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장례식.' 대화를 시작하기엔 무거운 단어였다. 하지만 유정범 메쉬코리아 대표는 웃어 보였다.
"조문객으로 가득했던 아버지의 장례식. 그게 시작이었습니다."
3일 만난 유 대표는 아버지의 사업 실패 후 인생에 중요한 가치로 '돈'을 꼽게 됐다면서 입을 열었다. 돈이 가장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고 믿었다. 고려대학교 법학대학을 중퇴하고 미국 컬럼비아대로 향하면서 그는 장학생으로 선발돼 학비를 아낄 수 있었지만 긴 유학생활 동안 매일 잠과 먹을 것을 아끼면서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다. MBA 졸업, 딜로이트 컨설팅, 인포뱅크 등에 근무하면서 그 생각은 고집으로 굳어졌다.
그러던 중 아버지의 비보를 듣고 그는 급히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지인으로 가득찬 아버지의 장례는 그의 가치를 뒤흔들어 놓았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떨어져 나갔다'고 단정지었던 인맥들이 아버지의 마지막을 배웅하기 위해 기꺼이 장례식장을 찾았고 유 대표의 손을 잡았다.
"제게 아버지는 실패한 사업가였지만 아버지는 성공한 인생을 산 사람이었어요. '돈이 없다고 해서 전부를 잃는 건 아니구나. 돈이 없어선 안 되겠지만 그래도 잃지 말아야 하는 것이 돈 뿐은 아니구나. 그럼 그 잃지 말아야 하는 것을 사회에 찾아 주고 싶다' 그렇게 다짐했습니다."
처음 유 대표는 사회적 기업을 고민했다. 당시 20대 후반의 그에게는 대학 때부터 악착같게 벌어온 4억원이 쥐어져 있었다. 20대 후반이 모았다기엔 상당히 큰 돈이다. 역설적으로 '더 나은 사회'라는 하나의 목적을 위해 써버리기에 큰 돈이기도 하다.
"유학생을 대상으로 과외를 오랫동안 했고 인턴십 프로그램과 공모전 수상 등으로 모은 돈이었어요. 연봉도 꽤 됐고요. 처음에는 투자를 받을 수 없어 제 모든 것을 끌어 시작했습니다."
절친한 친구 2명과 모여 '무인화 자동 배차 시스템' 제작에 들어갔다. 매일 아침 그의 오피스텔 앞에 모여 배달주문 단말기를 보며 새벽 배달 주문에 나서는 배달기사들을 주의깊게 본 이후 결심이 섰다. 국내 열악한 배달 네트워크 시스템을 재정립한 후 그 위에 상거래 서비스를 구축해 배달시장 전체를 흔들어보겠단 포부로 뭉친 인력은 현재 30여명. 이중 개발인력이 절반을 넘을 정도로 시스템 구축에 힘을 들였다.
우리나라 배달음식 시장 규모는 10조원. 꽃, 식료품 등 배달시장 전체로 따지면 규모는 30조원에 달한다. 하지만 그의 설명에 따르면 시장 규모와 달리 처우는 바닥 수준이다. 배달업종 종사자 200만명 중 점포에 소속되지 않고 혼자서 뛰는 개인사업자는 78만명이다. 이들의 한 달 평균 수입은 150만원 정도. 시간당 1건 정도의 배달 주문을 처리하면서 건당 약 5000원을 받는다. 기름값, 라이더보험 등 유지비를 고려하면 시장 규모에 비해 배달기사의 처우는 크게 아쉽다.
배달기사 뿐만 아니다. 최근 배달앱이 성행하면서 상점 역시 수수료 부담이 커졌다. 배달앱을 통해 주문이 들어올 경우 같은 값에 판매되는 상품임에도 배달앱 업체에 수수료를 지급해야 하기 때문이다. 광고비 부담이 줄어든다는 장점이 있지만 상점은 배달기사를 통해 소비자에게 "다음에는 직접 주문해달라"고 귀뜸하는 경우가 많다. 유 대표는 "국내 배달 시장은 시장 크기에 비해 불합리적이고 열악한 것이 사실"이라며 "해외의 경우 배달 방식에 따라 가격이 다양하게 나뉘어 있지만 우리나라는 퀵서비스 등을 포함해도 종류가 다양하지 않고 하루배송이 잘 지켜지지 않는 등 가격 대비 불합리한 점들이 많다"고 꼬집었다.
IT 기술을 기반으로 최적의 시스템을 구축해 통합 배달 허브망으로 인건비와 수수료 등 상점과 배달기사의 부담은 줄이고 이들의 처우를 개선해 배송 문화 자체를 살리겠다는 게 그의 목표다.
2년여의 개발 끝에 메쉬코리아는 현재 애플리케이션 '부탁해!', '메쉬프라임', '부릉'을 운영하고 있다. 3가지 앱 모두 기존의 배달 앱과는 달리 콜센터 직원을 두지 않고 배달이 필요한 상점과 배달기사를 직접 연결하는 무인화 자동 배차 시스템을 이용한다. 해당 시스템은 배달기사에게 최적의 이동거리를 보여주고 소비자에게는 배달기사의 신상을 비롯해 배달 예상시간, 현재 위치 등을 제공한다. 주문이 들어오면 배송지와 가장 가까이에 있는 배달기사를 찾아 상품 준비 시간, 거리 등을 실시간 계산해주기 때문에 시간당 9건의 배송이 가능하다. 위험한 길일 경우 배달기사에게 우회도로를 알려주기도 한다. 현재는 날씨에 따른 추천도로 검색을 추가로 기획 중이다.
배송기사의 신상을 공개하는 것 외에도 사용자의 피드백을 통한 철저한 배송기사 관리에 들어가면서 현재 홈쇼핑, 해외직구사이트, 명품대행판매 업체와의 B2B 역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기존에 배달이 불가능하던 CJ푸드빌과 아워홈 등 프렌차이즈 업체와의 B2B도 성공하면서 메쉬코리아 매출의 60%가 B2B에서 나오고 있다.
또 배달기사와 1대 1 소통을 하게 되면서 커피, 의류, 생필품 등 배송 가능 품목도 늘어나고 있다. 메쉬코리아는 현재 약 200여명의 배달기사와 거래하고 있으며 단일 상점 개수로는 약 700여곳이 메쉬코리아와 협업 중이다.
유 대표는 "기존의 배달앱이 소비자만을 중심으로 기획됐다면 우리는 배달기사, 상점 등과의 공생을 통한 시장 규모 확대를 내다보고 있다"며 "내년 해외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는 만큼 국내 시장을 개선해 배송문화 한류에 나설 것"이라고 덧붙였다.
[매경닷컴 배윤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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