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은 혁명의 계절이다. 민주주의, 민주주의, 가난과 슬픔으로 점철된 이 땅의 조국 위에 꿈과 희망을 안겨 준 계절이다. 잘 보면 종로거리를, 을지로를, 광화문 앞 광장을 달리던 우리들의 선배가 보인다. 아아, 그들의 핏자국이 선연히 보인다. 그들의 죽음은 헛되이 사라진 듯 보인다."
27세의 청년 최인호는 '연세춘추'에 이런 글을 실었다. 당시 민주주의를 수호하다 산화한 젊은이들에게 바치는 글이었다.
생전의 다작 만큼이나, 사후에도 최인호의 글은 쉼 없이 발굴되고 있다. 최인호 소설가(1945~2013)의 5번째 유고집 '누가 천재를 죽였는가'(여백 펴냄)가 출간됐다. 투병의 기록을 담은 '눈물', 딸과 손녀를 향한 사랑을 기록한 '나의 딸의 딸', 법정스님과의 대담집 '꽃잎이 떨어져도 꽃은 지지 않네', 문학적 자서전인 '나는 나를 기억한다'에 이어 이번 책은 30~40년 전에 쓴 초기글을 비롯해 습작노트와 신문, 잡지 등에 기고한 원고를 모은 것이다.
작가로서의 의식, 역사에 관한 글, 일본의 망언에 대한 비판, 예술에 관한 생각 등이 두루 실린 이 책에서 가장 두터운 분량은 차지하는 건 '천재론'이다. 카프카, 스르트르 등 많은 예술가들의 작품을 논하고, 특히 화가 이인성의 어처구니 없는 죽음에 대해 동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공동 책임이라고 비판한다. 젊은 나이에 취객으로 오인 받아 치안대원의 총을 맞아 죽은 이인성의 입장을 대변하며 "왜 우리는 그들을 죽은 다음에 추모하는가"라고 일갈한다.
"예술가는, 천재의 예술가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는 신에게서 태어날 뿐이다. 왜 신에게서 태어난 그를 죽여야만 하는가. 나는 총을 쏘지 안았다라고 자위하지 말라. 나는 그 시대에 살고 있지 않았다라고 자위하지 말라."
'천재 작가를 위한 고언'에서는 신춘문예에 당선되기 위한 노하우도 들려준다. 제목이 그럴듯해야 하며, 작품 첫머리 원고지 5장 정도가 매우 충격적인 내용이어야 한다는 등의 충고다. 작가는 침샘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도 여러 소설적 구상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가 마지막으로 쓰고 싶었던 것은 연애소설이었다. 작가로서의 마지막 소망을 담은 '나는 왜 문학을 하는가'에서 그는 이렇게 고백한다.
"작가로서 나의 마지막 소망은 내가 불어넣는 입김에 영성이 깃들기를 바랄 뿐이다. 마치 목각인형 피노키오가 마침내 살아 움직이는 인간이 되었듯이."
[김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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