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치열한 북미 생활가전 시장에서 사상 처음으로 1위에 올랐다. ‘셰프 컬렉션’으로 대표되는 프리미엄 브랜드가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으면서 제품 전체의 판매를 높이는 이른바 ‘낙수효과’가 이뤄진 것으로 분석된다.
24일 시장조사기관 트랙라인에 따르면 지난 4분기 북미지역의 핵심 5대 가전제품(냉장고 세탁기 건조기 레인지오븐 식기세척기)의 시장에서 삼성전자는 16.6%의 시장점유율(금액기준)을 기록하며 월풀(15.7%)을 따돌렸다. 한국 가전업체가 월풀 등을 제치고 분기 1위에 오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트랙라인은 세계 가전 업계에서 시장 점유율등을 조사 발표하는 회사로 세계 가전 업계에서 널리 인용되고 있다.
연간 점유율로는 삼성전자가 14.9%로 월풀(16.4%)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최근 중국 가전업체 하이얼에 매각된 GE가 14.3%의 점유율로 3위에 올랐으며 LG전자가 13.5%로 4위를 지켰다. 삼성전자는 2013년과 2014년 두 해 연속 5위에 머물렀지만 지난해 지속적인 상승세를 보이며 단숨에 2위로 껑충 뛰어올랐다.
불과 7~8년 전만 해도 생활가전 시장에서 삼성전자의 시장점유율은 2~3%에 그칠 정도로 미미한 존재에 불과했다. 중저가 제품이 판매의 중심에 있었고 미국 가전시장의 절반을 차지하는 빌트인 분야에서는 존재감이 거의 없었다. 무엇보다 브랜드 인지도가 낮은 것이 고민거리 가운데 하나였다.
삼성은 우선 품질 개선에 나섰다. 기본 수준을 높이는 것을 넘어 미국 소비자들이 좋아할 만한 제품을 개발했다. 이는 삼성전자가 미국 시장조사기관 ‘J.D.파워’가 선정한 생활가전 소비자 만족도 조사에서 2014년·2015년 2년 연속 1위에 오르는 등 ‘소비자가 가장 사랑한 가전제품’에 등극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주요 유통점을 대상으로 한 밀착 마케팅도 힘을 발휘한 것으로 분석됐다. 시어스와 홈디포 로위 등 미국 내 주요 생활가전 유통업체에 삼성전자 제품 공급을 늘렸다. 소비자들이 제품을 직접 써보고 좋은 성능을 확인할 수 있도록 매장 내에 체험공간도 확대했다.
브랜드 인지도 상승에는 2006년부터 세계 1위를 지켜온 삼성전자 TV의 후광효과를 톡톡히 봤다. 유통매장에서 TV와 생활가전은 인접한 공간에서 전시된다. ‘TV도 잘 만드는 회사이니 생활가전도 좋지 않을까’라는 인식을 은연중에 소비자들에게 심어준 것이다. 여기에 경쟁사보다 한발 빠르고 과감한 마케팅 전략도 주효했다.
조금씩 살아나던 불길에 기름을 부은 것이 바로 삼성의 프리미엄 생활가전 라인업인 ‘셰프 컬렉션’이다. 이는 삼성전자가 2013년 미슐랭 스타 쉐프(요리사)를 주축으로 ‘클럽 드 쉐프’를 결성한 뒤 이들의 오래된 지식과 경험을 제품 기회 단계에서부터 반영해 개발한 제품이다.
2014년 6월에 미국서 첫 선보인 셰프 컬렉션은 식자재를 최상의 상태로 보관하는 냉장고, 재료 본연의 깊은 맛을 내면서 식감까지 좋게 하는 오븐, 다양한 식기를 말끔히 씻어 내는 식기세척기 등을 선보이며 미국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셰프 컬렉션이 정착하며 지난해 삼성의 가전제품 평균 판매 단계는 1046달러에 달했다. 가전업계 전체 평균 판매가는 이보다 30% 가량 낮은 702달러 수준이다.
셰프 컬렉션 브랜드는 다른 중저가 삼성전자 생활가전 제품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대당 6000달러가 넘는 냉장고를 만들어 판매하는 회사인데 그 이하 가격의 제품도 좋은 성능일 것이라는 인식이 퍼진 것이다. 마케팅에서 얘기하는 이른바 ‘낙수효과’다.
좋은 브랜드를 만들고 유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미국 시장 공략을 노리는 중국의 하이얼이 GE 가전사업부 인수를 위해 6조원이 넘는 돈을 베팅한 것도 100년이 넘은 역사를 가진 ‘GE’라는 브랜드를 얻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LG전자가 최근 ‘LG시그니처’라는 이름의 프리미엄 브랜드를 별도로 선보인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삼성전자는 올해 연간 기준으로도 월풀을 제치고 북미서 시장점유율 1위를 달성하겠다는 각오다. 시장조사업체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북미 생활가전 시장규모는 올해 307억 달러로 지난해의 289억 달러로 6.2% 가량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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