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년간 소액금융은 세계 빈곤 문제를 해결하는 특효약으로 인식돼 왔다. 사람들은 값싼 선진국 자금을 개발도상국에 끌어와 빈곤층의 소규모 사업에 대출하면 이들이 자립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지역사회도 발전할 것으로 믿었다. 선진국 투자자들도 물고기를 건네는 대신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치는 새로운 금융기법에 열광했다. 이를 제안한 그라민은행의 설립자 무함마드 유누스는 노벨평화상을 받았으며 소액금융 산업은 빈곤국가 개발의 주요 수단으로 부각되면서 일약 700억 달러 규모로 성장했다.
과연 소액 금융기관에게서 대출을 받은 가난한 사람들의 형편은 나아졌을까. 빈곤을 퇴치할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터무니없이 높은 이자가 대출자들을 빚의 수렁에 내몰고 공격적인 대출금 회수 관행은 강제 매춘과 자살까지 발생시키고 있다. 노동집약적인 영세사업을 하는 많은 가정은 자녀를 노동에 투입해 아동노동도 만연하고있다. 10년 이상 소액금융업계에 몸담으면서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추악한 실상을 목격한 휴 싱클레어는 책에서 21세기 신종 고리대금업으로 전락한 소액금융의 실체를 낱낱히 고발한다.
싱클레어는 소액금융가 제도 자체의 맹점으로 인해 빈곤완화에 기여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당장 대출금이 생산적인 용도에 쓰이는 경우는 드물다. 다른 대출금을 갚고 갖가지 공과금을 납부하거나 텔레비전 구입 등 일반적 소비활동을 하는데 탕진해 버린다. 운좋게 어느정도 자립에 성공했더라도 소규모 상점은 손쉽게 대기업의 먹잇감이 된다. 낮은 회수율을 만회하려고 금융기관들은 이자를 경쟁적으로 올리면서 악순환 구조가 만들어진다. 이익극대화가 지상목표인 대형 은행들이 소액금융에 뛰어들기 시작하면서 사태가 더 나빠졌다. 멕시코의 한 유명 소액금융기관은 연 195%의 이자를 받는다. 아이디어는 훌륭했지만 이상은 이상일 뿐이다.
[배한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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