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 금융위원회가 구조조정 재원 마련을 위한 태스크포스를 구축하기로 하면서 그 방법론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이 ‘한국판 양적완화’에 대해 긍정적이고 밝히면서 논의에 탄력이 붙을 전망이다.
다만 아직 논의에 본격 착수하기 이전인 만큼 다양한 방법론이 언급되고 있다. 앞서 새누리당이 제시한 한국은행의 산업은행채 매입안부터 금융위원회가 주장하고 있는 국책은행 출자론, 40조원에 달하는 금융안정기금 투입 방안, SPC(유동화전문회사)를 활용한 시중 자금 조달 방식까지 다양하다. 장단점을 비교해 본다.
1. 재정+발권 통한 산은 수은 출자
구조조정 재원을 마련하기 위한 첫째 방안으로 꼽히는 것은 재정 투입과 발권으로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에 출자하는 것이다. 출자를 통해 구조조정 마중물을 마련하자는 이유는 이들 은행의 실탄 소진에 있다. 현재 국제결제은행(BIS)이 권고하는 위험가중자산 대비 자기자본인 BIS자기자본비율은 14% 선이다. 하지만 수출입은행은 9.89%, 산업은행은 14.3% 수준이다. 특히 수은은 부실 채권을 털어내지도 않은 상태에서 BIS 비율이 낮다보니 자본 확충이 절실한 상황이다. 수은의 위험가중자산은 120조원이고 자기자본이 11조원 이다보니, 자기자본을 현재 보다 5조원 이상 확충해야 BIS비율이 14%로 올릴 수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산업은행은 당장 자본 확충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재정·통화당국 차원의 자본 확충이 도움이 될 수는 있다”면서도 “다만 이미 상당수 부실기업은 손실이 반영돼 있는 만큼 현재로선 은행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구조조정이 본격화되고 이들 은행의 위험가중자산을 다시 평가할 경우 얘기가 달라질 수 있다는 평이다.
앞서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새누리당의 양적완화는 산업은행의 산은채를 사서 산업은행의 유동성을 공급하는 것이지만 금융위가 추진하는 것은 산업은행이 손실을 감당할 수 있도록 자본력, BIS비율 늘릴 수 있는 자본 확충”이라며 “선제적으로 자금을 확충해 구조조정을 하더라도 BIS 비율은 현재 수준이 유지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가능한 자본 확보 방식은 정부와 한은의 공동출자다. 우선 정부는 세계잉여금 2조5277억원 중 국가채무 상환 등에 써야할 금액을 제외한 1조2386억원과 한국전력 LH 등 정부 보유 지분 등을 현물 출자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한국은행은 말을 아끼고 있다. 구조조정 재원마련 TF에서 더 논의를 해봐야한다는 입장이다.
수은에 대한 출자는 현행법으로도 가능하다. 하지만 산은에 대한 출자는 법 개정이 선결돼야한다. 현재 여소야대 국면이기 때문에 야당이 반대할 경우 어려워질 수 있는 대목이다.
2. 한은 채권 매입 또는 인수
한국은행이 직접 산업은행 등 국책은행이 발행한 채권을 인수하자는 제안은 새누리당에서 처음 나왔다. 특히 산은채를 사서 산업은행에 유동성을 공급하고 이를 통해 구조조정 재원을 마련하자는 주장이다.
앞서 강봉균 전 새누리당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은 “구조조정 과정에서 새로운 신 성장동력에 투자하는 돈을 뒷받침하려면 지금보다 더 공격적인 재정 금융정책이 필요하다”며 “당장 산업은행이 갖고 있는 돈으로는 모자란데 지금까지 채권을 쭉 내왔으니 그 규모를 조금 늘리자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방안은 단기간에 구조조정 마중물을 마련하는 데는 효과적인 것으로 평가 받는다. 하지만 재원 마련 이후에 자금을 어떻게 쓸지, 실패 시 책임은 누가 질지에 대해서는 별다른 설명이 없다는 비판이 있다.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우선 새누리당안이 제시한 방안은 ‘인수’안으로 이는 한은이 산은에서 중간 과정을 거치지 않고 직접 구입하는 것이다. 현행 한은법은 인수할 수 있는 채권 종류를 열거 하고 있는데 산은채는 포함돼 있지 않다. 정부가 빚을 보증하는 정부보증채로 지정할 경우 가능하지만 이럴 경우 나랏빚에 잡혀 국가부채가 늘어나게 된다. 때문에 새누리당은 한은법을 개정해 산은채를 한은법에 명시하는 계획을 세운 바 있다. 또 다른 방안은 한은이 시장을 통해 산은채를 간접적으로 매입하는 방안이다. 다만 이 방법을 사용할 경우 한은의 기준금리 타깃팅 방식이 달라지게 된다. 금리를 일정 수준으로 유지해야하는 한은이 산은채를 시장에서 대량 매입할 경우 그만큼 다른 채권을 매도해야지만 균형을 맞출 수 있어서다. 이런 부작용 때문에 강 전 위원장도 이 방법을 제시하지 않았다.
앞서 미국은 장기 국채를 사고 단기 국채를 파는 오퍼레이션 트위스트(operation twist)라는 양적완화를 단행했는데 이와 유사한 것이다. 하지만 이 방법을 사용할 경우 한국의 현 기준금리는 1.5%이기 때문에 기타 금리가 오르는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 산은이라는 특수한 금융기관을 위해 일반 국민이 고금리라는 피해를 입을 수 있는 지적도 받을 수 있다.
3. SPC를 통한 시중 자금 조달
또 다른 방안으로는 SPC(유동화전문회사)를 설립 한 뒤 SPC가 구조조정 작업을 전담케 하는 방안이다. 이 과정에서 SPC는 유동화증권을 발행한다. ‘은행들이 보유한 부실 채권 일부 상각→SPC가 부실 채권 인수→부실 채권 인수를 위한 유동화증권 발행→일반 국민 또는 한국은행 매입’이라는 프로세스다. 이는 가계 빚에도 적용할 수 있다. 대상이 은행이 보유한 회사채에서 일반 시중은행의 주택담보대출로만 변경되는 것이다.
양준모 연세대 교수는 “SPC를 활용하면 부실채권을 유동화 시킬 수 있어 구조조정과정에서 미처 발견하지 못한 부실이라는 불확실성을 제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일반적으로 구조조정 과정에서는 추가 부실이 발견된다”면서 “이 상태에서는 은행들이 건전성 문제에 봉착하기 때문에 다른 기업들에 대한 관리가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양 교수는 “반면 SPC가 부실 자산을 낮은 가격에 매입하고 유동화증권을 발행해 시중이 흡수하고 정 안되면 한은이 발권력을 사용해 매입하는 방식은 상대적으로 당국의 부담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1998년 외환위기 당시 한국자산관리공사 주도로 부실 채권을 인수한 것을 유사 사례로 들었다. SPC를 통한 자산 유동화 방식은 일차적으로 시중에서 재원을 조달한다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정부와 한은 부담이 덜 하다는 평이다. 다만 시중에서 물량을 소화하지 못할 경우 정부와 한은 몫으로 돌아온다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4. 금융안정기금 40조 투입
2008년 금융위기 이후 한국정책금융공사(현 산업은행)에 설치된 40조원 한도의 금융안정기금을 활용하자는 의견도 나온다. 지난 2009년 통과된 금융 산업의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한은은 이 금융안정기금의 차입 주체가 될 수 있을 뿐 아니라 정부가 해당 차입 원리금에 대해 보증할 수 있다고 명시돼있다. 금융안정기금은 부실 금융회사만 지원할 수 있는 기존 공적자금과 달리 정상적인 금융기관에도 출자·대출·채무보증 등의 방법으로 자금을 지원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구체적으로는 ‘시장상황이 급격하게 변하여 신청기관의 유동성이 경색되는 등의 사유로 금융의 중개기능이 원활하지 아니하여 신청기관의 재무구조 개선 또는 자본확충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 등이다.
경제개혁연대 소장인 김상조 한성대 교수도 국민의당 워크숍에서 구조조정 재원마련 방안으로 금융안정기금을 언급하면서 “용도는 한마디로 ‘선제적 조치’가 필요한 경우”라며 “이미 법적 수단이 마련돼 있는데 이걸 쓰면 된다”고 강조했다.
다만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금융안정기금은 일반 은행 대상이다. 이번 대상은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이며 국책은행은 재정 당국에서 지원하는 것이 맞다”며 부정적인 의사를 피력한 바 있다. 금산법에서 자금지원신청 기한을 2014년 12월 31일으로 명시해둔 점 때문에 엄밀하게 말해서는 이 방법에도 법 개정이 필요한 상황이다.
김용범 금융위 사무처장은 “법적 근거 여부를 떠나 금융안정기금은 금융시스템 전반의 자본확충 필요할 때에 대비한 범용 기금 성격”이라며 “현재 구조조정이 문제되는 것은 국책은행이고 일반은행은 문제가 안 돼 금융안정기금은 검토할 필요성이 없다”고 설명했다.
한은은 법적 근거가 있다는 점은 알지만 선례가 없기때문에 요청이 오면 따져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김상조 교수는 “지금 거론되는 구조조정 이야기는 교과서에 없는 것”이라며 “한국경제가 안이한 교과서 속 이야기를 할 단계는 지났다”고 지적했다.
5. 금융중개지원대출 부실채권정리기금 활용안
한은이 기존에 해왔던 정책을 발전시키는 방법도 있다. 현재 25조원인 금융중개지원대출(옛 총액한도대출) 한도 확대가 대표적이다. 중소기업 자금운용을 돕기위해 기준금리 절반 미만의 초저금리로 빌려주는 이 제도의 한도액을 대폭 늘리고 다섯가지로 구성된 대출 목적 프로그램에 구조조정 관련 내용을 추가하는 것이 한은이 무리하지 않을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정책이라는 평가다.
다만 중소기업 지원이라는 기본 제도 취지에 반할 수 있어 이 자금을 대형 해운·조선사 구조조정에 직접 활용하기는 어렵다. 한은 관계자는 “구조조정 과정에서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중소 협력업체가 나오면 그 쪽으로는 쓸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로 한은이 밝힌 ‘통화신용정책 운영방향’에서도 금융중개지원대출 한도의 적절 조정 및 제도의 실효성 제고를 언급하며 “기업구조조정 추진과정에서 신용경계감이 과도하게 확산되어 정상 중소기업까지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을 경우 이들에 대한 지원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아울러 과거 위기시 썼던 특별대책이 다시 사용될 수도 있다. 한은은 1997년 외환위기 직후 발권력을 동원해 부실채권정리기금 채권과 예보기금채권을 사들여 구조조정을 지원한 바 있다. 기대효과가 불투명한데다가 법 개정까지 요구되는 산은채 인수보다는 과거 해온 정책을 쓰는 것이 낫다는 논리다. 특별금융으로 불리는 한은의 금융기관에 대한 긴급자금 특별대출도 있다. 최종 대부자 역할을 하는 중앙은행이 전체 금융시장의 위기로 확산될 가능성이 있을 경우 직접 대출에 나서는 것이다. 역시 외환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실시됐다.
[이상덕 기자 / 정석우 기자 / 정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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