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회째를 맞는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주인공은 영화 감독도, 배우도 아니다. 바로 촬영 감독이다. 이번 영화제 회고전 주인공은 1929년 일본 도쿄 태생, 촬영 감독 정일성(90)이다. 그는 구순(九旬)임이 믿기지 않을 만큼 정정했다. 흑갈빛 안경 렌즈 아래 눈빛은 예리했고, 음성은 쩌렁쩌렁했으며, 말마디엔 막힘이 없었다.
한국영화 100년사(史) 산증인인 그를 4일 오전 부산국제영화제 현장에서 만났다. 부산국제영화제 사상 처음 촬영 감독이 회고전 주인공이 된 소감은 어떨까. '격조와 파격의 예술가'로 불리던 그는 지금껏 138편을 촬영했다. 김기영, 유현목, 김수용, 임권택 등 기라성 같은 거목들 영화는 거의 그의 카메라를 거쳐 탄생했다.
"내가 영화를 시작한 지 10년쯤 됐을 때였나. 히치콕과 존 포드 감독 회고전이 열린다는 기사를 외신에서 봤다. 그때 이런 생각을 했다. 나도 저들 나이가 될 때까지 영화를 할 수 있을까···. 그 뒤로 60여 년이 흘렀고, 나는 지금도 카메라를 들고 있다. 최근 일본 평론가 사토 다다오 씨가 이런 편지를 보내오더라. '내가 아는 상식에서 촬영 감독 회고전을 본 적이 없다. 한국은 대단한 나라다.' 개인적으로 영광이고, 모든 촬영 감독들에게 이 순간이 하나의 계기가 됐으면 한다."
[사진 = 연합뉴스]
그는 1957년 말 촬영 감독으로 데뷔했다.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해방 후 한국전쟁을 맞았고, 자유당 독재정권기를 거쳐 4·19 혁명과 5·16 군부 쿠데타, 10·26 사태와 민주화운동까지 온몸으로 관통해왔다. 그는 "긴장 없이 살 수 없는 시절이었다"며 "이 모든 게 영화 일에 크나큰 도움이 되었다"고 했다. "일종의 정신무장이랄까, 불행한 시대에 살며 영화로 사회에 어떻게 기여할 것인가를 늘 고민할 수 있었다. 우리 민족이 겪은 근현대사의 고락(苦樂)을 어떻게 카메라에 담아낼지를." 그 '정신 무장'의 본보기가 된 게 춘사 나운규의 '아리랑'(1926)이다. 정 감독 생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작품이다. "전체주의 시대에 영화를 통해 항거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 여건에서도 나라 사랑하는 마음으로 '아리랑' 같은 명작을 탄생시킨 거다. 그 정신을 후대가 이어받아야 한다. 그래야만 더 좋은 영화가 계속 나올 수 있다. 슬프고 열악했던 시절을 겪어온 우리 세대가 후배들에게 드리고 싶은 당부다."
그간 찍은 것들 중 가장 애착가는 작품을 묻자 그는 자책부터 했다. "138편을 찍었으나 그중 40~50편은 대단히 부끄럽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다 쓰레기통에 버리고 싶다. 젊을 땐 내가 찍은 흥행작, 수상작을 대표작으로 댔는데, 철딱서니 없는 짓이더라. 이 나이 쯤 되니 이젠 내가 부끄럽게 여기던 40~50편이 교과서처럼 나를 지배한다. 내가 열심히 찍고, 다수가 인정해준 영화보다 외려 이 실패한 영화들이 내게 진실로 좋은 교과서였음을 깨닫는다."
[사진 = 연합뉴스]
외눈으로 세상을 보며 시대의 상처를 카메라에 담아온 그다. 세상은 그가 찍은 숏을 "아름답다"고 하지만, 스스로는 "추호도 아름답게 찍으려 노력해본 적 없다"고 잘라 말한다. 아픈 세상을 아름답게 찍겠다는 건 기만이라 여긴 것일까. 그는 "나는 늘 원칙주의자였다"며 "형식과 리얼리즘, 모더니즘이라는 세 원칙을 지키며 이들 상위 개념으로 '격조'까지 살려내려 했다. 영화의 격조는 영화 감독이 아닌 촬영 감독만이 구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생의 말년에 다다르고 있는 그도 혹 '못 다 이룬 꿈'이 있을까. 이에 대해 묻자 그의 입가로 은은한 미소가 감돈다. "이제 더 만족을 채운다는 것 욕심 아니겠냐"면서 그가 입을 열었다.
"지금까지 총 38명의 영화 감독과 작업했다. 임권택과는 30년 간 20편 정도를 함께했고. 그 다음이 김기영, 김수용, 유현목 순이다. 그러니 지금의 나를 있게 해준 건 3분의 1이 이들 덕이다. 나머지 3분의 1은 매해 6개월 이상 떠돌이 생활을 했던 남편을 대신해 집 지켜준 아내 덕이다. 그 나머지가 내 능력일 거고.(웃음). 나는 지금도 상상한다. 나를 잘 모르는 젊은 감독이 어느날 느닷없이 같이 영화 만들자고 권하는 상상을. 길 없는 허허벌판에서 새 길을 내고 싶다는 상상을...."
어쩌면, 그야말로 에드워드 사이드가 말한 '말년의 양식'의 표본일 지 모른다.
[부산 = 김시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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