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국내 대중문화에서 가장 핫한 분야는 단연 웹툰이다. 한 해 2억여명이 관람하는 영화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웹툰을 본다. 두말할 것 없는, 한국사회가 주목해야 할 일대 문화현상이다. 특이한 건 그런 웹툰이 더 이상 10·20대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어느덧 중장년이 된 1980년대 만화방 세대까지 아우르면서 세대불문 웹툰 전성시대를 열었다. 선선한 가을, 3059세대(30~50대) 등을 사로잡은 세 편의 웹툰을 살펴본다.
“늙음에 익숙해진다는 것은 모든 것에 익숙해진다는 것 같다. 나이 일흔을 몇 달 앞두고 익숙해짐에 나약한 마음이 생겨났다.”
지난 7월 포털 사이트 다음에서 연재를 시작한 ‘나빌레라’는 한 70대 노인이 생의 막바지에 이르러 자신이 과거 꿈꾸었던 발레에 도전한다는 이야기다. “인생의 절반은 새로운 것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늙음이 시작되면 그 모든 것에서 천천히 멀어진다.” 주인공의 담담한 성찰적 독백으로 시작하는 ‘나빌레라’는 대부분의 웹툰들과 달리 빠른 전개를 지양한다. 두 눈을 피로하게 하지 않는 편안한 작화 방식으로 우리 주변에서 볼법한 평범한 노인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어느 날 노인이 장성한 자식들 앞에서 오랜기간 감추어 둔 결심을 말한다. “저... 얘들아... 내가 할 얘기가 있다... 내가 말이다... 발레를 해보려고 한다...” 늙은 아버지의 느닷없는 폭탄 선언에 자식들은 좋아할 리 없다. 그런 그가 짝 달라붙는 흰 발레복 차림으로 거실에 나왔을 땐 중년의 아들이 기어코 고함을 지른다. “이게 무슨 짓이에요! 창피하지도 않으세요!” 노인은 다만 남은 생을 조용히 관조해야만 하는 걸까. 노년의 꿈은 그저 사치에 불과한 것일까. ‘나빌레라’가 넌지시 묻는다.
30·40대 부부들을 겨냥한 육아 웹툰도 있다. 네이버에서 매주 화요일 연재하고 있는 ‘패밀리 사이즈’다. 4남매를 기르는 중인 만화가 부부의 실제 일상을 소재로 한 육아 웹툰이다. 결혼 10년차를 넘기며 제목처럼 ‘패밀리 사이즈’가 부쩍 커진 남지은·김인후 부부의 육아 이야기가 아기자기한 작화로 펼쳐진다. 아내의 넷째 딸 임신 소식으로 출발한(2014년 6월 첫 연재) 이 웹툰은 어느새 시즌2 109화를 넘길 만큼 인기다.
3명의 아들과 막내딸 뒷바라지를 하느라 제 삶은 뒷전이고 늘 녹초가 되곤 하는 주인공. 그럼에도 육아를 통해 느끼는 소소한 행복과 기쁨을 명랑하고 담백한 톤으로 그리며 보는 이들에게 싱그러운 미소를 안겨준다. 이 웹툰이 ‘힐링툰’이라고 불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탑툰에서 화요일마다 연재 중인 ‘청소부K’도 중장년층의 관심을 살만한 인기 웹툰이다. 밀양 여중생 사건을 모티브로 한 이 웹툰은 국정원 요원인 중년 남성의 외동딸이 남자 동급생들로부터 집단 성폭행을 당하고 이내 자살하게 되자 아버지로서 그런 딸의 복수를 감행한다는 이야기다. 10대 자녀를 키우고 있는 중장년층 부모, 특히 어린 딸을 둔 부모 입장에서 단연 관심이 가는 소재다.
가해자 부모들의 적반하장격 태도는 성폭행 피해자들을 바라보는 한국사회의 그릇된 시선들을 거울처럼 비춘다. 이를테면 다음 대사. “니 딸년이 꼬리를 쳐서 내 아들 인생이 엉망이 됐어!” “이 XX야! 앞날이 구만리 같은 내 자식 삶에 큰 오점이 생겼다고! 우리 아들 잘못되면 니들이 어떻게 책임질래?” 최근 수 년간 잇따른 몇 가지 주요 사건들이 떠오르는 건 어쩔수 없는 일일 것이다.
‘청소부K’는 웹툰 ‘프릭’으로 인기를 끈 신진우·홍순식 작가의 콤비작으로 한국 사회의 어두운 폐부를 치밀하게 응시한다. 그런 점에서 킬링타임용에 불과한 여느 웹툰들과 분명히 선을 긋는다. 어두운 색채로 펼쳐지는 이 웹툰은 우리가 은연중에 외면하기 일쑤이던 불편한 진실들을 기어코 응시토록 만든다. 가해자의 부모들을 검사, 장관, 국회의원 등 사회 기득권층으로 묘사하면서 그런 이들에 대한 철저한 응징 서사를 선보여 시원한 카타르시스를 전한다.
[김시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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