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소유여서 우리집이 아니다. 너와 내가 살고 있어 우리집이다. 함께라면 월세방도 전세방도 우리집이다...'
집 살 돈이 없어 고민하는 사람들에게는 따뜻한 위안이지만 아파트를 파는 건설사의 입장에서는 섭섭한 소리일지도 모른다. 이 시를 쓴 사람은 건설회사인 한라의 신현복 이사(54)이다.
신 이사는 지난 달 말 <호수의 중심>이라는 두 번째 시집을 냈다. 그의 시에는 우리네 일상을 바라보는 솔직하고 따뜻한 시선이 배어있다. 시집은 제목인 호수의 중심 외에도 '아내의 자전거·동행·때론 부재 중이고 싶다' 등의 시를 담았다.
거칠고 남성적인 이미지로 통하는 건설업계에서 감수성을 한껏 담은 시를 쓴다는 것은 언뜻 보면 어울리지 않는다. 신 이사의 전공도 문학과는 멀었다. 대학에서 경영학을 공부한 그는 건설사의 총무·관리 업무를 맡았고 지금도 다른 직원들과 마찬가지로 감색 혹은 회색 빛의 작업복을 입고 근무한다.
그러던 그가 시의 세계에 발을 들인 것은 온라인 동호회 활동이었다. 신 이사는 "온라인 동호회 '시산맥' 활동을 하면서 시인들을 따라 습작을 하다보니 운 좋게 등단하게 된 것"이라며 오프라인 동인 모임에도 나가고 꾸준히 작품을 쓰다 보니 등단까지 하게 됐네요"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 2005년 '문학·선'을 통해 등단한 시인이다.
신현복 이사의 '시 활동'은 한 독일 시인의 말을 떠올리게 한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를 통해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무슨 일을 하며 먹고 사느냐에 관계없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예술을 준비할 수도 있다고. '현실적인 직업'을 가지고서 오히려 예술에 더욱 가까이 갈 수 있는 이유는 예술 역시 삶의 한 방식일 뿐이기 때문이라고.
신현복 이사의 두 번째 시집은 8년 만에 나왔다. 첫 시집 <동미집>을 낼 때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 언제 또 시집을 내겠다는 뚜렷한 목표를 정해 놓지는 않았다. 신 이사는 "업무 외 관심 분야의 사람들과 만나보면 사람 사는 게 똑같다는 걸 새삼 느낀다"며 "그 과정에서 생기는 생각과 느낌을 시로 만들어내는 작업 자체가 의미있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김인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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