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나 연출·이셋 음악감독 합작…무용극 장르 정립한 송범의 작품 재해석
국립무용단이 창단 60주년을 맞이해, 우리의 호동 설화를 새롭게 해석한 신작 무용극 '호동'을 선보입니다.
'호동'은 국립무용단의 초대 단장 고(故) 송범이 1974년 선보인 무용극 '왕자 호동'과 1990년 '그 하늘 그 북소리'를 계승하는 동시에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입니다.
국립무용단은 "송범이 국내에서 정립한 무용극이라는 장르의 정통성을 되새기면서도 오늘날 무용극의 가능성을 확인해볼 무대가 될 것"이라 기대했습니다.
여기에다 뮤지컬계의 1세대인 이지나 연출가가 연출을 맡고 '오징어 게임'의 오리지널사운드트랙(OST)에 참여한 이셋(김성수) 작곡가가 음악감독으로 참여해, 설화를 소재로 한 무용극에 대한 대중의 이해를 최대한 돕는 한편 장면마다 상징성을 부여했습니다.
'호동' 공연이 오는 27일부터 29일까지 서울 중구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예정된 가운데, 이 기획 공연의 취지와 연출 등을 풀어봅니다.
"집단의 광기 속 소외되는 호동…너도 호동이고, 나도 호동"
국립무용단 무용극 '호동' 제작발표회 공연 장면 시연 [사진 =MBN]
이지나 연출가는 국립극장에서 어제(11일) 열린 제작발표회에서 "집단의 광기 속에서 항상 소외되는 호동에 자신을 투영하면 좋겠다"며 "너도 호동이고 나도 호동"이라고 이번 공연의 색다른 해석을 공개했습니다.
호동 설화는 <삼국사기> 대무신왕조에 나오는 기록으로, 적국인 고구려의 왕자인 호동과 사랑에 빠져 고국을 배신하고 자신의 나라를 지켜주는 북 자명고를 찢은 낙랑 공주의 이야기로 흔히 전해집니다.
하지만, 무용극 '호동'은 두 인물 간의 사랑보다 전쟁이라는 운명과 사회에 대립했던 호동에 집중했습니다.
이 연출은 "한 개인이 가족이 됐든, 회사나 국가가 됐든, 집단에 섞이지 못하는 경험은 누구나 할 수 있다"며 "우리 내면에서 섞이지 못하는 단체와 섞이지 못하는 내가 잘못인가 질문을 던지며 호동에 자신을 투영해주면 좋겠다"고 설명했습니다.
"코로나19가 무용극의 모티브"
무용극 '호동'은 코로나19의 확산, 그리고 그로부터 생겨난 국가의 개인 통제를 극의 모티브로 삼았습니다.
이 연출은 "평화를 추구한 호동이 어떻게 집단에 의해 낙랑의 공주를 이용해 자명고를 찢게 했고 자신의 내면도 피폐해졌는지 표현하려 했다"며 "우리 사회도 코로나19를 겪으며 사회적인 통제 속에서 개인의 자유의지로 저항할 수 없지 않았냐"고 말했습니다.
국립무용단의 손인영 예술감독 역시 "코로나19는 국가관이나 개인에 대해 생각해볼 좋은 계기였다"며 "중국에서 개인이 말살되고 정치에 휘둘리면서 자유주의 국가들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우리는 중간의 어디쯤을 봐야 할지 거시적으로 생각할 때이기도 했다"고 밝혔습니다.
손 감독은 같은 이유로, 국립무용단 창단 60주년을 맞이해 송범의 다른 작품 '별의 전설(1973년)'과 '도미부인(1984년)'의 재해석도 고민했지만, "사랑 이야기만 해서는 되겠나, 한번 거시적으로 생각할 수 있도록 짚고 넘어가야겠다"는 판단에 작품을 결정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자명고와 낙랑공주 이야기도 각색했다
국립무용단 무용극 '호동' 제작발표회 공연 장면 시연 [사진 =MBN]
'호동'에서는 국립무용단원 전원인 44명이 총출동해, 호동의 억압된 상황과 복잡한 감정이 충돌하는 내면의 갈등을 무대에서 온 몸으로 표현해냅니다.
자명고가 원작에서는 낙랑국의 위험을 알리는 북의 형상을 했다면, '호동'에서는 개인의 양심이 국가의 세계관을 거부하는 위태로운 순간을 나타내고, 낙랑공주도 자명고와 마찬가지로 호동의 내면을 나타내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국악기에 인도 전통악기에 전자음악 기법과 코딩 활용
이셋 음악감독은 뮤지컬과 달리, 텍스트(말)에 구애받지 않고 음악 자체로도 상징을 드러내는 새로운 음악적인 시도를 했습니다.
이셋 감독은 "힘 있는 국가를 이야기할 때는 기존의 악기를 사용했다"며 "반대로 서사를 가지지 못한 개인에는 전자악기를 사용하고 탁자를 치거나 병을 치거나 하는 소리인 글리치를 활용했고, 4분의 3박자도 아닌 이상한 박자로 개인의 불규칙성을 표현했다"고 밝혔습니다.
이밖에도 실시간 코딩 프로그램을 활용해 국악 리듬을 구현하는 것은 물론, 신시사이저와 가상 악기, 인도 전통악기인 하모니움과 서양 현악기 등 이질적인 음색을 가진 악기를 사용해 전통과 현대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드는 음악적인 실험을 곁들였습니다.
'호동'에서 상징성을 보여줄 키 포인트 안무는?
무용극은 서사의 구조를 춤으로 표현하는 만큼, 서사에 대한 관객들의 이해도가 떨어질 수 있습니다.
'호동'에서 상징적으로 볼 몇 가지 안무 포인트를 기자가 질문했습니다.
송지영 안무가는 "군인과 군대, 국가를 표현할 때는 사각형이나 반듯한 직선, 사선을 표현하고, 개인을 표현할 때는 둥굴둥글한 팔의 흐름을 보여준다"고 말했습니다.
4장의 전쟁 장면에서는 "누가 봐도 저거는 싸움이 일어나는구나 싶게 적대감을 가진 동작을 짰다"며 "안무가들에게 '저 사람과 눈을 마주치지만 저 사람을 피해가겠다'는 느낌을 보여달라고 요청했고 착용한 겉옷도 하나의 소품이 될 정도로 에너지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한국 무용극 흥행 가능성은?
국립무용단이 노력하지만 민속적인 이야기가 과연 끌리겠냐는 어느 한 취재진의 질문에 손인영 감독은 "안 그래도 해외에서 '독특한데 뭐지?' 싶은 것을 만들기 위해 굉장히 고민한다"며 "한국무용의 안무가를 키우기 위한 국립극장 프로그램도 진행중"이라 밝혔습니다.
손 감독은 "특히 해외에 나가면 '너네 것은 무엇이냐'는 질문을 많이 들어서 더 그런 생각을 한다"며 "'오징어게임'도 흥행했는데 우리 전통을 어떻게 활용할지 잊어선 안 된다"고 말하고, 실험적인 방향이 좋은 창작을 위한 기폭제가 되면 좋겠다는 바람을 말했습니다.
[ 김문영 기자 (kim.moonyoung@mbn.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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