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계 기업의 대표이사로 17년이라는 시간 동안 자리를 유지해온 CEO가 있습니다. 바로 (주)스타키코리아의 심상돈 대표가 그 주인공입니다. 1983년에 처음 보청기 시장에 뛰어들어 약 20여년을 한결같이 ‘고객을 위한 경영’을 펼친 심상돈 대표. ‘스타키보청기’의 한국지사 대표 자리에 앉은 후에도 이 경영철학을 고집했고 그 결과 세계 각 지사들 중에서도 최고 점유율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그의 이야기를 MBN ‘정완진의 The CEO’에서 직접 만나 들어봤습니다. 아래는 인터뷰 전문입니다.
-아 래-
Q. 어린 시절을 회상해 보신다면?
어린 시절, 아버지가 은행과장과 병원을 운영하는 사업을 하셔서 가정환경은 매우 부유했습니다. 그 덕분에 저는 항상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어린 시절을 보낼 수 있었고 성격 또한 외향적으로 자랄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아버지가 병원을 운영하는 모습을 보고 사업가의 꿈을 가지게 되었고 친구들과 어울리거나 경영과 관련된 서적을 읽으며 유년 시절을 행복하게 보냈습니다. 그러면서 사실 공부를 등한시 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제가 하고 싶은 것만 하다 보니 공부와는 점점 멀어졌고 대학 역시 저와는 다른 세상 이야기였습니다. 아버지는 계속해서 대학을 권유하셨지만 저는 ‘사업을 하는데 꼭 대학을 나올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갑작스럽게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그 생각은 180도 바뀌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대학에 들어가 아버지의 한을 풀어드리고자 한 것이죠. 약 1년간을 두문불출하며 도서관에 살다시피 했고 대학에 들어갈 수 있게 됐습니다.
Q. 대학에 들어간 뒤, 어떤 경험을 하셨나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사실 가세도 많이 기울게 돼서 대학생활 내내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공사장에서 일도 하고 페인트 공으로 일하기도 하고 보험영업, 가구 세일즈 등등.. 거의 안 해본 게 없을 정도네요.(웃음)그러다가 군대에 갈 시기가 되어 영어도 배울 겸, 카투사에 지원을 했습니다. 그리고 위생병이 되어 군인의 신분으로 많은 의료기기들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보청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비행기 조종사나 헬리콥터 조종사들에게 난청이 있을 때 처방해 주는 의료기기였는데 참 사람에게 이롭고 의료기기 산업이 첨단 산업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자부심마저 들었습니다. 그래서 군대를 제대하면 꼭 의료기기 사업을 해야겠다고 다짐하게 됐습니다.
Q. 첫 사회생활의 시작은?
군대에서 다짐했던 것을 실천에 옮기기 위해 의료기기 회사에 들어갔습니다. 회사에 먼저 들어간 뒤 경영에 대한 것을 조금 익히고 제 사업을 할 생각이었죠. 작은 의료기기 회사인지라 작은 일부터 영업을 하는 일까지 제가 모두 도맡아서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특히 영업을 나가서는 카투사 시절부터 익힌 전문적인 의료기기에 대한 지식으로 영업을 했고 회사에 남아있는 제고까지 다 팔아 치울 만큼 높은 실적을 올렸습니다. 그렇게 1년 정도를 짧지만 경영에 대한 노하우를 익혔고 독립을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Q. 창업 후, 어떻게 사업을 일궈 나가셨나요?
먼저 사업을 꾸려나갈 작은 사무실 마련 후, 시장조사에 나섰습니다. 어떤 의료기기로 사업을 할지 조사하던 중 머릿속을 스치는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군 생활을 하며 처음 접한 ‘보청기’였습니다. 보청기가 떠오르자마자 저는 당시 보청기 가게가 밀집되어 있는 남대문으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주로 보청기들이 어디서 수입이 되어 들어오는지, 어떻게 판매가 되고 있는지를 면밀히 조사한 후 보청기를 수입해 와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물론 다른 보청기 매장과는 확실하게 차별화를 시도했습니다. 전문가다운 모습과 고객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 흰 가운을 착용하고 판매를 했고 역 앞에서 홍보 전단지를 나눠드리고 심지어 노인정까지 가 발품 영업까지 펼쳤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제품을 사간 고객들은 무상으로 보청기를 수리해 드리고 제품에 만족하지 않으면 환불을 해드리는, 고객들이 원하는 서비스를 원칙으로 실천했습니다. 그랬더니 서서히 고객들의 반응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Q. 사업이 급격하게 커진 계기는?
바로 ‘귓속 형’ 보청기 제조부터였습니다. 당시 우리나라에는 대부분 ‘귀걸이 형’ 보청기를 판매했는데 ‘귀걸이 형’ 보청기는 귀 밖으로 보청기가 보여서 고객들이 많이 부담스러워 했습니다. 이런 고객들의 불편함을 알고 저는 ‘귓속 형’ 보청기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말 그대로 귀 속으로 보청기를 넣어야 했기 때문에 개개인의 귓구멍 모양에 맞게 맞춤제작을 해야 했습니다. 저는 이 맞춤형 보청기를 제조하는 방법을 스스로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수많은 시행착오와 개발 시간이 걸렸지만 포기하지 않고 맞춤형 보청기 제조에 매달렸습니다. 그렇게 기존에 우리나라에서는 찾아보기 힘들었던 ‘귓속 형’ 보청기를 만들 수 있게 되었고 대대적인 홍보를 펼쳤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양산이었습니다. 제조법을 알고는 있었지만 한 사람 당 하루에 고작 3대 정도의 보청기 밖에 만들어 내지 못했기 때문에 고객들의 수요를 맞출 수가 없었습니다. 그 때 우리 보청기 회사 광고를 보고 미국 ‘스타키보청기’ 본사에서 저를 만나보고 싶다며 연락이 왔습니다. 그곳에서 보다 큰 보청기 사업과 보청기 양산에 대한 것을 배우고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양산을 시작할 수 있었고 우리나라 보청기 시장은 ‘맞춤형 보청기’로 판도가 뒤바뀌게 되었습니다.
Q. 스타키보청기 한국지사의 대표가 된 계기는?
위에서도 말했듯이 한국 보청기 시장을 장악한 저에게 보청기 전문 회사인 ‘스타키보청기’에서 무한한 관심을 표시해왔습니다. 제가 한국지사의 대표이사 자리를 맡아달라는 제안도 그쯤 해왔습니다. 처음엔 고민이 되었지만스타키보청기 측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먼저 저와 경영철학이 너무도 비슷했습니다. 고객에게 모든 초점이 맞춰져 있었고 고객들이 원하는 것은 모든 들어주는 그 경영철학 말이죠. 또한 세계적으로 보청기만을 전문으로 하는 기업은 ‘스타키보청기’뿐이었고 그랬기에 대표이사 자리를 승낙하고 본격적으로 본사와 대리점 등등을 운영하고 고객 만족 경영을 실천하게 되었습니다. 환불제도나 무상수리 등의 제도들을 유지하면서 난청인들을 위한 소식지를 발행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고객들에게 다가가니 한국시장 점유율도 점점 올라갔고 시장에 잘 자리를 잡아나갔습니다.
Q. 경영하면서 힘들었던 일이 있었다면?
모두가 힘들었던 IMF 때도 저는 오히려 승승장구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이후였습니다. 98년에 약사법이 개정되면서 의료기기법도 개정이 됐는데요. 의료기기의 모양을 조금만 바꿔도 모두 허가를 받고 판매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맞춤형 보청기를 판매하는 저로서는 정말 날벼락 같은 소식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주저앉을 수는 없었습니다. 밤낮으로 탄원서를 제출하는 것을 시작해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다 한 것 같습니다. 법에 대해 공부도 했고요.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저의 그런 노력으로 다시 법이 개정될 수 있었고 원래대로 보청기를 판매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때를 생각하면 정말 힘들었지만 저를 성장시켜준, 어찌 보면 값진 경험 같습니다.
Q. 아픈 만큼 성장한다고, 그 후 어떻게 회사를 변화시켜 나가셨나요?
더욱더 고객들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기업이 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프랜차이즈를 시작한 것도 그런 이유였습니다. 전국에 보청기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보다 편하게 ‘스타키보청기’를 접할 수 있도록 프랜차이즈를 모집했고 그 결과 전국에 매장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고객들의 불편, 불만 사항을 잘 체크해 두었다가 그것을 문서화 시켜서 하나의 데이터로 만들었습니다. 어떤 고객이, 어떤 상황에 불편해 하는지를 정리하는 것이야 말로 고객들의 불편을 덜어줄 수 있는 제일 큰 고객만족 경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데이터한 것을 매뉴얼화 시켜 전국의 가맹점에 배포한 후 고객들 대응법을 모두 교육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더 좋은 품질의 보청기를 개발하고, 판매하기 위해 우리나라의 보청기 회사와 인수합병을 하고 또 대학들과 협력을 맺어 보청기 품질향상에도 힘썼습니다. 좋은 보청기를 제공하는 것이 고객의 발길을 붙잡는 가장 큰 요인이 될 수 있으니까요.
Q. 고객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그렇게 좋은 품질의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다보니 한 번 우리 제품을 사용한 고객은 타 회사 보청기를 사용하지 않더라고요. 그렇다보니 점점 시장 점유율은 올라갔고 제가 스타키코리아의 대표이사가 된지17년이 된 지금은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무려 32%의 점유율을 차지했는데 점유율 9%대인 2위 기업과는 확연하게 많이 차이가 납니다. 저도 이렇게 ‘스타키코리아’를 찾아주시는 분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각종 사회 공헌 활동을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Q. 앞으로의 꿈이 있다면?
고객과 함께하는 기업이 되는 것이 저의 꿈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저의 노력이 무던히도 많이 필요하다는 것을 압니다. 또한 2015년까지 시장 점유율을 50%로 올려 시장을 완전 장악하는 것도 저의 목표입니다. 보청기를 사용하는 분들에게 보청기는 의료기기가 아닌 신체 일부의 하나입니다. 그렇다는 것을 저도 잘 알기에 더 좋은, 고객들이 만족할 수 있는 보청기를 개발하고 판매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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