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4일 폐막한 칸 국제 영화제의 필름 마켓에서 ‘큰 손’은 중국이 아니라 한국이었다. 예술영화 판매의 중심인 이 곳에 등록한 한국 바이어는 400명으로 전년 대비 15% 늘었다. 예술 영화의 인기가 퇴조하는 시대적 흐름에 따라 다른 국가들의 바이어는 급감했지만 유독 한국만 증가했다.
칸 영화제 참가한 한 수입업체 관계자는 “경쟁 후보작 19편 중 절반이 영화제 시작 전에 다 팔렸다. 10년 전에 비하면 상상도 할수 없었던 일”이라고 했다.
국내 다양성 영화 시장이 커지면서 예술 영화 수입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시장의 성장은 긍정적이나 과도한 경쟁은 산업에 ‘독’이 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최근 영화진흥위원회가 발표한 ‘2014년 영화산업 결산 보고서’에 따르면, 다양성 영화 관람객은 2013년 370만명에서 지난해 1400만명으로 전년에 비해 4배 가까이 성장했다. 다양성 영화는 영진위로부터 예술영화나 독립영화로 인정받은 작품을 두루 말한다.
다양성 시장의 성장은 ‘아트버스터’의 등장과 맞물린다. 예술과 블록버스터의 합성어인 ‘아트버스터’는 상업영화 못지 않게 흥행한 예술영화다. ‘님아 그강을 건너지 마오’(480만명), ‘비긴 어게인’(342만명)이 대표적이다.
CGV 아트하우스의 이상윤 담당은 “관객의 취향이 다변화되면서 상업영화 일변도의 극장이 변하고 있다. 예술영화에 대한 기본적인 수요층이 넓어지고 있으며 이 추세가 계속 될 것”이라고 했다.
외화 수입업체의 매출도 늘고 있다. 다양성 영화 회사 당 평균 매출액은 2013년 2.7억, 2014년 11.6억으로 전년 대비 300% 증가했다. 과거에는 꿈도 못꾼 ‘대박’도 터졌다. 9일 영화계에 따르면, 수입가가 5만달러(약 5500만원)로 알려진 ‘위플래쉬’는 영화관 입장권 매출로 약 125억원(157만명)을 벌었다. 10만명만 모아도 ‘대박’이었던 몇 년전에 비하면 관객 수요층이 넓어진 요즘은 더 많은 기회가 열려있는 셈이다.
제2의 ‘위플래쉬’, ‘비긴어게인’을 찾는 움직임이 분주해지면서 수입업체간 경쟁이 과열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편당 1만달러 정도 하던 예술영화 수입가는 2~3배 이상 오르고 있다. 2007년만해도 칸 영화제때 세일즈사들이 책정한 입찰 기준 가격 ‘에스킹 프라이스’의 10분의 1 이하를 적어내도 구매가 가능했지만, 올해는 ‘에스킹 프라이스’가 ‘테이킹 프라이스’(최종가)가 됐다.
다양성 영화 상영관 아트나인의 정상진 대표는 “1억 갖고 떡볶이 가게도 못차리는데, 영화판에서는 백억을 벌 수 있으니 너도나도 영화수입업에 뛰어들고 있다”면서 “투기심이 촉발한 과열 경쟁은 이제 막 꽃을 피는 다양성 영화 시장의 체질을 악화시킬 위험이 있다”고 했다.
[이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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