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가서 농사짓고 살면 행복할까?"
MBN에서 방송하는 '나는 자연인이다'는 중년남성들의 '최애 프로그램'으로 꼽힌다. 언젠가 꼭 시골에 가서 살고싶다는 로망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아내들이 질색을 하는데도, 중년 남성들은 꾸준히 '나는 자연인이다'를 시청한다. 비단 중년남성 뿐 아니라 삭막한 도시에 지친 현대인들은 누구나 한 번쯤 꿈을 꾼다. "우리, 시골에 가서 사는 건 어떨까?"
서울에서 태어나 전북 완주군 고산면에 살고있는 임경수 협동조합 '이장' 대표는 "코로나19로 도시인들이 농촌으로 찾아오고 있다 한다. 읍내와 시장의 식당, 카페들은 전보다 더 북적북적하다. 하지만 이 팬데믹 상황에 직면해 주목받고 있는 시골의 가치는 '전염병으로부터 안전한 장소'여서라기보다 언택트(물리적 거리)와 콘택트(사회적 거리)가 공존하는 '느슨한 연대'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해석한다. 임 대표는 최근 '이제, 시골(소일펴냄, 1만3000원)'이라는 책을 내고 우리 시대의 귀향을 다시 이야기한다.
책은 막연한 동경이 아닌 성공적인 귀향을 위해 생각해봐야 할 것들을 꼼꼼이 짚어준다. 저자가 묘사하는 귀농 라이프는 영화 속 한 장면 같다. "햇빛이 적을 때 모여 밭일을 하다가 손수 추출한 커피와 새참을 먹고 다시 호미를 잡는다. 작업이 끝나면 누군가는 이웃집 울타리를 고치러 가고 누군가는 공동체 사무실로 출근하고 또 누군가는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읍내 카페로 가 커피를 내린다.(본문 중)" 농사를 잘 지을 수 있을까 고민하는 이들에게는 이 문장을 권한다. "역사 이래로 농촌에 농민만 살았던 것도 아니고 농사만 짓는 농부도 없었다. 그래서 시골에 간다고 꼭 농사를 지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구절에 다다라서는 당장이라도 떠날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러나 준비안된 귀농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임 대표는 책에서 "시골에선 적은 돈으로 살 수 있을 테니까, 농사도 큰돈을 벌 수 있다고 하니까, 내 맘대로 일해도 되니까, 조직 생활을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서 등등으로 귀농을 결심한다"고 지적한다. 이런 생각의 대부분은 오해와 편견, 일부 귀농인의 제한된 사례에서 비롯된 이야기라는 것이 임 대표의 말이다. 결국 "돈을 중심으로 농사를 생각하면 답이 별로 없다. 생활공간과 하는 일이 바뀌었을 뿐 쳇바퀴 돌기는 마찬가지이다. 지금의 농사는 자본주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중략) 이왕 설국열차에서 뛰어내릴 거라면 종일 해도 지겹지 않은, 죽기 직전까지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연장이나 도구를 잡았을 때 짜릿한 그런 일을 찾아보자"는 것이 저자가 '이제, 시골'을 쓴 이유다.
가슴뛰는 일을 찾기 위해서는 본능에 귀를 기울여야 하고 내 가슴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 이 소리를 찾아 귀향해야 성공할 수 있다. 임 대표는 이같은 라이프스타일을 시오미 나오키의 '반농반X’ 개념으로 설명했다. "가슴의 소리를 찾아 귀향해야 하고 반농반X의 'X'는 본능과 연관되어야 한다"는 문장은 이 책의 핵심 메시지다. 시골로 내려가 일의 절반은 농사로, 나머지 반은 좋아하는 일이나 사회에 보탬이 되는 일을 하면서 사는 삶이다.
임 대표는 "가장 우려하는 것은 농사를 지나치게 중요하게 여기고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소박한 재무적 목표를 설정하고 본능을 찾아내 그 본능이 'X'로서 재무적 목표에 대한 적절한 역할이 가늠되면 그 나머지를 충족할 수 있는 적정한 규모로 농사를 디자인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귀향디자인은 ① 본능 찾기 ② 다운시프트 디자인 ③ X의 디자인 ④ 농의 디자인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임 대표는 말한다.
저자는 서울대 환경관리를 전공하고 대기오염 분야로 석사논문을 썼다. 이후 한 유기농을 하는 목사님으로부터 "환경공부를 한 놈이 농사를 지어야지!" 하는 말을 듣고 평생의 지침으로 삼아, 1998년 '쌀 경작체계의 환경친화성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호주 크리스탈워터즈 생태마을에서 퍼머컬처를 공부했고, 2001년 후배들과 춘천에서 '주식회사 이장'을 창업해 여러 지역의 마을을 컨설팅했다. 신활력사업을 기획, 2010년 전북 완주군으로 이사하면서 사회적기업 '이장'의 대표이사직을 사임하고 완주군 고산면에 협동조합 '이장'을 새로 설립해 주민자치와 지역자산화사업을 이어가고 있다. 책의 부제는 '퍼머컬처로 귀향을 디자인하다'이다.
[신찬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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