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는 출신성분은 같아도 ‘중고’가 되는 순간 색상에 따라 차별을 받는다. 소비자들이 잘 찾지 않는 색상의 중형차나 대형차는 중고차시장에서 100만원까지 손해 볼 수도 있다. 이는 신차를 구입할 때 나중에 중고차로 처분하는 것까지 고려해 무채색 차량을 선호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기업형 중고차 업체인 SK엔카가 지난 6개월간 홈페이지에 등록된 매물의 색상별 비율을 조사한 결과도 이 같은 사실을 입증한다.
SK엔카에 따르면 중고차시장에서 베스트 색상은 검정색(26.7%), 흰색(21.5%), 은색(21.2%) 순으로 나타났다. 10대 중 7대가 무채색 계열이라는 뜻이다.
정인국 SK엔카 경영지원본부 이사는 “경차와 소형차는 유채색이라도 가격에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지만 중형차나 대형차에서는 같은 모델이라도 100만원까지 차이나기도 한다”고 말했다.
자동차가 색(色)에 울고 웃는 이유를 살펴봤다.
◆한국 사람은 튀면 싫어한다
한국인은 흰색, 회색, 검정색 등 무채색 계통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일반적으로 튀는 것을 싫어하는 성향을 지녔기 때문이다.
또 차 크기가 작아질수록 선호색상은 검정색 계열에서 흰색 계열로 옮겨진다. 검정색은 안정성, 강직함, 무게감, 중후함 등의 이미지를 지녀 대형차에서 인기다.
흰색은 주로 소형차에 무난. 차분한 느낌을 주는 은색은 나서기 싫어하고 무난한 색을 좋아하는 한국들이 좋아하는 색이다.
그러나 경차나 소형차의 경우 예외적인 상황이 발생한다. 경차를 대표하는 마티즈를 살 때는 흰색 이외에 경쾌함을 주는 적색도 좋아한다.
◆선호색은 그때그때 달라요
자동차의 색상은 경기상황과 관련있다는 분석도 있다. 가장 널리 알려진 말은 ‘경기가 좋지 않으면 차의 색상이 알록달록해진다’는 말이다.
경제적으로 어려워지면 개성을 살리기 위해 대리만족을 얻으려다 보니 차의 색상이 다양해지고 경기가 나쁠 때는 출고가 늦어져 비교적 출고가 빠른 무채색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자동차 색상 중 은색은 때가 잘 타지 않아 관리가 쉽고 유행에도 덜 민감해 ‘불황 컬러’로 불린다. 은색은 불경기에 세차비 등 관리유지비를 아끼려는 국내 소비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지난 2002년 월드컵 때는 붉은색 자동차가 많이 팔리기도 했다.
◆무채색 중고차가 팔기 쉽다
중고차시장을 높은 곳에서 바라보면 흰색, 회색, 검정색 등 ‘무채색’ 일색. 흑백 사진을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이다.
이렇게 무채색이 중고차시장을 장악한 까닭은 중고차 딜러들이 팔기 쉬운 무채색을 선호해서다. 개성에 맞춰 판매하기 힘든 중고차의 특성 상 무난한 게 좋다고 판단한 것. 튀는 색상의 중고차는 딜러들이 매입하기를 꺼려한다.
이로써 색상은 중고차 가격에도 영향을 주게 된다. 빨간색 마티즈처럼 일부 예외는 있지만 중형차 이상 차급에서 튀는 중고차는 다른 중고차보다 5~10% 정도 가격이 떨어진다. 판매가 계속 안 될 경우 가격은 더욱 내려간다. 판매를 위해 비용을 들여 도색하기도 한다.
그러나 예외는 있다. 경차와 소형차의 경우 중형차나 대형차보다 색 차별 현상이 심하지 않다.
튜닝된 차를 중고차시장에 내놓을 때는 제값을 받지 못하지만 임자를 만나면 높은 값에 판매되는 것처럼 화려한 색상을 원하는 소비자와 연결되면 오히려 좋은 값을 받을 수도 있다.
게다가 최근 들어서는 BMW 그룹의 소형차 미니, 볼보 C30, 현대 벨로스터, 기아 쏘울 등 개성 넘치는 자동차들이 중심이 돼 기존의 색 관습에서 벗어나 색 혁명을 일으키고 있다. 이로써 색 차별 현상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겠지만 둔화되고, 그 결과 가격 차이도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정인국 이사는 “남다른 개성을 추구하는 소비자들을 잡기 위해 현대 벨로스터처럼 기존의 관념에서 벗어난 퓨전 자동차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신차 색상이 다채로워지고 있다”며 “이에 따라 중고차시장에서도 다채로운 색상의 차들의 거래가 점차 늘어나고, 색 차별 현상도 조금씩 감소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매경닷컴 최기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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