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초적인 자연의 힘을 표현해온 생명의 화가 노은님 화백이 원점으로 돌아갔다.
미술계와 노 화백 유족에 따르면 노 화백은 18일 독일 함부르크 병원에서 별세했다. 향년 76세.
1946년 전북 전주에서 태어난 그는 한국 여성 작가로서는 최초로 국립 함부르크 조형예술대학의 정교수로 임용돼 20여 년간 독일 미술 교육에 기여했다. 또 바우하우스와 베를린 세계 문화의 집, 베를린 도큐멘타, 국제 평화 비엔날레 전시 등에 초대되면서 국제적으로 명성을 떨쳤다.
노은님, 무제 (1987) [사진 제공 = 가나아트]
한국 작가로서는 드물게 프랑스 중학교 문학 교과서에 작품이 수록됐고, 지난 2019년 11월 독일 미헬슈타트 시립미술관에 그를 기리는 영구 전시관도 개관했다. 매체와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유화, 한지에 그린 흑백의 아크릴화, 설치미술, 퍼포먼스, 테라코타 조각, 심지어 교회의 스테인드글라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작품활동을 펼쳤다.노 화백은 '자연은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지, 이를 구성하는 힘은 어떻게 작용하는 것인지'를 평생 화두로 삼아서 작업해 왔다. 그의 작업은 바닥에 커다란 한지, 또는 여러 개의 캔버스 천을 한꺼번에 늘어놓고 붓, 빗자루, 때로는 걸레 등 손에 잡히는 도구를 즉흥적으로 집어 든 채 긋고, 칠하고, 던지고, 찍어 누르는 격정적인 과정을 통해 완성된다. 그 결과물인 새처럼 보이면서도 동시에 물고기로도 보이는 불가사의한 암시와 압축된 반추상의 형상은 자유롭게 남겨진 화면의 여백과 함께 관람자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시구(詩句)로 다가온다.
노은님, 무제 (1986), Mixed media on paper, 118.7 x 180 cm [사진 제공 = 가나아트]
독일의 대표적 미술평론가인 아넬리 폴렌은 '동양의 명상과 유럽의 표현주의를 잇는 다리'라며 그의 작품을 극찬했다.노은님, 무제 (1986(, Mixed media on paper, 101.5 x 71.5 cm [사진 제공 = 가나아트]
작가는 생전에 "참다운 예술은 진정한 순수함을 원한다. 모든 복잡함이나 기술을 떠나, 단순함이 남아 있을 때 예술은 살아난다"며 단순하면서도 천진한 작품 세계를 펼쳤다. 또 노장사상에 심취했던 작가는 1982년 '살아 있는 모든 것은 항상 원점으로 돌아간다. 나는 점을 하나 찍는다. 그 점은 선이 되어 가고 또 그 선은 또한 원이 되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며 윤회에 대한 본인의 생각을 정리한 바 있다.노은님, 마리타가 만든 정원(Marita`s Garten) (1999), Acrylic on canvas, 40 x 49.8 cm [사진 제공 = 가나아트]
[이한나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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