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3월15일~2024년 3월15일. 한국공연문화의 씨를 뿌리는 못자리로 묵묵히 자리를 지켜온 학전블루 소극장의 시간이다. 지난해 학전의 폐관 소식이 알려지며, 역설적으로 그 공간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는 것은 과거 숱한 소극장들이 거쳐온 슬픈 형상과도 비슷하다. 하지만 안녕을 고하는 그 결이 영원한 슬픔 대신 조금은 단단한 기운으로 느껴진다. 아마도 그 공간을 지켜온 이들의 의지가 담겨 있기 때문일 것이다.
서울시 종로구 대학로에 위치한 학전 소극장. 1991년 3월15일 개관 이래로 학전은 33년간 총 359개 작품을 기획, 제작해오면서 수많은 공연예술인들의 성장 터전으로 함께해왔다. 학전블루와 학전그린 소극장은 ‘김광석 콘서트’, ‘노영심의 작은 음악회’ 등 라이브 콘서트 문화의 시발점으로, 또 ‘지하철 1호선’을 비롯해 연극, 대중음악, 클래식, 국악, 무용, 심지어 문예 강좌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는 공연장으로서 역할을 해오며 한국대중문화사에 크고 작은 궤적을 만들어 왔다.
몇 가지 일화도 있다. 김광석 콘서트가 펼쳐졌을 당시, 전국에서 몰려든 팬들을 위해 공연장의 문을 떼 통로까지 관객을 받았지만 그 누구도 불만을 토로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또한 주부들을 위해 낮 공연을 열고 극장 사무실에 아이를 돌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한 것은 지금은 찾아보기 힘든, 그 당시에만 느낄 수 있었던 따뜻한 감성이었다.
2004년부터는 어린이, 청소년을 위한 공연에 집중해, 학전 어린이 무대 ‘우리는 친구다’, ‘고추장 떡볶이’, ‘복서와 소년’, ‘아빠 얼굴 예쁘네요’ 등을 지속적으로 선보이며 척박한 어린이 공연문화의 수준을 높이고, 다양한 세대가 공연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학전 어린이 무대는 문화 소외 지역 어린이들을 위해 전국의 폐교를 찾아가 무대를 설치해 지역 공연을 펼치기도 했었다.
학전은 그렇게 오랫동안 동시대 우리의 삶과 시대정신이 살아 숨 쉬는 소극장 문화를 일궈왔다.
학전이 주최하는 마지막 공연인 학전 어린이 무대 ‘고추장 떡볶이’가 지난 2월24일 공연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그리고 33팀의 가수, 배우들이 ‘학전 어게인 콘서트’를 통해 그간의 여정을 마무리한다. 가수 박학기가 이번 프로젝트의 총감독을 맡았고, 윤도현, 알리, 동물원, 장필순, 권진원, 윤종신, 김필, 데이브레이크, LUCY(루씨), 오존 등이 출연 소식을 알렸다. 2월28일 첫 공연에 여행스케치, 윤도현 with YB허준 무대를 시작으로, 오는 3월11일 ‘학전 배우 데이’에는 설경구, 오지혜, 이정은, 장현성 등 학전의 배우들이 출연 예정이다. 공연 마지막 날인 3월14일에는 배우 황정민과 함께, 학전의 뿌리인 김민기 대표의 트리뷰트 무대가 꾸며진다.
이번에 함께하는 예술인들은 ‘대학로 창작뮤지컬과 소극장 콘서트 문화의 보루인 ‘학전’에서 싹을 틔우고 김민기의 그늘에서 나무로 성장한 우리가 모여 현재의 공연 문화에 대한 안타깝고 아쉬운 마음을, 또 학전과 김민기 선생님에 대한 존경과 감사의 인사를 공연으로 대신하려 한다.’라는 공연 취지를 전했다. 학전으로부터 뻗어간 공연문화의 뿌리가 또 다시 싹을 틔우고 큰 나무로 성장해 나가는, 학전의 의지가 지속될 것이라는 소망을 담은 것이다.
김민기 대표는 학전의 시간을 만들어준 이들에게 “모두 다 그저 감사하다, 고맙습니다”는 마지막 인사를 남겼다. 그리고 ‘학전 어게인 콘서트’를 통해 예술인들은 물론, 학전과 함께 했던 관객들까지 ‘학전다운’ 마지막 여정에 동참하고 있다. 아쉬운 인사말 끝에 슬픔 대신 자리하는 건, 33년이란 세월 동안 실험과 도전을 멈추지 않고 한국공연문화를 성장시킨 이 못자리가 휴한지 끝에 더 좋은 싹을 틔울 것이라는 의지와 확신이다.
[글 시티라이프부 이승연 기자(lee.seungyeon@mk.co.kr)]
[사진 학전, HK엔터프로, 매경DB]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920호 기사입니다]
서울시 종로구 대학로에 위치한 학전 소극장. 1991년 3월15일 개관 이래로 학전은 33년간 총 359개 작품을 기획, 제작해오면서 수많은 공연예술인들의 성장 터전으로 함께해왔다. 학전블루와 학전그린 소극장은 ‘김광석 콘서트’, ‘노영심의 작은 음악회’ 등 라이브 콘서트 문화의 시발점으로, 또 ‘지하철 1호선’을 비롯해 연극, 대중음악, 클래식, 국악, 무용, 심지어 문예 강좌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는 공연장으로서 역할을 해오며 한국대중문화사에 크고 작은 궤적을 만들어 왔다.
몇 가지 일화도 있다. 김광석 콘서트가 펼쳐졌을 당시, 전국에서 몰려든 팬들을 위해 공연장의 문을 떼 통로까지 관객을 받았지만 그 누구도 불만을 토로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또한 주부들을 위해 낮 공연을 열고 극장 사무실에 아이를 돌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한 것은 지금은 찾아보기 힘든, 그 당시에만 느낄 수 있었던 따뜻한 감성이었다.
(왼쪽부터)‘지하철1호선’ 포스터와, 초연 당시 공연 사진(사진 학전)
최초의 기획 프로덕션, 최초의 라이브 뮤지컬, 원작 저작권료 면제, 장기 상설공연, 최초 중국진출 뮤지컬 등 수많은 기록을 남긴 록뮤지컬 ‘지하철 1호선’은, 누구에게나 친숙한 학전의 대표작이다. 김민기 대표는 독일의 아동청소년 극단이 올린 자료를 보고 ‘지하철 1호선’(원작 ‘Line1’)을 올리게 되었다. 김 대표가 우리나라 정서에 맞춰 각색, 번안을 했고, 1994년 초연된 극은 이후 4,000회 공연까지 올리게 되었다. 이 밖에도 ‘모스키토’, ‘의형제’, ‘개똥이’ 등 우리의 정서와 노랫말이 살아 숨 쉬는 완성도 높은 한국적 뮤지컬을 선보이며 창작뮤지컬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었다.2004년부터는 어린이, 청소년을 위한 공연에 집중해, 학전 어린이 무대 ‘우리는 친구다’, ‘고추장 떡볶이’, ‘복서와 소년’, ‘아빠 얼굴 예쁘네요’ 등을 지속적으로 선보이며 척박한 어린이 공연문화의 수준을 높이고, 다양한 세대가 공연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학전 어린이 무대는 문화 소외 지역 어린이들을 위해 전국의 폐교를 찾아가 무대를 설치해 지역 공연을 펼치기도 했었다.
학전은 그렇게 오랫동안 동시대 우리의 삶과 시대정신이 살아 숨 쉬는 소극장 문화를 일궈왔다.
(왼쪽부터)학전 어린이 무대 ‘무적의 삼총사’, ‘복서와 소년’, ‘우리는 친구다’ 포스터(사진 학전)
‘배울 학學, 밭 전 田’이라는 의미답게 학전은 미래 세대와 신진 음악인을 위하는 자리였다. 설경구, 김윤석, 황정민, 장현성, 이정은, 조승우, 방은진 등 학전을 거쳐 간 배우들은 현재 문화계 주역이자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배우들로 우뚝 섰다. 김민기 대표가 한 인터뷰를 통해 “학전은 조그만 곳이라 논바닥 농사는 아니고 못자리 농사다. 못자리 농사는 애들을 촘촘하게 키우지만 추수는 큰 바닥에서 거두게 될 것”(2015, 한겨레 인터뷰 中)이라고 말했듯, 학전이 뿌린 씨앗은 지금 거대하게 자라 또 다른 문화의 뿌리로 자리하고 있다.
그 의지는 계속 이어질 것이다, 학전 어게인
학전블루 소극장에서 열리는 ‘학전 어게인 콘서트’(사진 HK엔터프로)
‘학전 어게인 콘서트’ 공연 사진(사진 HK엔터프로)
지난해 10월, 학전블루 소극장은 오랜 경영난과 김민기 대표의 병환으로 폐관을 결정했다. 그리고 지금 이곳에선 학전과 인연이 깊은 예술가들이 모여 아쉬운 작별 인사를 대신하고 있다. 학전 운영을 더 이상 지속하기 어렵다는 소식을 접한 음악인과 배우들이 학전이라는 공간이 사라지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과 아쉬움을 표하며 한 뜻으로 한 공간에 뭉친 것.학전이 주최하는 마지막 공연인 학전 어린이 무대 ‘고추장 떡볶이’가 지난 2월24일 공연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그리고 33팀의 가수, 배우들이 ‘학전 어게인 콘서트’를 통해 그간의 여정을 마무리한다. 가수 박학기가 이번 프로젝트의 총감독을 맡았고, 윤도현, 알리, 동물원, 장필순, 권진원, 윤종신, 김필, 데이브레이크, LUCY(루씨), 오존 등이 출연 소식을 알렸다. 2월28일 첫 공연에 여행스케치, 윤도현 with YB허준 무대를 시작으로, 오는 3월11일 ‘학전 배우 데이’에는 설경구, 오지혜, 이정은, 장현성 등 학전의 배우들이 출연 예정이다. 공연 마지막 날인 3월14일에는 배우 황정민과 함께, 학전의 뿌리인 김민기 대표의 트리뷰트 무대가 꾸며진다.
이번에 함께하는 예술인들은 ‘대학로 창작뮤지컬과 소극장 콘서트 문화의 보루인 ‘학전’에서 싹을 틔우고 김민기의 그늘에서 나무로 성장한 우리가 모여 현재의 공연 문화에 대한 안타깝고 아쉬운 마음을, 또 학전과 김민기 선생님에 대한 존경과 감사의 인사를 공연으로 대신하려 한다.’라는 공연 취지를 전했다. 학전으로부터 뻗어간 공연문화의 뿌리가 또 다시 싹을 틔우고 큰 나무로 성장해 나가는, 학전의 의지가 지속될 것이라는 소망을 담은 것이다.
김민기 대표(사진 제공 학전, 매경DB)
학전블루 소극장은 오는 3월15일 운영이 종료된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지난 12월 학전소극장을 학전의 역사성과 정체성을 계승한 공간으로 운영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지만,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학전 소극장’을 운영하는 것은 아니다. 학전에선 해당 공간이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어린이와 청소년, 신진 음악인을 위하는 김민기 대표의 뜻을 잇되, 학전의 명칭을 사용하지 않는 독자적인 공간으로 운영해 나가길 바란다는 뜻을 전했다.김민기 대표는 학전의 시간을 만들어준 이들에게 “모두 다 그저 감사하다, 고맙습니다”는 마지막 인사를 남겼다. 그리고 ‘학전 어게인 콘서트’를 통해 예술인들은 물론, 학전과 함께 했던 관객들까지 ‘학전다운’ 마지막 여정에 동참하고 있다. 아쉬운 인사말 끝에 슬픔 대신 자리하는 건, 33년이란 세월 동안 실험과 도전을 멈추지 않고 한국공연문화를 성장시킨 이 못자리가 휴한지 끝에 더 좋은 싹을 틔울 것이라는 의지와 확신이다.
‘학전 어게인 콘서트’
기간: 2024년 2월28일~3월14일(목), 총 20회
시간: 평일 7시 | 주말, 공휴일 3시, 7시 *단, 3/4(월) 공연 없음, 3/14(목) 3시, 7시 공연 있음’
출연진: (가수)윤도현 with YB허준, 박학기, 알리, 동물원, 장필순, 권진원, 유리상자, 이한철밴드, 자전거 탄 풍경, 여행스케치, 노래를 찾는 사람들, 크라잉넛, 하림, 왁스, 김재환, 김필, 데이브레이크, LUCY(루씨), 오존, 김현철밴드, 이두헌(다섯손가락), 윤종신, 한동준, 박창근, 한상원밴드, 웅산, 박시환, 유재하음악경연대회 출신 가수들로 구성된 유재하 동문회, 포크 듀오 시인과 촌장
(배우)‘지하철1호선’ 황정민, 이정은, 방은진, 설경구, 오지혜, 장현성 등 학전 출신 배우들
기간: 2024년 2월28일~3월14일(목), 총 20회
시간: 평일 7시 | 주말, 공휴일 3시, 7시 *단, 3/4(월) 공연 없음, 3/14(목) 3시, 7시 공연 있음’
출연진: (가수)윤도현 with YB허준, 박학기, 알리, 동물원, 장필순, 권진원, 유리상자, 이한철밴드, 자전거 탄 풍경, 여행스케치, 노래를 찾는 사람들, 크라잉넛, 하림, 왁스, 김재환, 김필, 데이브레이크, LUCY(루씨), 오존, 김현철밴드, 이두헌(다섯손가락), 윤종신, 한동준, 박창근, 한상원밴드, 웅산, 박시환, 유재하음악경연대회 출신 가수들로 구성된 유재하 동문회, 포크 듀오 시인과 촌장
(배우)‘지하철1호선’ 황정민, 이정은, 방은진, 설경구, 오지혜, 장현성 등 학전 출신 배우들
[글 시티라이프부 이승연 기자(lee.seungyeon@mk.co.kr)]
[사진 학전, HK엔터프로, 매경DB]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920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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