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방은 항우가 부친을 인질로 잡아 삶아 죽이겠다고 협박했을 때 태연하게 그 국 한 사발을 나누어달라며 항우를 비웃었고, 초나라 병사에게 쫓길 때 수레가 무거워 달아날 일이 요원해지자 수레의 무게를 덜기 위해 자식들을 세 번이나 발로 차 마차에서 밀어냈다. 사마의는 과부와 고아에게 사기를 칠 정도였으니 음흉함이 조조와 같았고, 제갈량에게 건괵(부녀자들이 의관용으로 머리에 쓰던 두건)을 선물 받는 모욕을 당했을 때도 사자를 환대한 다음 예를 갖춰 환송을 가는 등 뻔뻔하기가 유비에 못지않았다. 결국 그들의 뻔뻔함과 음흉함이야말로 그들이 성공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최근 성공의 원리를 ‘뻔뻔함’과 ‘음흉함’으로 정의한 『후흑학: 승자의 역사를 만드는 뻔뻔함과 음흉함의 미학』(신동준 지음/위즈덤하우스)이 주목받고 있다. 그동안 고전에서 기업경영과 자기계발의 요소를 찾아내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작업을 해왔던 저자 신동준이 이번에는 청조 말 이종오의 기서 <후흑학(厚黑學)>을 분석한 것. <후흑학>은 한마디로 ‘얼굴이 두껍고 뱃속이 시꺼먼’ 사람이 출세하고 성공한다 말한다. 당시 이종오는 열강의 틈바구니 속에서 중국을 구해낼 방책을 깨우치기 위해 사서오경, 제자백가와 24사를 탐독하던 중, 고대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역사상 공명을 떨친 왕후 장상, 호걸, 성현들 중 후흑학을 통해 성공하지 않은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는 것을 깨달은 뒤 <후흑학>을 썼다. 이후 모택동이 이종오의 <후흑학>을 탐독한 뒤 문화대혁명을 일으켰다는 소문이 유포되며 중국 전역에 퍼졌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후흑학을 읽어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승자의 역사인 사서의 기록을 살펴볼 때 분명히 나타난다. 절세의 구세주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승리해야 하고, 승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후흑의 달인이 되어야 한다는 게 바로 이종오가 24사를 통독한 뒤 최종적으로 내린 결론이다.
<후흑학>의 요체를 핵심적으로 압축해 소개하고 있는 이 책은 월왕 구천과 오왕 부차, 유방과 항우, 장량과 한신, 조조와 유비, 손권과 사마의, 장개석과 모택동 등 오월동주로부터 신중국의 개막에 이르기까지 드넓은 대륙을 누볐던 영웅호걸들의 후흑사를 흥미진진하게 기술하고 있다. 이 책을 읽다보면 독자들은 더 이상 후흑을 ‘뻔뻔함과 음흉함을 바탕으로 한 처세술’ 정도로만 치부할 수 없을 것이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큰 뜻을 세우고 그것을 반드시 이룰 수 있는 ‘인간 경영’의 비밀을 배우게 될 것이다.
기사에 대해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