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박주영(52)씨는 최근 건강검진 결과, 혈액검사상 경도(輕度)의 고지혈증 소견을 보이고 있으니 주기적인 추적검사를 받으라는 통보를 받았다. 박씨의 총 콜레스테롤 수치는 225㎎/㎗(정상 200미만), 중성지방 175mg/㎗(정상 150미만), LDL(저밀도 지단백질)콜레스테롤 150㎎/㎗(정상 100미만), HDL(고밀도 지단백질)콜레스테롤 45㎎/㎗(심혈관질환 보호기준 60이상)이라는 검사결과가 나왔다. 그는 의사로부터 적절한 열량 섭취와 규칙적인 운동을 통해 정상 체중을 유지하고, 식단은 지방섭취를 줄이면서 식이섬유가 많은 음식을 충분히 먹으라는 조언을 들었다.
회사 중간관리자로 주로 장시간 앉아서 일하는 40~50대 직장인들이 건강검진때 단골메뉴로 ‘경고’를 받는 게 바로 ‘고지혈증’이다. 고지혈증은 술과 육류를 과다 섭취하는 잘못된 식생활습관이 주범이지만, 유전적인 요인이 원인일 때도 있다. 평소 술과 육류를 많이 먹지도 않고 뚱뚱하지도 않는데 고지혈증 진단을 받았다면 가족력을 의심해봐야 한다.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 심장내과 전동운 교수는“고지혈증은 혈액 속에 지방성분이 높은 상태를 말하며, 일반적으로 총콜레스테롤이 240mg/㎗을 넘거나 중성지방이 200mg/㎗ 이상인 경우에 해당한다”며 “고지혈증이 있는 사람은 당뇨병, 고혈압 등과 같은 성인병이 함께 발병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고지혈증 진료를 받은 환자는 2013년 128만 8000명으로 2008년보다 54만 2000명이나 늘었다. 진료환자를 성별로 보면, 여성이 78만 2000명으로 남성(50만 6000명)보다 많았다. 일산병원 전동운 교수는 “고령일수록 지질대사가 감소하므로 더 많이 발병할 수 있으며, 특히 여성은 폐경이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고지혈증( 高脂血症)은 글자 그대로 피속에 중성지방이나 콜레스테롤중 한 가지라도 정상보다 많은 상태를 뜻한다. 고지혈증은 ‘침묵의 살인자’라고 불릴 정도로 특별한 증상없이 깊숙한 곳에 몸을 숨긴 채로 묵묵히 동맥경화를 진행시킨다.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심근경색이나 뇌경색과 같은 치명적인 질환을 유발하는 무시무시한 질병이다.
음식물을 통해 몸안으로 흡수된 지방은 수용성 물질이 아니기 때문에 단백질과 결합해 혈액으로 운반 대사된다. 을지대병원 내분비내과 이재민 교수는 “체내로 흡수된 지방과 대사산물인 중성지방, 콜레스테롤, 인지질, 유리지방산 등은 단백질과 결합해 수용성 형태의 지단백이 되는데 이런 혈청지질이 정상보다 많이 증가하면 고지혈증이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고지혈증 원인은 유전적인 결함에 의한‘일차성 고지혈증’과 질병, 약물, 식이 등의 환경인자에 의해 유발되는 ‘이차성 고지혈증’으로 분류할 수 있다. 조절이 잘 안되는 당뇨병, 갑상선기능저하증, 통풍, 신장질환, 뇨독증, 폐색성 간질환, 췌장염, 홍반성 낭창 등의 질환은 이차적으로 고지혈증을 동반한다. 약물 중에는 경구피임약, 부신피질호르몬제, 항고혈압약 등이 고지혈증을 유발할 수 있다. 술과 포화지방산이 함유된 음식을 많이 먹는 것도 고지혈증의 원인이 된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빠른 식사시간도 고지혈증을 유발하는 이유로 지목된다. 고려대 안산병원 가정의학과 김도훈 교수 연구팀이 8771명을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식사시간이 짧을수록 체질량지수가 높아 비만 위험이 커지고, 혈액에 존재하는 중성지방수치를 높여 이상지질혈증(고지혈증) 위험을 높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지혈증을 유발하는 것은 콜레스테롤과 중성지방이다. 콜레스테롤은 신체기능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하며 몸안에 100~140g이 있다. 그중 20~30%는 식사를 통해 섭취하는 콜레스테롤이고, 나머지 70~80%는 간이나 소장에서 합성되어 만들어진다. 콜레스테롤은 전체의 약 4분의 3이 체내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에 식생활 못지 않게 유전에 의한 체질, 기저질환, 성별, 연령에 따라 수치가 달라진다. 예를 들어 젊은 연령대에서 여성의 콜레스테롤 수치는 남성보다 낮지만 갱년기 이후부터는 급격히 상승한다. 그 이유는 에스트로겐이라는 여성호르몬 때문이다. 에스트로겐은 나쁜(LDL)콜레스테롤을 줄이고 좋은(HDL)콜레스테롤을 늘려 혈관을 지켜주지만 폐경이 되면 에스트로겐 분비량이 감소해 LDL이 늘고 총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아진다.
중성지방(triglyceride)은 지방과 당질, 알코올을 원료로 하여 간에서 합성되며, 근육이나 심장의 에너지원이 된다. 중성지방은 콜레스테롤과 마찬가지로 신체기능 유지와 활동을 위해 꼭 필요하지만 과잉 분량의 중성지방은 내장이나 피하의 지방조직에 축적되고 일부는 혈액속으로 방출된다. 간에서 합성되는 중성지방의 수치는 술을 자주 마시는 남성이 여성보다 더 높은 경향을 보인다. 여성의 중성지방 수치가 높은 원인은 과자나 과일의 과다 섭취를 들 수있다.
이처럼 콜레스테롤과 중성지방과 밀접한 고지혈증은 50대이후 급격하게 증상이 나타난다. 40~50대 근로자들이 간혹 돌연사하는 이유는 고지혈증 때문이다. 고지혈증으로 동맥의 70%이상이 막혔을 때 간혹 목 뒷덜미가 찌릿 찌릿하거나 손이 떨리는 증상이 나타나지만 바쁘다는 핑게로 그냥 무시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가 혈액의 흐름이 막혀 심근경색으로 악화되어 돌연사하게 되는 것이다.
고지혈증 치료의 중심은 식사조절과 운동을 통한 생활습관 개선, 적절한 체중유지, 약물복용이다. 무엇보다 고지혈증 치료 및 예방은 과도한 육식을 줄이고 채소중심의 식이요법을 실천하는 것이다. 또한 금연과 함께 유산소 운동을 통해 LDL콜레스테롤을 낮추고 HDL콜레스테롤을 높여야 한다. 운동효과를 보려면 최소 1주일에 3번, 한번에 30분씩 운동을 해야 한다. 고혈압 및 당뇨병도 철저한 검사와 치료를 해야 한다.
식이요법과 관련해 일본 명의 나카야 노리아키 박사(‘먹어서 개선하는 콜레스테롤’저자)는 고지혈증을 4가지 타입으로 분류한다.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은 A타입 △중성지방 수치가 높은 B타입 △콜레스테롤 수치와 중성지방 수치가 모두 높은 C타입 △좋은 콜레스테롤 수치가 낮은 D타입등이 바로 그것이다. 노리야키 박사는 타입별로 식사요법을 달리하고 자신의 상태에 적합한 식사요법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약물치료에는 콜레스테롤 합성을 저해하는 효과가 있는 스타틴 계열의 약물이 널리 쓰인다. 이 약은 드물게 근염이 발생할 수 있어 약물 투여시 근육통이 온다면 혈중 크레아틴 카이네이즈(근육효소) 수치를 측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콜레스티라민 약은 LDL 콜레스테롤을 떨어뜨리지만 중성지방 수치를 올린다. 또한 콜레스티라민은 소화기계 증상(가스가 차고 변비 등을 호소)이 나타날 수 있다. 니아신 약은 중성지방과 LDL을 떨어뜨리고 HDL을 올려주지만 홍조, 간기능장애 및 혈당조절장애가 발생할 수 있다. 피브레이트 제제는 중성지방을 낮춰주지만 소화기장애 및 담석이 생길 수 있다. 오메가 3 지방산은 하루 3~4g을 복용할 경우 중성지방을 떨어뜨리는 효과가 있지만 과다복용하면 췌장염을 유발할 수있다.
[이병문 의료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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