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감이 꽃잎이 됐다. 부드러운 붓질이 작약, 해바라기, 장미, 라일락 등을 피워냈다.
화면에서 핀 꽃이 흙에서 나온 것보다 더 화사하거나 더 처연하게 느껴진다. 화가 김성윤(34) 손 끝에 감정이 실려서다. 서울 갤러리현대 개인전 'Arrangement(꽃꽂이)'에서 만난 그는 "2015년 결혼 후 아이를 낳고 대상을 보는 태도가 달라져 꽃이 눈에 들어왔다. 아무리 다르게 보려고 해도 꽃은 꽃이고 아름답다"고 말했다. 2014년만 해도 존경하는 화가를 좀비로 그려내는 어두운 그림 작업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내가 꽂꽃이를 배우면서 집안에 들어온 꽃이 시선을 붙잡았다. 17세기 정물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는데 차별점은 '구글'과 '꽃병'이다. 서울 도봉구 강북꽃도매시장에서 꽃을 사고 구글에서 검색한 꽃 이미지를 합쳐서 '그림 꽃꽂이'를 했다. 같은 계절에 피지 앉는 꽃들을 조합해 화면에서만 가능한 꽃꽂이다. 개화 시기와 피는 장소가 다른 꽃들을 한 화면에 담아 시공간을 초월한 벨기에 정물화 거장 얀 브뤼헐(1568~1625), 네덜란드 정물화 대가 얀 반 허이섬(1682~1749) 영향을 받았다.
작가는 "옛 화가를 존중하고 스승이라고 생각한다"면서도 "미술사를 많이 활용했지만 그게 목적은 아니고 재료로 활용했다"고 강조했다.
Peonies in a Polli Jar(75x63.5cm)
그의 정물화에선 꽃병이 동시대를 표현한다. 텅 빈 식료품 유리병에 물을 부어 꽃을 꽂고, 그 병 상표를 인쇄해 액자 하단을 장식했다."결혼 초에 종종 아내에게 꽃다발을 사다주면 화병에 꽂고 남은 꽃을 재활용 유리병에 넣어 못마땅했다. 그런데 다 쓰고 남은 병에 무심하게 꽂은 꽃이 뭔가 내 삶의 한 부분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것 같아 재미있었다. 직업이 화가라 앤디 워홀의 캠벨 스프 통조림 작품이 생각났다. 아내의 쿨한 소비방식을 최대한 자연주의적이고 담담하게 그렸다."
Bouquet of Flowers(116x101.8cm)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 에두아르 마네(1832~1883)가 투병중에 제작한 꽃그림 16점에 경의를 표하는 오마주 그림들도 걸려 있다. 슬픔을 표현하기 위해 화려한 색을 빼고 흑백으로 그렸다."마네의 고통에 공감하고 100년 전이나 똑같은 작약과 카네이션, 라일락 등 꽃의 속성에 끌렸다. 흑백이 상상력을 자극하고 격정보다는 슬픔에 가까워 내 감정을 잘 투영할 수 있었다. 마네 그림 도록 표지가 초록색이라서 액자도 초록색으로 만들었다."
미국 작가 마이클 클라인(39) 작약 그림에 영감을 받은 작품도 있다. 작은 봉우리에서 무수한 꽃잎이 드러나는 드라마틱한 장면에 매료됐다.
구글에서 조합한 꽃을 그려도 꽃병은 모두 실제 모델을 보고 그렸다. 농구공 모양 청자, 꽃과 황금으로 이뤄진 이질적인 도자기는 유의정 작가 작품이다. 우리 시대 삶의 모습을 반영하기 위해서다.
Flowers in the Celadon Vase in the Shape of Volleyball(111x85.5cm)
국민대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김성윤 작가는 2010년 뛰어난 회화성과 독창적 주제 실험 덕분에 대학교 재학 중 갤러리현대가 운영한 윈도우 갤러리에서 작품을 선보였다. 그는 "내가 개인전을 꿈꿔왔던 갤러리현대 공간에 내가 좋아하는 꽃으로 가득 채우고 싶었다"고 했다. 전시는 7월 28일까지.[전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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