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사드(THAAD) 배치 결정에 대한 보복으로 한국산 문화 콘텐츠의 유통을 가로막는 중국 정부의 '한한령(한류 금지령)'이 최근 클래식 공연계로까지 번지고 있다. K팝과 드라마 분야 위주로 직격탄을 맞은 최근 몇 달의 상황이 점차 문화계 전반으로 확산되는 모양새다.
오는 3월 18일 있을 예정이던 피아니스트 백건우의 중국 공연이 최근 취소된 것이 대표적이다. 백건우의 공연을 주관해온 공연기획사 관계자는 20일 "며칠 전 백 선생님이 '사드 영향 때문인지 중국 당국에서 비자 발급을 거부하더라'고 말씀하시는 걸 들었다"고 전했다. 당초 백건우의 협연이 예정돼있던 중국 구이양 심포니 오케스트라는 그의 공석을 메울 연주자로 피아니스트 사첸(Sa Chen)을 선정해 발표해놓은 상태다.
영국의 음악평론가 노먼 레브레히트는 19일 자신이 운영하는 웹사이트에서 이같은 소식을 전하면서 "지난 2000년 중국 무대에 처음으로 오른 한국 연주자인 백건우의 공연이 취소된 것은 중대한 사건"이라고 강조하며 그 원인으로 지난해 말부터 본격화된 한중 간 정치외교적 갈등을 짚었다.
국내를 대표하는 소프라노 조수미 역시 내달 중하순으로 예정된 중국 투어가 통째로 취소 혹은 연기될 위기에 처했다. 조수미의 소속사인 SMI 관계자는 20일 통화에서 "공연을 위한 비자발급 신청이 이뤄진 지 한 달이 넘었는데 여전히 발급이 미뤄지고 있다"며 "통상 열흘 안으로 승인되던 경험에 비춰볼 때 몹시 이례적"이라고 전했다.
한한령 국면이 본격화되기 전까지 조수미는 매년 중국 각 도시에서 활발히 공연활동을 했던 아티스트다. 이번 투어에서도 차이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상하이 심포니 오케스트라, 광저우 심포니 오케스트라 등 중국의 유수 악단들과의 협연이 예정돼있었다. 이 관계자는 "외교부에 지원요청은 해놓은 상태지만 국내 기획사로서 이밖의 뾰족한 대처방안이 없어 난처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말부터 중국의 한한령은 주로 방송, 가요, 영화 등 대중문화 분야에 집중된 모양새였다. 이영애의 드라마 복귀작 '사임당, 빛의 일기'가 중국 내 심의 보류로 당초 예정보다 방영 일정이 미뤄진 것이나 영화 '부산행'이 판매된 지 반년이 넘어서까지 개봉이 늦춰진 게 그 사례다. 공연계 관계자는 "한한령의 불똥이 클래식계로까지 번질 것은 예측하지 못했다"며 "국내 연주자에 대한 수요와 반응이 무척 좋았던 중국 시장인 만큼 앞으로 타격을 완전히 피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오신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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