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단하고, 훌륭하며 강한 영화."(티에리 프리모 칸 영화제 집행위원장)
"위험하면서도 아름답고, 쇼킹하면서도 놀랍다. 걸작이다."(마이크 굿리지 마카오 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지난 16일(현지시간) 오후 6시 30분 프랑스 칸 뤼미에르 대극장에서 이창동 감독의 '버닝'이 공개됐다. '버닝'은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 '헛간을 태우다'(1993)를 영화화한 것으로, 이창동 감독의 6번째 장편이자, 8년 만의 신작이다.
영화는 가난한 청년 종수(유아인)와 그의 삶에 불쑥 개입한 해미(전종서), 게츠비처럼 정체를 도통 알 수 없는 남자 벤(스티븐 연) 사이에 멀어지는 미스터리물이다. 이 시대 청춘들의 출처 모를 분노와 슬픔을 응집시킨 화면은 시적이라 할 만큼 여운 깊고,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것처럼 폭발적 기운으로 가득하다. 과연, 거장 이창동은 어떤 의도로 이 영화를 만들었을까. 스크린데일리로부터 역대 최대 평점 3.8점을 받아낸 그가 17일 오전 국내외 기자들과 만났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 '헛간을 태우다'(1993)의 어떤 점에 이끌려 '버닝'을 찍었나.
▷원작 소설이 지닌 미스테리한 부분을 영화적으로 구현했을 때, 조금 더 다른 미스테리로 계속 확장시킬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작을 영화로 각색하게 된 배경은.
▷좀 복잡하다. 처음엔 일본 방송사에서 하루키 단편을 영화로 만들어줄 수 없겠느냐고 요청이 왔다. 그러나 내가 연출하는 것보다 젊은 감독에게 기회를 주고 나는 제작을 하는 게 낫겠다 싶어 그리 계획을 했는데, 여러 사정상 이뤄지진 못했다. 그러다 후에 시나리오 작가가 내가 직접 영화화하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을 줬고, 고민 끝에 찍게 됐다. 처음에는 쉽게 영화화하기 힘든 소설이라고 여겼으나, 소설 속 미스테리한 면면을 요즘 우리 세대, 우리 젊은이들 이야기로 영화적으로 확장 가능하겠다는 판단이 섰다.
-원작에서는 작은 개구리에 대한 언급이 있는데 영화에는 빠졌다. 그 이유가 궁금하다.
▷소설에서 주인공이 대마초를 피우는 장면이 있다. 그러면서 어릴 때 연극했던 기억을 떠올리는데, 나는 이걸 영화에서 종수가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더듬는 장면으로 바꿨다. 그리고 윌리엄 포크너가 쓴 '반 버닝'을 영화에 가져왔다. 포크너 소설에서는 아버지 세상의 고통과 관련해 그 분노로 남의 헛간을 태우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 아버지의 분노가 아들의 분노로 옮겨가는 것이 이 시대 젊은이들의 이야기에 보다 가까울 수 있다고 봤다.
-영화가 '화' '폭력', 특히 '분노'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런 주제를 다룸에 있어 의도한 것이 무엇인가.
▷지금 세계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마음에 분노를 품고 있는 것 같다. 종교와 국적과 계급에 관계없이 모두가 분노하고 있는 시대. 각각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개중 젊은 이들이 무언가 표현하기 힘든 내적 분노를 갖고 있으면서 현실에선 무력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봤다. 문제는 그 분노가 무언가 공정하지 못한 세태에 대한 분노인데, 그 원인을 분명히 규명할 수 없다는 것이 요즘 세대, 요즘 시대의 문제라는 거다. 과거엔 분노의 대상이 비교적 분명했고 이유도 명확했던 것 같다. 그러나 지금은 세상이 보다 세련되어지고 편리해졌지만 젊은이들의 감정은 그렇지 못하다. 그래서 이런 세계 자체가 젊은이들에겐 미스터리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극중에 두 번 화염이 치솟는다. 하나는 버려진 헛간이 종수의 상상 속에서 불에 탈 때고, 또 하나는 물신주의 사회의 상징이라 할 벤(스티븐 연)의 포르셰가 불에 탈 때다. 그 두개를 대비시킨 의도가 궁금하다.
▷종수는 자기가 어린 나이에 바라본 그 타고 있는 비닐하우스가 자기 자신과 같다는 느낌을 갖게 됐을 것이다. 포르셰가 불에 타는 건 정반대라 볼 수 있겠다. 우리가 바라고 원하지만 손에 가닿을 수 없는, 서울의 가장 고급스런 동네에 사는 '게츠비처럼 알 수 없이 돈이 많은 사람들'의 모습. 그것이 타고 있는 이미지다. 양극단에서 자신의 공간이 불에 타고, 자기가 분노의 대상으로 여기는 것이 불에 탄다.
-전작들에 비해 설명적이지 않다. 일반 관객이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있는 한편 더 적극적으로 영화에 개입시킬 여지를 만들어준다.
▷'버닝'에는 요즘 젊은이들에 대한 이야기, 문학과 영화를 비롯한 예술이 갖는 의미, 이런 많은 코드들이 숨겨져 있다. 다만 나는 그것을 설명하는 방식이 아니라 굉장히 단순하게 영화적으로 보여주고자 했다. 관객도 한 편의 스릴러를 보는 듯한 영화적 방식으로 먼저 느끼길 바랐다.
-극중 해미(전종서)가 노을을 바라보며 반나신으로 춤을 추는 장면이 굉장히 시적이다.
▷겉으로 보기엔 '버닝'은 종수와 벤이라는 두 남자 대결처럼 보인다. 그들 사이에서 한 여자가 사라지지만 여자는 저 스스로 삶의 이미를 찾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래서 저녁 노을이라는 자연의 신비 앞에 홀로 삶의 의미를 캐는 춤을 추는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다.
-종수는 소설 습작생이다. 뭘 써야할 지 모르던 그가 해미의 방에서 무언가를 끄적이는 장면이 나온다. 그러면서 차창 밖으로 남산타워를 바라본다. 그 남산타워를 종수가 자위행위를 하면서 바라보는 장면과 비교가 된다.
▷남산타워는 외국인들에게는 서울타워로 알려져 있다. 관광객들이 가장 먼저 가보고 그 공간을 한 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곳이다. 해미는 그 서울타워 바로 밑에 하루 한 번 햇빛이들어오는 좁은 방에 살고 있다. 서울의 상징인 서울타워와 그렇게 작은 가난한 젊은 여성이 살고 있는 작은 방과의 대비가 일단 있었다. 그곳에서 가난한 섹스도 하지만 여자가 없는 방 안에서 종수가 요즘 젊은이들이 많이 그러하듯 홀로 섹스를 하는 자위장면도 있고. 결국 그녀가 없는 그 방에서 한 편의 소설을 쓰게 되는데, 그 소설이 어떤 내용의 소설인지는 독자의 상상에 맡기겠다.
[칸 = 김시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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