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금보성은 한글을 테마로 오래전부터 회화 및 조각 작업에 천착해 왔다.
이번 서서울예술교육센터의, 체험프로그램과 전시가 맞물린 기획 프로그램인 ‘하늘을 나는 방파제’는 작가에게 있어 ‘평면-입체-설치’로 전개되는 한글에 대한 그간의 조형적 실험을 위한 특별한 장이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이 전시에서 최근에 부쩍 관심을 기울여 온 한글의 입체 조형화를 꾀한 설치 작품들을 대대적으로 선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테트라포드(tetrapod)’라 불리는 ‘호안(護岸)용 블록’ 혹은 ‘방파제 안전석’을 튜브(tube)형의 거대한 공기 구조물로 조형화한 작품들이 그것으로, 작가 금보성은 이번 전시에서 70여 개에 달하는 ‘방파제 블록 형상의 공기 조형물’을 출품했다.
좌우 어디에서 보더라도, 한글의 자음, 시옷(ㅅ)을 닮아 있는 이 구조물들을 대규모로 설치한 이번 전시는, 그에게 있어, 새로운 한글 조형에 대한 확장 가능성을 탐구하는 하나의 실험이자, 그간의 한글 조형에 대한 작품 세계를 중간 점검하는 장이 된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 금보성은 1미터 크기의 ‘방파제 블록 형상의 공기 구조물’ 수십 개를 서서울예술교육센터의 야외 수조 위에 매달거나, 6미터, 8미터 등의 대형 구조물을 주변 잔디 위에 올려놓았다. 게다가 교육센터 실내에 소, 중, 대의 다양한 크기의 구조물을 배치하는 것도 그는 잊지 않았다. 가히 작가 금보성의 작품만으로 구성된 ‘금보성에 의한, 금보성의’ 대규모 개인전이다.
물론 출품작들은 모두 한글 자모(字母)의 ‘ㅅ’자 모양의 공기 구조물들이다. 따라서 각기 크기를 달리 하는 출품작들은 자모 ‘ㅅ’의 쌍둥이들이자, 형제, 자매들이며, 이웃이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주지하듯이, 여기서 ‘자모’란 “음소 문자 체계에 쓰이는 낱낱의 글자” 혹은 ‘낱자’를 의미한다. 즉 자음 14자, 모음 10자로 구성된 현행 한글의 낱자이다. 특히 자모의 일곱째 글자인 ‘ㅅ’은 자음(子音)의 기본자(ㄱ, ㄴ, ㅁ, ㅅ, ㅇ) 중 하나로, 가획자(加劃字 / ㅈ, ㅊ)와 병서자(竝書字 / ㅆ, ㅉ)로 파생되는 글자들의 기본자이자 우두머리이다.
그렇지만 ‘ㅅ’은 결코 혼자서 기능하지 못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한글 학자 주시경이 언급했듯이, 자음이란 “소리는 있으나 스스로 나지 못하고 모음(母音)에 의존한 뒤에야 나는 것”이다. 생각해 보라! 모든 글자는 자음과 모음이 만나 이루어진다. 물론 아랍문자, 히브리문자, 시리아문자가 자음문자로 알려져 있지만, 이들 문자들에도 짧은 선, 점, 원 등 보조 기호를 자음 기호의 위나 아래에 놓아서 모음을 표기함으로써 소리를 유도한다. 그러한 차원에서 엄격히 말해, 순수한 자음문자는 없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작가 금보성이 ‘공기 구조물’의 형상을 빌려온 테트라포드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것은 방파제와 바다 사이에서, 바다와 육지 사이에서 서로의 경계를 지키면서 서로를 연결하는 매개자의 역할을 도맡는다. 보라! 그가 공기 구조물이 지닌 네 개의 다리를 주(主)색과 다른 색들로 각각 도포한 것도 이러한 의미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따라서 테트라포드는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 막중한 역할을 어찌 혼자 감당할 수 있겠는가? 하나의 테트라포드는 방파제를 둘러싼 무수한 테트라포드와 함께 존재한다. 그것은 마치 들뢰즈(Deleuze)와 가타리(Guattari)의 철학적 메타포인 ‘리좀(Rhyzome)’처럼 언제나 복수체로 존재할 때 존재의 의미를 발휘한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집단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할 따름이다. 테트라포드가 방파제를 드러내고 자신이 숨는 것처럼 말이다.
김성호 미술평론가
이번 서서울예술교육센터의, 체험프로그램과 전시가 맞물린 기획 프로그램인 ‘하늘을 나는 방파제’는 작가에게 있어 ‘평면-입체-설치’로 전개되는 한글에 대한 그간의 조형적 실험을 위한 특별한 장이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이 전시에서 최근에 부쩍 관심을 기울여 온 한글의 입체 조형화를 꾀한 설치 작품들을 대대적으로 선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테트라포드(tetrapod)’라 불리는 ‘호안(護岸)용 블록’ 혹은 ‘방파제 안전석’을 튜브(tube)형의 거대한 공기 구조물로 조형화한 작품들이 그것으로, 작가 금보성은 이번 전시에서 70여 개에 달하는 ‘방파제 블록 형상의 공기 조형물’을 출품했다.
좌우 어디에서 보더라도, 한글의 자음, 시옷(ㅅ)을 닮아 있는 이 구조물들을 대규모로 설치한 이번 전시는, 그에게 있어, 새로운 한글 조형에 대한 확장 가능성을 탐구하는 하나의 실험이자, 그간의 한글 조형에 대한 작품 세계를 중간 점검하는 장이 된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 금보성은 1미터 크기의 ‘방파제 블록 형상의 공기 구조물’ 수십 개를 서서울예술교육센터의 야외 수조 위에 매달거나, 6미터, 8미터 등의 대형 구조물을 주변 잔디 위에 올려놓았다. 게다가 교육센터 실내에 소, 중, 대의 다양한 크기의 구조물을 배치하는 것도 그는 잊지 않았다. 가히 작가 금보성의 작품만으로 구성된 ‘금보성에 의한, 금보성의’ 대규모 개인전이다.
물론 출품작들은 모두 한글 자모(字母)의 ‘ㅅ’자 모양의 공기 구조물들이다. 따라서 각기 크기를 달리 하는 출품작들은 자모 ‘ㅅ’의 쌍둥이들이자, 형제, 자매들이며, 이웃이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주지하듯이, 여기서 ‘자모’란 “음소 문자 체계에 쓰이는 낱낱의 글자” 혹은 ‘낱자’를 의미한다. 즉 자음 14자, 모음 10자로 구성된 현행 한글의 낱자이다. 특히 자모의 일곱째 글자인 ‘ㅅ’은 자음(子音)의 기본자(ㄱ, ㄴ, ㅁ, ㅅ, ㅇ) 중 하나로, 가획자(加劃字 / ㅈ, ㅊ)와 병서자(竝書字 / ㅆ, ㅉ)로 파생되는 글자들의 기본자이자 우두머리이다.
그렇지만 ‘ㅅ’은 결코 혼자서 기능하지 못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한글 학자 주시경이 언급했듯이, 자음이란 “소리는 있으나 스스로 나지 못하고 모음(母音)에 의존한 뒤에야 나는 것”이다. 생각해 보라! 모든 글자는 자음과 모음이 만나 이루어진다. 물론 아랍문자, 히브리문자, 시리아문자가 자음문자로 알려져 있지만, 이들 문자들에도 짧은 선, 점, 원 등 보조 기호를 자음 기호의 위나 아래에 놓아서 모음을 표기함으로써 소리를 유도한다. 그러한 차원에서 엄격히 말해, 순수한 자음문자는 없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작가 금보성이 ‘공기 구조물’의 형상을 빌려온 테트라포드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것은 방파제와 바다 사이에서, 바다와 육지 사이에서 서로의 경계를 지키면서 서로를 연결하는 매개자의 역할을 도맡는다. 보라! 그가 공기 구조물이 지닌 네 개의 다리를 주(主)색과 다른 색들로 각각 도포한 것도 이러한 의미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따라서 테트라포드는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 막중한 역할을 어찌 혼자 감당할 수 있겠는가? 하나의 테트라포드는 방파제를 둘러싼 무수한 테트라포드와 함께 존재한다. 그것은 마치 들뢰즈(Deleuze)와 가타리(Guattari)의 철학적 메타포인 ‘리좀(Rhyzome)’처럼 언제나 복수체로 존재할 때 존재의 의미를 발휘한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집단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할 따름이다. 테트라포드가 방파제를 드러내고 자신이 숨는 것처럼 말이다.
김성호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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