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디지털 아트 작가 '미스터 미상'은 지난 1월 글로벌 온라인 플랫폼에서 가상세계 도쿄 땅을 1.19이더리움(암호화폐·약 130만원)에 매입해 갤러리를 열었다. 이 곳에 들어가면 그의 대표작 10여점을 입체적으로 감상할 수 있다. 그 사이 이더리움 가격이 200만원대로 올라 갤러리 대지 시세도 2배 올랐다. 그는 "더 많은 세계인들에게 작품을 보여주고 싶어서 가상 갤러리를 열었다"고 말했다. 디지털 아트 작가 이윤성도 가상세계에서 밀라노 해변 땅을 사서 갤러리를 지은 후 그룹전을 펼쳤다.
두 작가는 최근들어 대체불가토큰 NFT(Non-Fungible Token) 아트를 거래한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NFT란 블록체인 암호화 기술을 활용해 JPG파일이나 동영상 등 콘텐츠에 고유한 표식을 부여하는 신종 디지털 자산이다. 디지털 미술품의 진품을 인증하기 때문에 희소가치가 높아져 가격이 폭등하고 있다. 오프라인 갤러리에서 거래가 쉽지 않았던 디지털 아트가 팔릴 유통 경로가 생겼다는 점에서 반길 만한 일이다. 오프라인 작품가보다 많게는 10배 높게 팔리기에 작가들에게 장밋빛 신세계가 열린 것이다.
그러나 얼마전 디지털 아티스트 비플이 제작한 5000개 NFT 콜라주 작품 '매일: 첫 5000일'이 무려 6930만달러(약 783억원)에 팔렸을 때부터 거품 논란이 뜨겁다. 낙찰자로 알려진 싱가포르 NFT펀드운용사 메타퍼스 설립자인 메타코반(가명)이 NFT 가치를 끌어올리기 위해 거액을 투입했다는 음모론도 제기됐다.
가상세계에 오픈한 디지털 아트 작가 '미스터 미상' 갤러리. <사진제공=미스터미상>
NFT 아트가 투기와 비자금 세탁용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는 경고 등 부정적인 여론이 팽배하다. 여기에 디지털 작품 진품을 소유했다는 만족감에 '찬물'을 끼얹는 해킹 사건이 발생했다. 최근 NFT 거래소 '니프티 게이트웨이' 시스템이 해킹되면서 여러 사용자들이 NFT를 도난당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를 되찾을 방법은 거의 없다고 한다.각종 부작용에도 작가들의 NFT 아트 도전은 계속되고 있다. 주요 결제수단인 이더리움을 얻는 과정을 '채굴'이라고 하니 과거 미국 서부 '골드 러시'가 떠오른다. 그러나 작가들이 일확천금을 노리고 NFT 아트를 만드는 것만은 아니다.
3년전부터 NFT 아트에 흥미를 느껴온 요요진 작가는 "큰 돈을 벌기보다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작품을 보여줄 기회다"고 말했다. 회화, 영상, 미디어아트, 애니메이션 작업을 선보여온 그는 개인전(15일까지 서울 성수동 공장갤러리) 출품작 34점 중 15점을 NFT 거래소 '오픈씨'에 업로드했다.
최근 6억원에 NFT 작품을 판 마리킴도 코로나19 시대 오프라인 전시가 사라지면서 대안으로 NFT를 선택했다. 그는 "일종의 퍼포먼스로 NFT 작품을 출품했고 오프라인 전시와 병행할 것"이라며 "국내 미대 졸업생 1% 정도가 갤러리에 입성하는 것을 감안하면 기회의 땅이다"고 했다.
꼰대들은 색안경을 끼고 보지만 이미 젊은 사람들은 가상세계에서 재미있게 놀고 있다. 구찌 등 명품 옷을 사서 아바타에 입히고 거액을 주고 최첨단 게임 아이템을 산다. 현실에서는 사기 힘든 부동산을 사서 나만의 집과 갤러리도 짓는다.
투기성 자본도 있지만 새로운 디지털 예술을 원하는 수요층이 분명히 있다. 언론에 보도된 거액 판매작보다는 소소한 가격에 팔리는 NFT 작품이 더 많다.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현실세계 집에 실물 미술 작품들을 두는 것보다 PC 속 디지털 아트를 더 선호한다.
캐슬린 킴 법무법인 리우 변호사는 "가상세계에서 창작자와 구입자들이 서로 대화하면서 신뢰를 쌓아나가며, 남의 작품을 도용해 만든 NFT 아트를 거래 플랫폼에 신고하고 퇴출하는 자정기능도 자리잡았다"며 "과열됐지만 NFT 아트 생태계는 이미 구축되고 있다"고 말했다.
[전지현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에 대해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