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DC형 퇴직연금 중도 인출 6만 4,000명…80%는 주거 목적
'퇴직연금 담보대출' 활성화 등 연금 자산 중도 누수 방지 방안 마련
정부가 퇴직연금 중도 인출 요건을 강화한다고 밝혔습니다.'퇴직연금 담보대출' 활성화 등 연금 자산 중도 누수 방지 방안 마련
가입자가 퇴직연금을 불필요하게 깨서 노후 안전판을 불안하게 만드는 일을 줄이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오늘(23일) 고용노동부와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크게 확정급여형(DB·Defined Benefit)과 확정기여형(DC·Defined Contribution)으로 나뉘는 퇴직연금 유형 중에서 회사가 운용을 책임지는 DB형 퇴직연금은 중도 인출이 불가능합니다. 다만 법정 사유에 한정해 담보 대출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DC형 퇴직연금은 법으로 정한 예외적인 사유를 충족하면 중도에 인출할 수 있습니다.
노동자 개인이 민간 금융기관과 계약해 직접 투자상품을 골라서 책임지고 운용하는 만큼 비교적 자율성이 높은 덕분입니다.
퇴직연금 제도의 근거가 되는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에서 정한 DC형 퇴직연금의 중도 인출 가능 사유는 주택구입, 주거 임차, 6개월 이상 장기 요양, 파산 선고, 회생절차, 천재지변 등으로 인한 피해 등입니다.
실제로 통계청이 지난 16일 발표한 '2023년 퇴직연금 통계'를 보면, 지난해 DC형 퇴직연금 중도 인출 인원은 6만 4,000명, 인출 금액은 2조 4,000억 원에 달했습니다.
전년보다 인원은 28.1%, 금액은 40.0% 각각 늘어나며 2019년 이후 내리 줄다가 처음으로 증가세로 전환했습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지난해 52.7%(3만 3,612명)가 주택구입 목적으로 퇴직연금을 중도 인출했습니다. 주거 임차를 사유로 든 인원도 1만 7,555명으로 27.5%로 집계됐습니다.
전체의 80%가량이 주택 및 주거 때문에 퇴직연금을 미리 당겨쓴 셈입니다.
이어 회생절차 13.6%(8,670명), 장기 요양 4.8%(3,045명), 기타 1.2%(755명), 파산선고 0.2%(146명) 등이었습니다.
지난해 DC형 퇴직연금 중도 인출 인원을 연령별로 보면 30대 42.4%(2만 7,016명), 40대 33.3%(2만 1,238명), 50대 15.0%(9,566명), 20대 이하 6.5%(4,154명), 60대 이상 2.8%(1,809명) 등의 순이었습니다.
30·40대 비중이 전체의 4분의 3이 넘는 75.7%(4만 8,254명)에 달했습니다.
노후를 대비하기 위해 차곡차곡 퇴직연금을 적립해야 할 30·40세대가 오히려 주거비용 명목으로 노후 종잣돈인 퇴직연금을 깨서 부동산을 산 겁니다.
이처럼 퇴직연금이 노후 소득 보장 장치의 하나로 뿌리내리려면 일시금으로 찾지 않고 연금으로 받도록 하는 '연금화'가 필요한데, 그러려면 무엇보다 적립금의 규모가 적정수준에 이르러야 합니다.
적립액 자체가 많지 않으면 퇴직 후 시간을 두고 연금으로 찾을 동기도 약하고, 실익도 적은 탓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납입금을 중도에 인출하거나 해지하지 않고 퇴직 때까지 일정 규모 이상 적립금을 쌓아둬야 합니다.
이에 정부는 퇴직연금이 실질적 노후 소득 보장 기제로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중도 인출을 까다롭게 하는 등 개선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습니다.
정부는 연금 개혁 추진계획을 통해 일시금이 아닌 '연금' 수령으로 퇴직연금이 실질적으로 노후생활에 활용되도록 불필요한 중도 인출 요건을 강화하기로 했습니다.
그 대신 퇴직연금 담보대출을 활성화하는 등 연금 자산의 중도 누수를 방지하는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습니다.
중도 인출이 주로 주택구입과 관련된 점을 고려할 때 제도적으로 인출을 완전히 차단하기는 어려운 현실을 감안해 적립금을 보전하면서 주택구입 자금으로 활용할 수 있게 '적립금 담보대출'을 촉진하겠다는 구상입니다.
이와 관련, 전문가들도 노후 소득 보장이라는 퇴직연금의 취지를 살리려면 중도 인출을 억제하는 방안이 꼭 필요하다고 주문합니다.
특히 중도 인출 조건을 재구성하는 등 근본적 해법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합니다.
이를 위해 중도 인출 사유를 해외 연금 선진국처럼 영구장애, 과도한 의료비, 주택 압류 등 '예측 불가능한 경제적 곤란 상황'으로 엄격하게 한정할 필요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제안합니다.
실제로 미국은 사망, 영구장애 등 제한적인 사유로만 중도 인출을 허용합니다.
[조수연 디지털뉴스부 인턴기자 suyeonjomail@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