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셰프들(14)
-국내 최초의 음식감독 김수진(푸드앤컬쳐 아카데미 원장)
최근 국내외적으로 음식을 다룬 드라마와 영화가 남녀노소 불문하고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하나의 문화 코드로까지 인식될 정도다.
음식을 만드는 셰프, 조리 기구, 재료 등 음식에 관한 모든 것들이 대중의 관심을 받고 있다. 그 중 핫하게 떠오르는 인물이 있으니 그는 바로 국내 최초의 음식감독인 푸드앤컬쳐 아카데미 김수진(61세) 원장이다.
김 원장의 고향은 부산이다. 4남매 중 맏딸로 태어난 그는 어머니의 일을 도와주는 것이 일상이었다. 어머니께서 아버지를 위해 즐겨 하셨던 음식(김치말이국수, 곱창전골, 육개장)들을 어깨너머로 배우기도 했던 그는, 어린 시절 바느질하기 보다는 음식 하는 것이 더 좋았다고 한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서울로 이사 온 그는 24살이 되던 해에 서울이 고향인 7살 연상인 남편을 만나 결혼을 했다. 그의 신혼 생활은 당시 누구나 그랬듯이 고달품의 연속이었다. 맏며느리인 그는 365일 손에 물이 마르지 않을 정도로 호된 시집살이를 경험했다.
설상가상으로 결혼생활 한 지 10년이 지났을 때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이 그를 찾아온다. 그에게 돌파구가 간절히 필요했다. 그래서 시작한 보쌈전문점이 그의 요리 인생 이야기의 시작이다.
남편이 발령을 받아 강원도에 살 당시, 사업을 하던 시동생에게 그가 살던 서울 집을 담보로 대출을 해 주었는데 시동생의 사업 실패로 인해 그는 전 재산을 다 날리게 되었다고 한다. 훗날 다시 서울로 왔지만 그의 가족들은 갈 곳이 없었다.
일을 찾던 그는 1989년 한국여성개발원에서 교육하는 여성소규모창업과정을 신청하였고, 그 곳에서 자신의 적성에 맞는 것이 음식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주변의 도움을 받아 서울 대치동 지하에 보쌈전문점을 개업하였다. 장사한 지 한 달이 지난 후부터 손님들 발걸음이 뚝 떨어졌다. 음식 맛에 대한 문제라고 생각이 든 그는 맛을 찾기 위해 틈틈이 1년 반 넘게 전국의 유명 맛집을 찾아다니면서 배우기 시작했다. 이러한 그의 노력은 헛된 것이 아니었다. 삶을 고기가 매일 떨어질 정도로 대박가게가 됐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자신이 더 좋아하고 의미 있는 일이 무언인가를 찾고 싶었다고 한다. 그 해답은 바로 교육 사업에 있었다. 외식사업과 교육 사업...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자신감도 있었던 그였지만, 그는 과감하게 교육 사업을 선택했다. 2003년에 설립한 김수진 원장의 브랜드라고 말할 수 있는 ‘푸드앤컬쳐 아카데미’가 그것이다.
현재 그 곳에는 든든한 지원군이 그와 함께 하고 있는데 그의 딸인 이혜원팀장이다. 이 팀장은 국제통상학을 전공한 해외 유학파이다. 그는 시간이 날 때면 그의 어머니를 도와 왔는데, 자신의 힘을 이곳에 써야겠다는 마음으로 2004년에 합류하여 10년 넘게 어머니와 함께 하고 있다. 그 역시 어머니를 따라 드라마, 영화의 푸드 스타일링과 외국인 요리체험을 맡고 있다.
우리 음식과 문화를 교육하는 식문화 전문기관의 전문가로 알려지면서, 2004년 우연한 계기로 영화 '왕의남자'의 궁중 연회상 음식 스타일링을 맡게 되었다. 음식감독으로서의 첫 시작이었다.
영화 제작자는 그에게 모형 음식이 아닌 실제 음식으로 스타일링을 요청했고, 그는 완벽하게 연출시켰다. 그러한 영화사 관계자와의 인연으로 영화 '식객', '미인도', '쌍화점', '후궁', '나는 왕이로소이다' 와 드라마 '식객', '발효가족' 등등 영화, 드라마의 음식감독으로 음식자문과 푸드 스타일링 작업을 한다.
그의 대표 작품 중 하나인 영화 '식객'은 150여 가지 이상의 음식을 연출해야 했다. 요리사만 20명이 넘었으며, 보조스태프까지 더하면 그 인원은 엄청났다. 재료비만 1억원이 넘을 정도로 조연급 연기자 몫을 만들어내야 했다.
음식 관련 영화나 드라마에서 음식의 비중은 배우만큼 이나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음식이 단순 소품이 아닌 배우와 함께 주인공이 되기 때문이다.
음식감독으로서 그는 작품이 들어가기 몇 달 전 부터 배우들과 호흡을 맞춘다. 음식이 단순히 보여주고 먹는 것이 아닌, 배우들의 동작을 통해 생명력을 불어 넣을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다. 또한 오감을 느끼게 해야 하는 음식 스타일링 작업은 매순간 그의 몫이기 때문이다.
한류 열풍에 힘입어 아시아뿐만 아니라, 전 세계 사람들에게 우리 음식인 한식도 큰 인기 몰이 중이다.
그는 한국을 찾는 외국인들에게 10년 넘게 우리 음식 문화 체험 교육을 하고 있다. 우리 음식을 통해 우리 문화도 알리기 위해서다.
자신의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이 교육은 찾는 이들에게 멋진 공연 한 편을 선사하는 듯 보였다. 웃음과 재미, 그리고 감동까지 주기 때문이다. 시작부터 끝나는 시간까지 체험하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말은 달라도 음식이 주는 메세지는 같기 때문인 듯하다.
우리 음식의 맛과 멋을 보여 주는 그의 교육을 보면서 음식은 세계인이 공통으로 편하게 즐길 수 있는 문화라는 걸 느끼게 했다.
국내 1호 음식 감독인 그는 26년의 세월동안 오직 음식만을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다.
한식은 한류의 한 문화 콘텐츠로 충분하기 때문에 한식의 인기 또한 절대로 식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한식 전도사로서 한식 세계화, 국제화를 위한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 또한, 한국 음식 체험을 통한 외국인 관광객 유치에도 힘쓰고 있는 그다.
2015년 현재 외국에 있는 한식당 수는 1만4천개 정도라고 한다. 정부는 한식 세계화를 위해 2017년까지 4만개까지 늘리는 목표를 두고 있는데, 그는 이에 발맞춰 한식을 보다 체계적으로 교육시키는 역할과 불고기, 비빔밥 같은 우리 대표 음식을 세계 속에 브랜드화 함으로 우리 농산물 수출 확대에도 기여하고 싶어한다.
'더 이상 한식은 음식이 아니라 문화이다'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동안 그가 국내 영화, 드라마에서 수백 가지의 음식 스타일링 작업을 해 왔듯이 음식의 본고장인 프랑스, 이태리, 일본... 더 나아가 할리우드 영화에서도 그를 만나기를 기대해 본다.
[기획·글=이길남 / 사진=이우성]
NEXT. 한국의 셰프들 열 다섯 번째 이야기 손님은 사찰음식의 대가, 대안스님의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국내 최초의 음식감독 김수진(푸드앤컬쳐 아카데미 원장)
최근 국내외적으로 음식을 다룬 드라마와 영화가 남녀노소 불문하고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하나의 문화 코드로까지 인식될 정도다.
음식을 만드는 셰프, 조리 기구, 재료 등 음식에 관한 모든 것들이 대중의 관심을 받고 있다. 그 중 핫하게 떠오르는 인물이 있으니 그는 바로 국내 최초의 음식감독인 푸드앤컬쳐 아카데미 김수진(61세) 원장이다.
김 원장의 고향은 부산이다. 4남매 중 맏딸로 태어난 그는 어머니의 일을 도와주는 것이 일상이었다. 어머니께서 아버지를 위해 즐겨 하셨던 음식(김치말이국수, 곱창전골, 육개장)들을 어깨너머로 배우기도 했던 그는, 어린 시절 바느질하기 보다는 음식 하는 것이 더 좋았다고 한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서울로 이사 온 그는 24살이 되던 해에 서울이 고향인 7살 연상인 남편을 만나 결혼을 했다. 그의 신혼 생활은 당시 누구나 그랬듯이 고달품의 연속이었다. 맏며느리인 그는 365일 손에 물이 마르지 않을 정도로 호된 시집살이를 경험했다.
설상가상으로 결혼생활 한 지 10년이 지났을 때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이 그를 찾아온다. 그에게 돌파구가 간절히 필요했다. 그래서 시작한 보쌈전문점이 그의 요리 인생 이야기의 시작이다.
남편이 발령을 받아 강원도에 살 당시, 사업을 하던 시동생에게 그가 살던 서울 집을 담보로 대출을 해 주었는데 시동생의 사업 실패로 인해 그는 전 재산을 다 날리게 되었다고 한다. 훗날 다시 서울로 왔지만 그의 가족들은 갈 곳이 없었다.
일을 찾던 그는 1989년 한국여성개발원에서 교육하는 여성소규모창업과정을 신청하였고, 그 곳에서 자신의 적성에 맞는 것이 음식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주변의 도움을 받아 서울 대치동 지하에 보쌈전문점을 개업하였다. 장사한 지 한 달이 지난 후부터 손님들 발걸음이 뚝 떨어졌다. 음식 맛에 대한 문제라고 생각이 든 그는 맛을 찾기 위해 틈틈이 1년 반 넘게 전국의 유명 맛집을 찾아다니면서 배우기 시작했다. 이러한 그의 노력은 헛된 것이 아니었다. 삶을 고기가 매일 떨어질 정도로 대박가게가 됐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자신이 더 좋아하고 의미 있는 일이 무언인가를 찾고 싶었다고 한다. 그 해답은 바로 교육 사업에 있었다. 외식사업과 교육 사업...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자신감도 있었던 그였지만, 그는 과감하게 교육 사업을 선택했다. 2003년에 설립한 김수진 원장의 브랜드라고 말할 수 있는 ‘푸드앤컬쳐 아카데미’가 그것이다.
현재 그 곳에는 든든한 지원군이 그와 함께 하고 있는데 그의 딸인 이혜원팀장이다. 이 팀장은 국제통상학을 전공한 해외 유학파이다. 그는 시간이 날 때면 그의 어머니를 도와 왔는데, 자신의 힘을 이곳에 써야겠다는 마음으로 2004년에 합류하여 10년 넘게 어머니와 함께 하고 있다. 그 역시 어머니를 따라 드라마, 영화의 푸드 스타일링과 외국인 요리체험을 맡고 있다.
우리 음식과 문화를 교육하는 식문화 전문기관의 전문가로 알려지면서, 2004년 우연한 계기로 영화 '왕의남자'의 궁중 연회상 음식 스타일링을 맡게 되었다. 음식감독으로서의 첫 시작이었다.
영화 제작자는 그에게 모형 음식이 아닌 실제 음식으로 스타일링을 요청했고, 그는 완벽하게 연출시켰다. 그러한 영화사 관계자와의 인연으로 영화 '식객', '미인도', '쌍화점', '후궁', '나는 왕이로소이다' 와 드라마 '식객', '발효가족' 등등 영화, 드라마의 음식감독으로 음식자문과 푸드 스타일링 작업을 한다.
그의 대표 작품 중 하나인 영화 '식객'은 150여 가지 이상의 음식을 연출해야 했다. 요리사만 20명이 넘었으며, 보조스태프까지 더하면 그 인원은 엄청났다. 재료비만 1억원이 넘을 정도로 조연급 연기자 몫을 만들어내야 했다.
음식 관련 영화나 드라마에서 음식의 비중은 배우만큼 이나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음식이 단순 소품이 아닌 배우와 함께 주인공이 되기 때문이다.
음식감독으로서 그는 작품이 들어가기 몇 달 전 부터 배우들과 호흡을 맞춘다. 음식이 단순히 보여주고 먹는 것이 아닌, 배우들의 동작을 통해 생명력을 불어 넣을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다. 또한 오감을 느끼게 해야 하는 음식 스타일링 작업은 매순간 그의 몫이기 때문이다.
한류 열풍에 힘입어 아시아뿐만 아니라, 전 세계 사람들에게 우리 음식인 한식도 큰 인기 몰이 중이다.
그는 한국을 찾는 외국인들에게 10년 넘게 우리 음식 문화 체험 교육을 하고 있다. 우리 음식을 통해 우리 문화도 알리기 위해서다.
자신의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이 교육은 찾는 이들에게 멋진 공연 한 편을 선사하는 듯 보였다. 웃음과 재미, 그리고 감동까지 주기 때문이다. 시작부터 끝나는 시간까지 체험하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말은 달라도 음식이 주는 메세지는 같기 때문인 듯하다.
우리 음식의 맛과 멋을 보여 주는 그의 교육을 보면서 음식은 세계인이 공통으로 편하게 즐길 수 있는 문화라는 걸 느끼게 했다.
국내 1호 음식 감독인 그는 26년의 세월동안 오직 음식만을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다.
한식은 한류의 한 문화 콘텐츠로 충분하기 때문에 한식의 인기 또한 절대로 식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한식 전도사로서 한식 세계화, 국제화를 위한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 또한, 한국 음식 체험을 통한 외국인 관광객 유치에도 힘쓰고 있는 그다.
2015년 현재 외국에 있는 한식당 수는 1만4천개 정도라고 한다. 정부는 한식 세계화를 위해 2017년까지 4만개까지 늘리는 목표를 두고 있는데, 그는 이에 발맞춰 한식을 보다 체계적으로 교육시키는 역할과 불고기, 비빔밥 같은 우리 대표 음식을 세계 속에 브랜드화 함으로 우리 농산물 수출 확대에도 기여하고 싶어한다.
'더 이상 한식은 음식이 아니라 문화이다'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동안 그가 국내 영화, 드라마에서 수백 가지의 음식 스타일링 작업을 해 왔듯이 음식의 본고장인 프랑스, 이태리, 일본... 더 나아가 할리우드 영화에서도 그를 만나기를 기대해 본다.
[기획·글=이길남 / 사진=이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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