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업을 위해 대학을 다녀보니 사용하지 않고 먼지만 쌓인 채 ‘무용지물’로 방치한 3D프린터가 한두 대가 아니더군요. 대당 가격이 수천만원에 이르고 제품을 만들기 위한 소재도 ㎏당 30만원을 호가해 활용하기 어렵다고 합니다. 실험실과 교실은 물론 가정에서도 부담 없이 시제품을 만들 수 있는 3D프린터의 대중화에 촛점을 맞춰 새로운 사업을 하기로 한 이유입니다.”
TPC메카트로닉스 엄재윤 대표의 말은 국내 3D 프린터 산업의 현주소를 드러낸다. 초창기 미국 스트라타시스와 3D시스템즈 등 고가 수입 3D프린터를 도입했지만 실제 활용도는 매우 낮은 게 현실이다. 최근 국내 3D 프린터 제조 회사를 중심으로 이런 제약을 깨기 위한 방편으로 범용 3D 프린터를 앞다퉈 내놓고 있다. 그 중심에 서 있는 기업이 바로 TPC메카트로닉스다.
이 회사는 공장 자동화 설비를 이루는 각종 공압기기를 주력으로 생산하는 코스닥 상장사다. 공압기기는 자동화 공장 안에서 각종 제품을 이동시킬 때 동력으로 쓰이는 공기 압력을 제공, 구동시키는 장비다. 업계에 따르면 국내 공압기기 시장은 약 6000억원 규모로 이 가운데 TPC메카트로닉스는 약 11%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기존 일본, 독일 업체가 독차지하고 있는 시장에서 장비를 국산화해 한국 기업 중에 이 분야 1위를 달리고 있다.
엄재윤 대표는 “공압기기는 산업현장 곳곳에서 사용되고 있지만 동력 전달수단이 공기다 보니 정교하게 움직임을 제어하기는 어렵다”며 “이 때문에 반도체와 LCD 등 정밀 부품을 제조하기 위한 자동화 공정에는 전력으로 구동하는 모션컨트롤 설비가 사용된다”고 말했다. TPC메카트로닉스는 8년 전부터 모션컨트롤 사업에 뛰어들어 현재 삼성전자, LG전자 등 정밀 자동화 설비를 갖춘 기업에 제품을 공급하고 있다. 모션컨트롤은 대형 가공 로봇이 반도체 웨이퍼, LCD 소재를 매우 정교하게 이동·가공할 수 있도록 돕는다.
그러나 이 회사가 요즘 새로운 먹을거리로 삼은 분야는 3D 프린터다. 이를 위해 지난 2013년에는 애니웍스라는 회사를 인수하기도 했다. 3D 프린터 사업의 차별화 전략은 ‘싸고’, ‘빠르고’, ‘편리한’ 보급형을 승부한다는 것이다. TPC메카트로닉스에서 최근 개발을 마친 3D프린터는 소재가 ㎏당 3만원 수준으로 기존 외국산 소재(20만~30만원)와 비교해 가격이 10% 수준에 불과하다. 3개의 축이 달린 델타로봇이 장착된 3D프린터로 기존 FDM(압출적층)방식보다 속도를 20~30% 향상시킨 것이 특징이다. 델타로봇은 기존 X, Y, Z축으로 자유자재로 움직여 제작 속도가 더욱 빠르다. 한글로 된 선택 메뉴가 터치패널로 부착돼 있어 국내 사용자 편의를 더욱 높였다. 특히 3D프린터와 여기에 특화된 소재를 일괄 생산하기 때문에 출력물의 정밀도가 높다는 것이 장점이다.
엄 대표는 “기존에는 시제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일일이 금형을 따로 만들어야 했고 시제품 제작을 위해 소량 주문하는 것도 어려웠다”며 “3D 캐드(CAD)를 통해 도면을 그린 후 파일로 저장해 3D 프린터에 옮겨 버튼만 몇 번 누르면 시제품을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활용도가 높다”고 말했다. 현재 고려대, 인천대, 인하대, 경북대, 중앙대, 세종대 등 대학은 물론 삼성서울병원, 경북대 의대에서도 환자용 의수·의족을 만드는데 활용되고 있다. 향후 2~3년 안에 기존 플라스틱 외에 메탈 소재의 제품을 만들 수 있는 3D프린터를 내놓기 위해 현재 개발 중이다.
중국과 미국, 인도, 독일, 영국 등 전 세계 40개국에 공압기기, 모션컨트롤를 수출하고 있는 TPC메카트로닉스는 지난 2008년 중국 상하이에 대규모 생산 공장을 준공하고 인천 가좌동에 위치한 1공장도 증축하는 등 제2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엄 대표는 “2년 전만 해도 직원이 300명 미만이었지만 연구와 영업 인력을 대폭 늘려 올해 말까지 직원은 410명이 넘어설 것”이라며 “상반기 매출 신장률은 15% 수준이 될 것으로 보이며 지난해 매출 790억원에서 올해는 1000억 수준을 목표로 잡고 있다”고 말했다.
[인천 = 김정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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