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세점 간판은 화려하게 붙였지만 속은 ‘앙꼬 빠진 찐빵’처럼 그야말로 미완의 면세점으로 문을 열게 생겼다. 이달말 각각 용산과 여의도에 오픈하는 신규 면세점 HCD신라와 한화갤러리아 면세점 이야기다.
9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 7월 서울 시내 신규 면세점 사업자로 특허권을 획득한 HDC 신라면세점과 한화갤러리아 면세점은 각각 이달 24일, 28일 면세점을 개장할 예정이다. 하지만 면세점 ‘경쟁력’의 척도가 되는 루이비통, 까르티에, 샤넬 등 주요 명품 업체들과는 두 면세점 모두 단 한 곳과도 입점 협의를 마무리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면세점은 개장을 3주 정도 앞두고 있어 외관은 어느정도 완성됐지만, 내실(브랜드 입점)은 완벽히 갖추지 못한 채로 손님을 맞아야 하는 셈이다. 사실상 ‘반쪽짜리’ 오픈이다. 이에 따라 면세점을 찾는 관광객에게 오히려 부정적인 이미지를 심어주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면세점 업계 관계자는 “5대 명품이라고 불리는 루이비통, 샤넬, 에르메스, 카르티에, 불가리 등과 신규 면세점들의 협의가 쉽지 않은 것으로 안다”며 “명품 업체들의 경우 일단 면세점이 문을 열고 나서 집객 현황을 보고 입점 여부를 논의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면세점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명품들의 입점이 결정되지 않으면서 신규 면세점들은 향후 럭셔리 브랜드 입점을 위해 남겨놓은 공간을 가벽 등으로 가리고 사업을 시작할 것으로 전해졌다. HDC신라 면세점의 경우 용산 아이파크몰 3∼7층에 2만7400㎡ 규모로 들어설 예정이지만, 이달 24일에는 5, 7층을 제외한 3, 4, 6층만 개장한다. 60%만 오픈된 매장에서는 화장품·잡화·토산품 등 분야의 350여개 브랜드만 선보이게 된다. 갤러리아 면세점의 경우에도 수입화장품과 럭셔리 브랜드들이 입점하게 되어있는 그라운드 플로어 공간의 절반 이상을 가벽으로 가린 채 영업을 개시할 예정이다.
더 큰 문제는 가오픈을 하고 난 이후에도 명품 브랜드 입점에 상당한 시간이 필요한 것이라는 점이다. 보통 샤넬, 루이비통 등 명품 브랜드들은 계약서에 도장을 찍은 이후부터 입점까지 평균 1년이 소요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명품업체들은 인테리어 소재까지 직접 자국에서 공수해 매장을 꾸미기 때문에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최악의 경우에는 대표적인 명품 브랜드들이 아예 입점을 하지 않을 수도 있다. 명품브랜드들은 각 지역별로 매장수를 제한하고 있는데 서울 시내 면세점이 크게 늘면서 사실상 협상에서 명품 브랜드들이 칼자루를 쥐고 있기 때문이다. 이때문에 신규 면세점들은 많게는 수억원에 달하는 인테리어 공사비를 전액 부담하겠다는 달콤한 제안까지 하고 있는 상태다.
특히 용산과 여의도의 경우 명품 업체들이 기존에 매장을 내 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더욱 조심스러워 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 유통업체 관계자는 “명품 업체들의 경우 이미지 관리가 브랜드를 유지하는 데 가장 핵심”이라며 “여의도와 용산이라는 지역에서 시작되는 면세점이 어떤 그림을 그려나갈 수 있을지에 대해서 아직 확신을 갖고 있지 못하는 것 같다”고 귀뜸했다. 여기에 한발 더 나가 내년 상반기 면세점 오픈 예정인 두산과 신세계도 명품브랜드 유치 경쟁에 끼어들어 업계 내 줄다리기가 벌어질 경우 명품브랜드 몸값만 천정부지로 높아지게 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이 같은 졸속오픈의 배경에는 정부의 조급증도 자리잡고 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지난 7월 신규 면세점(HDC신라, 한화)이 선정된 이후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신규 시내 면세점 개점 시기를 당초 내년 초에서 올해 말로 앞당기겠다”고 말했다. 취지는 좋았다. “면세점 오픈을 앞당겨 연말시즌 내수진작에 기여하겠다”는 것이었지만 사실상 정부가 ‘데드라인’을 정해준 셈이 되버렸다. 당초 업체들은 철저한 준비를 위해 규정에 정해진 기간을 충분히 활용한 후 내년 2월에 면세점을 오픈한다는 계획이었다. 면세점 경쟁력의 핵심 요소 중 하나인 명품 유치 등에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하지만 정부의 말 한마디에 모든 계획이 어그러진 것이다.
한 면세점업계 관계자는 “면세점은 나라가 정하는게 아니라 관광객이 선택하는 것인데 준비가 다 되지 않은 채로 면세점 문을 열었다가 관광객의 재방문율만 떨어뜨리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
[손일선 기자 / 이새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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