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차의 나라’ 영국에서는 차를 마시는 시간에 따라 차의 명칭이 달라진다. 아침에 먹는 차는 ‘얼리모닝(early morning tea)’, 아침 식사와 곁들이는 차는 ‘브렉퍼스트 티(breakfast tea)’, 오전 11시에 가볍게 마시는 차는 ‘일레븐즈 티(elevenses tea)’라고 한다고 한다.
이 중에서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차는 바로 ‘애프터눈 티’다. 점심은 한참 지났고, 저녁을 먹기에는 이른 출출한 오후에 시각 다과와 함께 즐기는 차다. 18세기 베드포드 공작 부인이 점심과 저녁 사이 허기가 져 축 쳐진 기분을 달래기 위해 간식과 함께 차를 즐긴데서 유래됐단다. 나중에는 일종의 귀족의 사교모임 형태로 발전되면서 곁들이는 다과의 종류도 화려하고 푸짐해졌다.
현대인들 중에서도 특히나 바쁘기로 소문난 한국인들이 18세기 영국 귀족들처럼 오후 4시에서 5시 사이 애프터눈 티를 즐기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때로 한없이 축 쳐진 기분을 달랠 오후의 여유가 간절할 때가 있는 법. 달콤하고 부드러운 다과와 함께 홍차 한잔을 곁들이면 하루가 특별해 진다.
신사동 가로수길에 위치한 티룸 ‘르쁘띠베르’는 복잡한 생각을 잠시 내려놓고 오후를 즐기기에 참 적합한 공간이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부터 마치 300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어느 공작부인의 티타임에 초대된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수십가지에 달하는 티를 시향을 통해 먼저 고르고, 전시 되어있는 티포트 중에 원하는 티포트와 잔을 골라 차를 마실 수 있다. 르꼬르동블루 출신의 파티시에가 운영하는 티룸인 만큼 창의적이면서 맛이 좋은 디저트가 많다. 따끈한 스콘에 직접 만든 밀크티잼·밀크잼을 좋은 향의 차와 곁들이면 절로 미소가 나온다. 애프터눈 티 세트 메뉴를 ‘여왕의 티타임’(1인당 28000원)이라고 칭한 데서 볼 수 있듯이, 최고의 티타임을 즐길 수 있도록 레이스 장갑까지 구비해놓는 등 신경을 많이 썼다. 하지만 차와 즐기는 핑거푸드의 양이 푸짐한 만큼, 식간 티타임을 즐긴다는 느낌보다는 딘치 (Dinch, 디너ㆍ런치의 합성어)라고 생각하는 게 좋을 듯 하다. 달콤함을 즐길 ‘각오’도 반드시 하고 가시라.
[이새봄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에 대해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