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김없이 이날도, 새벽 5시 집을 나선 그는 섬진강변을 한 시간쯤 걸었다.
나팔꽃 꽃술을 접사(接寫)해 찍은 휴대전화 사진 보여주며 “아침에 찍은 사진”이라고 그는 말을 이었다. “내는 산 속에 혼자 던져놔도 절대 심심하지 않어요. 심심함을 모르는 사람잉께. 산도 강도 삶의 터전이고, 또 그게 시가 되는 거잉께.”
열두 번째 시집 ‘울고 들어온 너에게’(창작과비평사)를 낸 김용택 시인(68)을 19일 서교동 창비사옥에서 만났다.
1982년 창비에 ‘섬진강1’을 발표한 뒤 34년간 ‘섬진강 시인’으로 불린 김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위로’와 ‘정면’이라는 시학을 이어나간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이전까지 열한 권의 시는 마을과 자연과 사회의 시였고 이번 시집은 오로지 ‘자연인 김용택’이 등장하는 시다. 그는 삶으로 타인을 위로한다.
낙관보다 비관이 넘치는 현실이 김 시인을 위로로 이끌었다. “지금은 정면이 하나인 시대”라고 운을 뗀 그는 “이념이든 지역이든 한쪽만 보게 하고, 단 하나의 정면만 맞서게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모든 이가 울며 집으로 들어오는 세상에 평안을 주고 싶다. 따뜻한 손으로 인간을 감싸는 시가 되고 싶다”고 덧붙였다.
단 두 문장으로 쓴 표제작은 그래서 쓰였다. ‘따뜻한 아랫목에 앉아 엉덩이 밑으로 두 손 넣고 엉덩이를 들었다 놨다 되작거리다보면 손도 마음도 따뜻해진다. 그러면 나는 꽝꽝 언 들을 헤매다 들어온 네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싼다.’(‘울고 들어온 너에게’ 전문) 일상의 시어로 잔잔하지만 그 평범함이 위안을 준달까.
나무와 같은 시는 김용택 시인의 키워드다. 나무는 정면이 없고, 보는 쪽이 모두 정면이라는 것. 또 눈이든 바람이든,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 김 시인은 “어디서 보든 정면인 세상, 현상의 모든 걸 받아들이는 나무와 같은 시정(詩情)으로 위로를 안겨주고 싶다”고 덧붙였다.
2010년 이창동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영화 ‘시’에서 문화센터 강사 ‘김용탁’으로 나선 그의 다음 대사에 시론은 함축돼 있다. “누구나 시를 품고 살아요. 그것을 찾아가는 거예요.” 시를 읽지 않는 시대에 시의 의미를 묻자 김 시인은 “시를 잃은 건 나를 잃는 것”이라며 “시를 읽는 건 큰 의미를 둘 일이 아니지만 말로 쓰이는 시가 사람의 마음에 가 닿을 때 놀라움을 얻게 하고 영감을 준다. 그것이 시”이라고 강조했다.
시 한 편을 남기고자 고통을 감내하는 작시(作詩)의 시간을 물었다. 백발이 서성한 소년의 표정으로 김 시인은 “시 쓰기는 고통스럽지 않다. 시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즐거운 무아지경”이라고 강조했다. 그리고는 끝내 덧붙였다. “사는 게 더 고통스러운 게지, 인생에 견주면 시가 뭣이 중요한가. 안 그렇소? 허허.”
[김유태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에 대해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