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우여곡절 끝에 국회를 통과한 이른바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을 두고 자영업자와 유통업계는 착잡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내년 9월 시행까지는 앞으로 약 1년4개월의 유예기간이 남아 있으나 시행이 초읽기에 들어가면 매출 하락이 불 보듯 뻔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김영란법은 법 적용대상자 본인이나 배우자가 직무 관련성이나 대가성에 상관없이 금품이나 향응을 받다 적발되면 형사처벌하도록 규정했다. 금품이나 향응이 1회당 100만원 초과 또는연 300만원을 초과할 경우 3년 이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는 게 원칙이다. 청탁을 받은 사실이 없더라도 100만원 이하 금품을 수수하면 직무 관련성이 있을 경우 해당 액수의 2~5배 이하 과태료를 법원으로부터 부과받는다.
물론 김영란법에도 일상적인 만남에 따른 밥값이나 경조사비 등은 허용하고 있다. 법 제8조 3항에 따르면 원활한 직무수행 또는 사교·의례 또는 부조의 목적으로 제공되는 음식물·경조사비·선물 등으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가액 범위 안의 금품등은 예외다. 문제는 제한금액이다. 시행세칙인 대통령령에 의해 정해지는데 현행 공무원윤리강령에 따르면 1인당 식사와 선물은 3만원이하, 경조사비는 5만원 이하만 가능하다. 대통령령은 공무원윤리강령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어 사실상 이 금액이 유력한 상황이다. 한 백화점 관계자는 “굴비나 청과물로 구성되는 백화점 명절 선물세트는대부분 10만원 이상으로 3만원 이하 선물세트는 비누나 샴푸 혹은 인스턴트 통조림품목에서만 가능하다”고 전했다.
유통업계뿐만 아니라 골프장들은 그야말로 울상이다. 골프는 1인당 30만~50만원이 소요되므로 직무 관련성이 있는 이들끼리 골프를 친다면 한 번만 필드에 나가도 바로 과태료 부과 대상이다.
과거 접대비 실명제 사례를 감안할 경우 김영란법 도입은 즉각적으로 5000억원 소비를 감소시키고, 내수 연관 산업을 침체시킬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기업의 접대비 규모를 보면 2013년에만 연간 약 9조원 정도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2004년 접대비 실명제 도입 당시를 살펴보면 2003년 5조4372억원이던 기업 접대비는 실명제가 도입된 2004년 5조1626억원으로 5%가량 감소했다.
만약 김영란법 시행으로 기업 접대비 9조원의 5%만 줄어들게 되더라도 약 5000억원의 내수 소비가 즉각적으로 줄어들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당시 접대비 실명제의 후폭풍은 내수지표 부진으로도 확인된다. 제도가 시행되자 2004년 1분기 실질 민간소비 증가율은 -0.9%를 기록했고, 2분기 0.4%, 3분기 0.2% 등 0%대를 이어갔다. 반면 2009년 2월 접대비 실명제가 폐지된 직후 그해 2분기 실질 민간소비 증가율은 3.3%로 뛰어올랐다.
이 법으로 인간관계에 부정적 영향이 오는 것도 문제다. 혹시 구설수에 휘말릴까 두려워 지인과 밥 한끼도 먹기 힘들어진다는 것이다.
적용 대상 범위가 너무 넓다는 지적이 나온다. 당초 공무원 및 공공기관 임직원 등을 대상으로 만들어진 법안이 사립학교 및 언론사 재직자 등으로 확대되면서 김영란법의 적용을 받는 인원은 약 300만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가족 범위를 민법상 가족이 아니라 배우자로 축소하면서 많이 줄어들었으나 적극적 경제활동인구에 비춰봤을 때 여전히 적지 않은 숫자다.
비현실적인 법을 피하기 위한 편법 관행만 늘어날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영수증 쪼개기와 카드 나눠 쓰기가 그 사례다. 한도를 넘은 비용을 지불하기 위해 경비를 나누는 방식이 번질 것이라는 얘기다.
내수에 미치는 악영향을 줄이기 위해선 무엇보다 김영란법 범위를 축소하는 것이 가장 필요하다. 이상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은 “공직사회 비리를 뿌리 뽑겠다는 김영란법 취지대로 공직자만 대상으로 하면 된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법 개정 전 문제점을 최소화하기 위해 시행령이라도 현실을 반영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대통령령에서 기준 가액이 낮게 책정되면 고스란히 서민 경제에 직격탄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우제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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