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Travel]지금이 제철! 거제로 떠나는 맛 여행
입력 2024-12-17 16:28 
(위)거제의 명소 바람의 언덕 (아래)굴양식장으로 빼곡한 내간리 앞바다
생각만 해도 입안에 침 고이는 그곳, 거제
대구가 넘쳐나는 외포항
굴 양식으로 유명한 내간리 앞바다

목덜미를 스치는 차가운 바람에 저절로 목이 움츠러든다. 겨울이 왔다는 말인데, 이 말은 곧 바다에 맛있는 음식이 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지금이 가장 맛있는 바다 맛의 대표 주자인 굴부터 대구를 먹으러 거제로 가자.
나는 그것을 차분하게 입으로 가져간다. 튀김옷과 굴이 내 입안으로 들어간다. 바삭한 튀김옷을 씹을 때의 감촉과 부드러운 굴을 씹을 때의 감촉이 당연히 공존해야 할 식감으로 동시에 감지된다. 미묘하게 뒤섞인 향이 축복처럼 입안으로 퍼져간다. 나는 지금 행복하다.”(「굴튀김 이야기」,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 비채, 2011)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뭐예요?” 누가 이렇게 물어볼 때마다 주저 없이 굴입니다!”라고 힘차게 대답한다. 굴은 레몬즙을 살짝 뿌려 생으로 먹어도 맛있고, 껍질째 구워 먹어도 맛있고, 오일 파스타를 만들어 먹어도 맛있다. 계란탕에 서너 알 넣어도 맛있고, 라면에 몇 개 넣으면 그야말로 끝내주는 맛이 된다. 굴전과 굴튀김은 두말할 것도 없다. 존경하는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도 굴을 좋아한다. 아니 사랑하는 게 느껴진다. 그는 굴에 관한 지극한 에세이까지 썼다.
나는 지금 행복하다.” 이 문장은 얼핏 보면 아주 무미건조하고 덤덤한 표현 같지만, 굴 마니아인 나는 하루키 선생이 굴을 먹으며 얼마나 행복하고 있는지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하루키 선생처럼 나 역시 스테이크나 참치회를 먹으며 ‘와! 정말 대단한 맛이다 하고 느낀 적은 많았지만, ‘행복하다는 감정을 느낀 적은 없었다. 그런데 굴은 ‘행복감이라는 걸 느끼게 해준다. 굴은 그만큼 맛있다.
(좌측 위로부터)겉바속촉의 굴튀김, 향긋한 미나리와 어우러진 굴무침, 푸짐한 굴구이 한 판, 검은 테두리가 선명한 굴이 싱싱하다. (우측 사진)겨울 외포항은 곳곳에 대구가 널려 있다.
겨울을 그다지 좋아하진 않지만(추운 데다, 여기저기 빙판길이고, 외출하려면 이것저것 껴입어야 하는 등 여러 가지 이유가 많다), 오직 굴을 먹을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나는 겨울을 기다린다. 굴을 세계에서 가장 싼값에 먹을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한국에 태어났다는 사실을 감사하게 생각한다(런던과 두바이, 호주와 일본에서 굴 가격을 보고 화들짝 놀랐던 적이 있다).
굴을 이렇게 푸짐하게 쌓아놓고 먹다니
지금까지 내가 가장 맛있게 굴을 먹은 곳은 경남 거제 내간리다. 통영에서 신거제대교를 넘으면 호곡과 녹산, 법동 등지를 지나 거제면 내간리까지 1018번 지방도로가 이어진다. 이 길을 따라가다 보면 해안가에 굴 양식을 위한 지주들이 끝없이 꽂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렇게 굴을 키우는 방식을 ‘수하식(바다 한가운데 양식장을 만들고 밀물과 썰물에 상관없이 항상 물속에서 굴을 키우는 방식)이라고 부른다.
알이 꽉 찬 거제 내간리 굴
나는 예전에 굴을 바닷가에서 ‘캐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여행작가로 일하면서 굴은 ‘키우는 것, 즉 양식하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됐다. 수하식으로 기르는 굴은 알이 크다. 굴은 햇빛을 받으면 성장을 멈추는데 물속에 계속 있기 때문에 알이 쑥쑥 크는 것이다.
서해안 갯벌에서 캐는 굴이 알이 작은 것도 이 때문이다. 개펄에서 자라는 굴은 물이 들고 날 때 햇빛에 노출되는 시간이 많기 때문에 성장이 느려 알이 작을 수밖에 없다. 알이 작다고 해서 맛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속이 단단하고 알 옆에 달린 날개 부분의 털은 크고 긴데, 이 때문에 양념이 잘 스며든다고 한다. 한편 알이 큰 남해안 굴은 구워 먹기에 딱이다. 거제 내간리 해안가를 따라가다 보면 굴구이를 내는 집이 모여있는데 어느 집이나 맛이 다 비슷비슷하다.
굴구이를 주문하면 맛보기로 생굴이 나온다. 곧이어 굴튀김과 굴무침이 가득 담긴 접시가 놓인다. 외국인이 본다면 기절할 풍경이다. 호주를 캠핑카로 여행할 때 굴이 유명한 곳이라고 해서 마트에 갔는데 1더즌(dozen, 12개)이 무려 5만 원이 넘었다. 그래서 그날도 어쩔 수 없이 가장 싼 소고기를 먹어야 했다. 유럽도 가격이 비슷했다. 두바이는 오이스터 바가 1인 100만 원이 넘었다. 일본 히로시마도 굴이 유명한 곳인데 굴 가격이 우리보다 서너 배는 비쌌다.
대구는 입이 크다고 해서 대구다. 우측 사진은 갓 잡은 대구를 널고 있는 어부.
굴을 이렇게 쌓아 놓고서는 개수가 줄어드는 걱정을 할 필요 없이 마음껏 까먹을 수 있다는 건 분명 횡재 같은 일이다. 굴을 까보니 가장자리에 검은 테두리가 선명하다. 네임펜으로 그어놓은 것 같다. 이는 굴이 싱싱하다는 증거다. 굴을 까면 향기가 훅 하고 끼쳐 오고 육즙이 가득한 것이 보인다. 와사비를 살짝 푼 간장에 살짝 찍어 먹으면 그 맛이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다시 하루키 선생을 인용하자면, 하루키 선생이 굴을 다 먹고 식당을 나오면서 이렇게 썼다.
식사를 마치고, 마지막 남은 맥주 한 모금을 비우고, 자리에서 일어나 계산을 하고 밖으로 나온다. 역을 향해 걸어갈 때, 나는 어깨 언저리에서 어렴풋하게 굴튀김의 조용한 격려를 느낀다. 그것은 결코 신기한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나에게 굴튀김은 일종의 소중한 개인적 반영이니까. 그리고 숲속 깊은 곳에서는 누군가 싸우고 있으니까.”(무라카미 하루키)

굴구이를 먹기 위한 준비
하루키 선생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음식은 분명 우리에게 격려를 보내준다. 누군가를 어딘가로 떠나보낼 때 우리는 음식을 함께 먹으며 그를 응원해 준다. 누군가가 힘들어할 때 우리는 그와 함께 음식을 먹으며 따뜻한 위로를 해줄 때도 있다. 차가운 바람 속, 굴이 타닥타닥 익어가는 화롯가에 앉아 나는 오직 행복감으로만 이루어진 순도 백 퍼센트의 행복감을 느낀다. 굴을 먹고 있는 지금은 건너편 자리에 오랫동안 복수를 꿈꾸던 사람이 앉아 있더라도 ‘복수 같은 건 일단 굴을 다 먹고 난 다음으로 미루자 하고 모른 채 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뽀얀 국물의 대구탕은 최고의 해장 음식
거제는 참 먼 곳이다. 먼 걸음 갔는데 굴만 먹고 오기엔 아쉽다. 대구도 꼭 먹어보자. 거제는 국내 최고의 대구 산지다. 한때 대구가 귀하던 시절이 있었다. 1980년대에는 ‘금대구라고 불릴 정도로 비쌌다. 어쩌다 한두 마리가 잡히면 수십만 원에 팔렸다는 기사가 신문에 소개될 정도였다. 그러다 1990년대 중반 거제수협이 대구알 방류 사업에 성공하면서 2000년대 중반부터 외포항으로 대구가 돌아오기 시작했다. 지금 거제 외포항은 전국 대구 물량 30% 이상을 차지한다고 한다.
대구를 실어나르다 잠시 쉬고 있는 사람들
거제 대구가 맛있는 이유는 알을 잔뜩 머금고 있기 때문이다. 12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는 대구 산란기인데, 이때 잡히는 대구는 정말 맛있다. ‘눈 본 대구 비 본 청어라는 속담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원래 산란기에는 어종을 잡지 못하지만 외포항은 대구 산란기에도 조업과 위판이 허용되는 유일한 곳이다. 죄책감 없이 먹어도 된다는 말이다.
대구탕 하면 많은 이들이 ‘원대구탕이 있는 삼각지 대구탕 골목과 광장시장의 ‘은성회집을 떠올리곤 한다. 그런데 마포 서교동에 자리한 춘자대구탕은 서울에서는 드물게 생대구탕을 맛볼 수 있는 곳이다. 사장님이 주말마다 대구 낚시를 하러 다니는 마니아이기도 하고 삼척, 속초, 울진 등지에서 매일매일 생대구를 공수받는다고. 그러니까 월요일에 이 집을 찾으면 운이 좋다면 사장님이 낚시로 직접 잡아온 생대구를 맛볼 확률이 높다는 말이다. 몇 해 전 이 집에서 생대구탕을 맛보고 난 후 내게 최고의 해장국은 복국도 콩나물국도 아닌 대구탕으로 자리 잡았다. 그런데 국내 최대의 대구 산지에서 맛보는 대구탕은 또 얼마나 맛이 있을까.
(위로부터)대구알젓, 미역에 싸서 먹는 대구회무침, 대구를 회무침으로도 먹는다. 대구살과 고니, 알이 푸짐하게 든 대구내장찜
함께 간 일행과 식탁에 앉아 생대구전골과 대구내장찜을 시켰다. 생대구전골은 국물이 뽀얗다. 머리와 몸통, 고니, 알을 넣고 미나리, 마늘 다진 것을 푸짐하게 넣어 끓이면 국물이 곰탕처럼 뽀얗게 우러난다. 맛은 담백하고 시원하고 개운하다. 구수한 맛도 끝에 남는다. 우리는 삼십 년 쌓인 숙취가 사라지는 것 같다”며 국물을 퍼먹기에 바빴다. 국물은 오래 끓여도 짠맛이 나지 않고 혀를 거북하게 하거나 속을 더부룩하게 만들지도 않는다.
대구내장찜도 칼칼하니 맛있다. 살코기가 부서질세라 젓가락으로 살살 집어 입속으로 가져가니 스르르 눈 녹듯 녹아내린다. 다들 희희낙락하며 탕과 찜을 번갈아 가며 먹었다. 무슨 음식이든 현지에서 먹고 여행의 감성이 첨가되면 몇 배는 맛있어진다.
외포항 곳곳에서는 대구를 말려 건대구로 만드는 작업을 쉽게 볼 수 있는데, 부둣가 햇볕이 드는 곳에는 어김없이 내장을 빼고 나무꼬치로 꿴 대구가 널려 있다. 주민들에 따르면 말린 대구를 콩나물, 채소 등과 함께 쪄 먹는 대구찜도 맛있다고 한다. 생대구에서는 맛볼 수 없었던 쫀득한 맛과 말린 생선 특유의 감칠맛을 함께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마산의 아귀찜도 원래는 바닷바람에 말린 건아귀를 사용했다. 다음에는 말린 대구찜을 꼭 먹어봐야겠다.
(위로부터)전국 대구 물량 30% 이상을 차지한다는 외포항의 아침 풍경, 신선이 놀다 간 풍경이라는 뜻의 신선대, 뽀얀 국물의 대구탕
몽돌해변 소리 따라 헤실헤실 풀어지는 마음
거제는 우리나라에서 제주도 다음으로 큰 섬이다. 가장 아름다운 풍광을 꼽으라면 아마도 신선대와 ‘바람의 언덕이 아닐까. 해금강 가는 갈곶리 도로 오른편에 신선대가, 왼편에 바람의 언덕이 나란히 자리한다. 신선대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신선이 내려와 논 곳이다. 그만큼 해안 풍경이 아름답다. 바람의 언덕은 갈곶리 도장포마을 북쪽 해안에 있는 언덕으로 사시사철 바닷바람이 분다고 해서 이렇게 이름 붙었다.
구불구불 이어지는 해안선을 따라 운전해 가다 보면 학동흑진주몽돌해변에 닿는다. 검은색 몽돌이 가득한 몽돌밭 해변이다. 돌은 누군가 왁스 칠을 해놓은 듯 반들반들하게 윤이 난다. 몽돌밭에서는 눈보다 귀가 즐겁다. 바닷물이 밀려들고 나갈 때마다 몽돌이 구르며 동글동글한(이렇게밖에 표현을 못 하겠다) 소리를 만들어 낸다. 이 소리는 ‘우리나라 자연 소리 100선에 선정될 만큼 아름답고 감미롭다.
동글동글한 자갈이 깔려 있는 몽돌해변
‘차르륵 차르륵 파도 몽돌을 굴리는 소리를 듣고 있으니 마음이 헤실헤실 풀어지는 것 같다. 나도 모르게 점점 낙관적인 인간이 되어 가면서 이 세상이 점점 좋아지고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게 여행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이 아닐까.
우리가 언제나 행복하다면 ‘행복이라는 말이 없을 것이다. 불행도 마찬가지. 행복과 불행은 밀물과 썰물처럼, 밤과 새벽처럼 서로 맞물려 있다. 그러니 우리는 긴 안목을 가지고 현재를 충실히 살아가면 된다. 햇빛 가득한 날씨를 즐기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하루를 보낼 것. 인생은 그게 다다.
거제 여행 정보
거제포로수용소 유적공원
아이들과 함께라면 거제포로수용소 유적공원을 추천한다. 한국전쟁의 상처를 되돌아보며 전쟁의 교훈을 되새겨 볼 수 있는 공간이다. 한국전쟁 당시 최대 17만 3,000명을 수용한 거제포로수용소의 역사를 통해 한국전쟁의 면면을 고스란히 살펴볼 수 있다. 북한군이 남침에 사용한 소련제 T-34 탱크를 확대해 지은 탱크전시관을 지나면 거제포로수용소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디오라마관이 있는데 이곳에 전시된 모형들을 바라보다 보면 거제포로수용소의 당시의 상황이 고스란히 눈에 들어온다. 디오라마관을 지나면 경비대장 집무실, 경비대 막사, PX, 무도회장 등 건물 일부가 남아있다. 박물관에는 거제포로수용소에서 입던 옷을 비롯한 생활용품, 무기, 각종 기록물과 영상 자료 등이 전시돼 있다.
거가대교는 장목면과 부산 가덕도를 연결한 4.5km의 사장교다. 웅장한 사장교와 어우러지는 풍경이 장관이다.
장목면 유호리 하유마을에 자리한 내간리에는 원조거제굴구이 등 굴구이집이 많다. 외포항에 자리한 외포효진횟집 양지바위횟집 등에서 대구탕을 맛볼 수 있다.
[글과 사진 최갑수(여행작가)]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958호(24.12.10)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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