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출가 이지나(58)는 사회에서 쉽게 이야기하지 못하는 소재를 과감히 무대에 올려왔다. 2001년 그가 처음 연출한 뮤지컬 '록키호러쇼'는 당시 드러나기 어려웠던 성소수자의 이야기를 담았고, 연극 '버자이너 모놀로그'는 성을 억누르는 여성의 삶을 파격적으로 표현했다. 무대는 그가 개인의 욕구를 억압하려는 사회에 맞서는 전쟁터였다.
20년 넘게 대사와 노래로 메시지를 던져온 그가 이번에는 춤으로 사회에 맞선다. 오는 27~29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무대에 오르는 '호동'은 그가 처음으로 연출하는 무용극이다. 이번 작품에서 감염병의 세계적 확산으로 무기력해진 개인의 고통을 녹여냈다.
"지난 2년 동안 인간의 자유보다 국가의 통제가 더 중요했잖아요. 개인이 자유로울 수 없었어요. 의지가 사라지는 시기였죠. 거대한 권력의 통제 속에 인간의 자유 의지가 없어질 수도 있다는 걸 모든 사람들이 느꼈을 겁니다."
'호동'은 국립무용단이 창단 60주년을 기념해 '삼국사기'에 나오는 고구려의 호동 왕자 설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대중이 보고 즐길 수 있는 춤'을 목표로 무용극의 기틀을 정립한 국립무용단 초대 단장 고(故) 송범의 '왕자 호동'(1974년)을 오마주해 무용극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미래의 전통으로 확장하고자 하는 의지를 담았다.
호동 설화는 적국인 고구려의 왕자인 호동과 사랑에 빠져 고국을 배신하고 자신의 나라를 지켜주는 북 자명고를 찢은 낙랑 공주의 이야기다. 하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두 인물의 사랑보다 전쟁이 일어난 사회에서 그에 반대하는 신념을 가진 개인의 내면에 초점을 맞췄다.
"호동의 이야기가 어렵지는 않지만, 흔히 알고 있는 사랑 이야기로 풀지 않았기 때문에 어려울 수도 있어요."
이지나가 무용극에 참여한 것은 지금까지 창작극에 공을 들여온 것과 맥을 같이한다. '그리스' '헤드윅' '펌프 보이즈' '컴퍼니' 등 유명 작품의 라이선스를 연출하며 기반을 다진 그는 '서편제' '광화문연가' 등 창작 뮤지컬을 연이어 연출하며 창작 콘텐츠의 중요성을 강조해왔다.
"이제 한국도 선진국이 돼가고 있는 거 같아요. 우리 전통에 대해서 자부심을 느끼기 시작한 거 같아요. 전통이 고급스럽게 느껴지는게 선진국이라고 생각해요. 우리 예술가들은 우리 것을 만들 수 있는 기회가 왔으니 잡아야죠."
그럼에도 우리 문화를 전통이라는 고정관념에 얽매어 바라볼 필요는 없다고 강조했다.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이 보고 느낀 것들이 현대적인 한국의 멋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호동'은 이지나가 생각하는 가장 현대적인 한국의 아름다움이 담긴 작품이다.
"국립무용단의 작품이 컨템퍼러리(현대적)하기 때문에 작품을 보고 이 안에 한국적인게 뭐가 있냐는 질문을 받기도 해요. 그런데 이건 전통 무용이 아니거든요. 지금 한국의 무용가들이 표현하는 한국 무용이에요. 국립무용단이 한국의 현대 무용을 보여주는 것이죠.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가 느끼는 감정이 드러난 작품이라는 점을 알고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박대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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