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영화는 가슴에 진한 여운을 새긴다. 마치 누군가의 내밀한 속내를 들여다보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더 소중하고 그래서 더 곱씹게 된다. '13년의 공백'이 바로 그런 경우다. 매 장면에 깃든 감정이 가까우면서도 먼 한 남자를 떠오르게 한다. 아버지라는 남자를.
"담배를 사러 가겠다"며 집 나간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았다. 노름꾼이었던 아버지 마사토(릴리 프랭키)는 가정에 더없이 무심했고, 떠난 뒤로는 소식 한 번 전하지 않았다.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는 채, 가족에겐 지독한 고생만이 남겨졌다. 어머니 요코(칸노 미스즈)는 사라진 아버지를 대신해 바깥 일을 했고, 형 요시유키(사이토 타쿠미)은 집안 살림을 전임했다.
그렇게 13년이 흘렀다. 어느 날, 사라졌던 아버지가 예고 없이 돌아왔다. 그것도 3개월만 남은 시한부 처지로. 그러나 어머니와 형, 동생 코지(타하시 잇세이)는 당신이 별로 달갑지 않다. 반길래야 반길 수가 없는 것이다. 긴긴 세월 이들에게 쌓였던 건 원망이요, 미움이었고, 분노였기 때문이다.
영화는 아버지 장례식을 축으로 코지의 플래시백을 자주 밀어넣는다. 극 자체도 코지의 회억이 중심이다. 돌아온 아버지에 대한 그의 심경은 다소간 복잡하다. 어린 시절 글짓기 상을 받아 자랑했지만 외면당했던 기억, 야심한 밤 사채업자들의 행패에 숨죽이고 있던 당신의 초라한 모습, 자상하게 캐치볼을 하고 배트 치는 법을 배웠던 기억 등이 교차한다.
흥미롭게도 영화는 중반부가 돼서야 화면에 제목을 띄운다. 그전까지가 차남 코지의 주관적 회상이 중심이었다면, 이후부터는 장례식장 조문객들의 기억이 주를 이룬다. 식장에 듬성 듬성 모여 앉은 이 연고 없는 조문객들은 죽은 마사토의 친구이며 대변자다.
아버지처럼 약간은 모자라 뵈는 이들은 형제가 몰랐던 아버지와의 추억을 하나 둘 더듬어 간다. 생전의 아버지가 차마 해주지 못한 이야기들이 서서히 짜맞춰진다. 몰랐던 당신의 진심과 좋았던 이면들이 속속 드러나는 순간이다. 이에 코지는 "다행이다"며 조용히 눈시울을 붉힌다.
엔딩 크레딧에 흐르는 노랫말처럼 "어디에나 있을 것 같은 가족의 풍경"을 생각해보게 하는 영화다. 절제된 톤으로 사려 깊게 밀어 붙이는 정서의 힘이 놀랍다. 제20회 상하이국제영화제 최우수 감독상 등을 받은 사이토 타쿠미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7월 4일 개봉.
[김시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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