000억원을 받아갔다”며 “회사가 어려워졌다고 임직원 구조조정에 나설 것이 아니라 대주주가 사재출연 등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 이사장은 현대중공업 지분 10.15%를 갖고 있는 최대주주다.
노조 측은 29일 오후 서울 정부세종로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노조와 합의없이 구조조정을 진행할 경우 단호히 대처하겠다”며 이 같은 대주주 책임론을 들고 나왔다. 노조 측은 현대중공업 사내유보금이 13조원에 이르고 있지만 늘 근로자들의 희생만을 강요해왔다는 점을 지적했다. 회사가 호황일 때는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근로자 복지 향상에 소홀하더니 불황이 되자 더 근로자들을 압박하고 있다는 것이 주된 불만의 요지다.
이에 대해 회사 측은 최근 대주주 사재출연이 이뤄진 현대상선 등과는 전혀 상황이 다르다고 반박했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공적자금이 1원이라도 투입됐다면 사재출연 논란이 생길 수 있겠지만 현대중공업은 현재 전혀 그런 단계가 아니다”고 반박했다.
이 관계자는 “사내유보금이 투자 등으로 사용되야 한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실제 가용 현금은 1조 3000억원 규모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현대중공업 최고경영진은 이런 수주 가뭄이 지속되면 내년부터는 일감이 대폭 감소해 더욱 큰 어려움이 예상된다는 점을 수없이 강조하고 있다. 현대중공업 노조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회사 측에 연 4000억원 이상 부담이 들어나는 임단협 개정안을 제출한 바 있다. 노조는 다음달 4일 울산조선소에서 임단협 투쟁 출정식을 하고 강경 투쟁에 나설 예정이어서 논란이 지속될 전망이다.
한진해운 유동성 위기와 관련, 한진그룹은 사재출연을 논의할 사항이 아니라는 반응이다. 한진그룹 관계자는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한진해운이 유동성 위기에 빠지자 구원투수로 들어가 무보수로 노력했다”며 “이런 점을 감안해야 한다”고 말했다.
주식회사는 손실 발생시 주주들이 지분에 따라 이익을 보고 손실을 보는 것이 기본 원칙인데, 부실기업 부채를 오너가 사재출연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은 주식회사 제도의 기본 원칙을 훼손하게 된다는 반박도 있다.
다만 대주주 사재출연이 공익적 목적에서 고용과 연계해 생각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박양진 법무법인 대륙아주 변호사는 “조선, 해운 구조조정 과정에서 대규모 실업사태가 불가피하다”며 “회사가 좋은 때 배당 등 이익을 많이 챙겼던 대주주가 적어도 국민 세금으로 구조조정 받을 때는 실업 사태에 대해 나 몰라라 해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박 변호사는 “사재 출연에 대한 법적 근거가 없는 상태에서 이를 강요할 수는 없다”면서도 “대주주가 고용 등 사회 안전망을 위한 기금에 출연하는 방식을 고려해볼 만 하다”고 말했다.
[박용범 기자 / 김정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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