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배 파는 면세점은 방빼고 신규 면세점은 걸음마 단계.’
정부가 지난해 새로 특허를 내준 신규 면세점들이 오픈한지 한달이 넘었지만 시장에 완전히 뿌리내리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5년 시한부 특허 제도가 국내 면세점사업의 경쟁력을 오히려 악화시킨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정부의 개입이 오히려 시장의 혼란을 부추기고 있는 만큼 시장 원리에 따라 면세점 사업 자격을 등록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이 규제 철폐에 적극 나서기로 한만큼 면세점 제도에도 일정 부문 변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15일 매일경제가 모든 국내 면세점에 입점한 한 화장품 회사의 최근 1달간 매출을 비교 분석한 결과 지난해 특허 재승인에 탈락해 오는 5월 문을 닫아야 하는 잠실 롯데월드타워점 매장의 경우 1일 평균 매출이 1만5000달러로 집계됐다. 국내 1위 면세사업장인 소공동 롯데면세점 본점의 경우에는 5만달러에 달했다.
반면 지난 연말 새롭게 문을 연 ‘갤러리아면세점 63’과 ‘HDC 신라면세점’의 1일 평균 매출은 각각 1500달러, 3000달러 수준에 머물렀다. 곧 영업을 종료해야 하는 롯데월드타워점의 10분의 1 수준에 불과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상황은 이미 예견됐던 수순이라고 분석한다. 면세점 사업의 특성상 정부가 특허를 부여해 새로운 면세점이 문을 연다고 해서 당장 무조건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우선 중국인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높은 명품업체들의 입점 여부가 신규면세점들에게는 큰 숙제 중 하나다. 면세점업계 관계자는 “신규면세점들이 명품 유치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설령 합의가 이뤄진다고 해도 인테리어 공사 등을 마치고 매장이 정식으로 오픈하기까지는 2년 가까운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안정적인 영업기반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여행사와의 협상도 마무리해야 한다. 사실상 한명이라도 더 많은 관광객들을 유치하기 위해서는 여행업체의 ‘관광루트’에 반드시 자신의 면세점을 집어넣어야 하는 구조인데 방문객을 꾸준히 늘리기 위한 협상도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수 밖에 없다.
이때문에 신규 면세점이 제대로 시장에 자리를 잡기까지는 2~3년이 시간이 필요하다는게 업계의 목소리다. 하지만 국내 면세점은 5년마다 원점에서 특허를 재승인 받아야 한다. 겨우 사업기반을 갖추고 나면 곧바로 문을 닫을 수도 있다는 공포와 직면하게 되는 것이다.
특히 5년마다 이뤄지는 재승인 심사의 공정성도 담보할 수 없는 상황이다. 면세점업계에서는 특허심사 과정에서 심사위원 명단과 절차 및 채점표가 모두 비공개로 진행되기 때문에 ‘밀실심사’라는 비판을 받을 소지가 많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한 업계 관계자는 “면세점은 물론 유통경험이 부족한 두산이 사업자로 선정되고 세계 3위 면세업체인 롯데의 월드타워점이 탈락하는 상황에서 그 누가 공정한 심사였다고 자신있게 이야기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곽은경 자유경제원 시장경제실장도 “심사 기준을 보면 운영인의 경영능력, 기업이익의 사회 환원 및 상생 정도 등 다분히 주관적이 항목들이 대부분”이라며 “기업들은 정부의 눈치나 살필 수 밖에 없고 정부도 입맛에 맞는 기업들에게 면세점 특허권을 줄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이런 연장선에서 정부가 면세점 시장의 특허를 좌지우지하는 ‘특권’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김승욱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는 “면세점 제도개선방안의 핵심은 신규특허 진입 완화시켜는 것”이라며 “최소한의 자격 요건을 갖추면 면세점 사업을 할 수 있게 해주면 경쟁촉진이 발생해 소비자 후생이 증대하고 독과점 문제 해결도 가능해진다”고 말했다.
실제로 싱가포르, 홍콩, 마카오 등은 공간 제약 등의 이유로 공항면세점은 입찰 경쟁을 하고 있지만 시내면세점의 경우 요건만 갖추면 자율적으로 사업을 운영할 수 있는 ‘사실상 등록제’를 채택하고 있다. 최근 시내면세점 사업 확대를 통해 중국인 관광객을 유혹하고 있는 일본의 경우에도 조건이 까다롭기는 하지만 인도장 확보 등 일정 요건만 충족하면 사실상 시내면세점 사업을 할 수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권 실장은 “면세점 시장에서 기업들이 자유롭게 진입하고 퇴출하게 되면 경쟁력있는 기업이 하루아침에 시장에서 퇴출되는 불확실성이 제거될 수 있다”며 “대기업의 면세점 특허권이 문제가 아니라 정부의 기업규제 특허권이 진짜 문제”라고 비판했다.
현재 입찰경쟁을 통한 허가제에서 등록제로 전환할 경우 신규 특허권 발급과 갱신 과정에서 제기되는 불공정 시비를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입찰경쟁에 따른 사회적·경제적 비용도 줄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또한 자유시장경제 원리에 입각해 선의의 경쟁을 통한 지속적인 투자 등으로 한국 면세점 사업의 글로벌 경쟁력도 강화할 수 있다. 최준선 성균관대 교수는 “최소한의 요건을 갖추면 시장에 뛰어들 수 있도록 진입장벽을 없애야 한다”며 “상상력과 창의력으로 사업을 펼칠 수 있는 기회를 최대한 많은 기업에 주는 것이 한국 관광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지름길”이라고 말했다.
[손일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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