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계엄 쇼크' 내수경기 부진 장기화 되나…소비침체·환율 '비상'
입력 2024-12-15 09:27  | 수정 2024-12-15 09:42
10월 생산자물가 소폭 하락 / 사진=연합뉴스
"코로나19 때보다 더 어렵다"…소매판매지수 줄곧 하락세
환율 급등에 위축되는 유통·관광…내년 물가도 '위험'
내수기업들 "불확실성 커, 미래 예측 불허…최악상정 내년계획 수정"
비상계엄 사태 여파로 8년 만에 현직 대통령 탄핵 정국이 도래하면서 연말 특수를 기대하던 내수 경기에도 짙은 암운이 드리우고 있습니다.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돼 정상화의 단초는 마련됐지만, 소비 심리가 살아나지 않은 가운데 경제 불확실성은 여전한 터라 유통업을 포함한 내수기업 전반에 미칠 파장도 적지 않을 것으로 우려됩니다.



한국 경제의 약한 고리로 꼽혀온 내수 경기 침체는 올해 들어 더 두드러졌습니다. 고물가·고금리 속에 실질 가계 소득이 낮아진 탓입니다.

지난달 통계청이 공개한 올해 3분기 소매판매액지수는 100.6(2020년=100)으로 지난해 3분기보다 1.9% 감소했습니다. 2022년 2분기(-0.2%) 이래 10개 분기째 감소세이며, 이는 1995년 관련 통계 작성 이래 최장 기록입니다. 여행과 외식 등이 떠받치는 서비스 소비도 1.0% 증가에 그쳤습니다. 지난 2021년 1분기(0.7%) 이후 14개 분기 만에 가장 낮습니다.

업태별로 보면 백화점의 3분기 소매판매액지수는 121.6으로 2021년 3분기(112.5) 이래 최저치였고, 대형마트(98.0)는 지난해 3분기 이래 4개 분기 연속 100을 밑돌았습니다. 면세점(80.0)도 지난해 1분기 이후 줄곧 70∼80대에 머물렀습니다. 1년째 코로나19 원년인 2020년 수준도 회복하지 못한 것입니다. 한국경제인협회는 내수기업 620개 사의 사업보고서를 토대로 올해 상반기 내수기업의 매출액이 2020년(-4.2%) 이후 처음으로 감소했다고 분석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비상계엄 사태와 연이은 대통령 탄핵 정국으로 소비 심리가 풀리지 않을까 기업들과 자영업자들은 우려하고 있습니다.


지난 2016년 10월 불거진 국정농단 사태 당시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되고 이듬해 3월 헌법재판소가 대통령 파면을 선고한 정치적인 격변 기간 소매판매액지수는 97.0(2016년 4분기)에서 89.7(2017년 1분기)로 추락했습니다.

또 하나의 내수 경기 지표인 소비자심리지수(CCSI)의 경우 2016년 10월 102.7에서 이듬해 1월 93.3까지 떨어졌다가 헌재의 파면 선고 뒤인 4월에야 101.8로 회복한 바 있습니다. 소비자심리지수는 경제 상황에 대한 소비자의 인식을 종합적으로 나타내는 지표로, 100 이상이면 경제를 낙관적으로 본다는 뜻이고 100 이하면 그 반대입니다.

소상공인들은 이미 비상계엄 사태의 후폭풍을 체감하고 있습니다. 소상공인연합회가 지난 10일부터 사흘간 음식·숙박업, 도소매업, 개인서비스업 등에 종사하는 전국 소상공인 1,630명을 설문한 결과 응답자의 88.4%가 비상계엄 선포 이후 매출이 감소했다고 답했습니다.

배추 가격 안정세 전망 / 사진=연합뉴스


비상계엄 사태가 촉발한 환율 불안은 내수 경기를 덮친 또 하나의 위험 요소입니다.

비상계엄 선포 직후 한때 1,440원 선을 뚫은 원/달러 환율은 이후 1,430원 선을 오르내리며 고공행진 중입니다. 그제(13일) 기준 올해 연평균 환율(하나은행 매매기준율·1,362.30원)보다 무려 70원 가까이 오른 셈입니다. 내년도 환율을 1,300원대로 예상한 유통사들로선 급히 사업 계획을 다시 짜야 하는 당혹스러운 상황에 직면했습니다.

해외에서 농수산물과 생필품 등을 수입해 판매하는 대형마트는 수입처 다변화, 결제 화폐 변경 등의 방식으로 비상 대응하고 있지만, 과도한 환율 상승으로 새해 벽두부터 수입품 가격 인상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합니다. 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현재의 환율 상승 여파가 짧게는 1개월, 길게는 3개월 이후부터 반영될 것으로 예상한다"며 "품목별로 차이가 있으나 평균 3∼5%의 가격 상승이 예상된다"고 말했습니다.

대형 전자상거래(이커머스) 업체 한 관계자는 "현재 주요 제조사와 내년도 납품가 협상을 진행 중인데 환율이 너무 많이 올라 판매가에도 변동이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식품·외식업계도 내수 부진이 장기화하는 상황에서 강달러까지 겹쳐 진퇴양난에 빠진 모양새입니다.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을 것으로 우려되는 가운데 원재룟값 상승에 따른 원가 부담이 커지는 상황이 됐기 때문입니다. 한 외식업계 관계자는 "불확실성이 너무 커 내년도 사업 계획을 세울 수조차 없는 상황"이라고 토로했습니다.

유통사를 포함한 내수 기업들은 이미 올해보다 더 나쁜 내년을 대비하고 있습니다.

앞서 국내 3대 신용평가사인 나이스신용평가는 최근 발간한 내년 소매유통 부문 전망 보고서에서 "가계부채 부담 증가와 소비 여력 감소 등으로 내수 부진이 장기화하고 있다"면서 소매유통업의 실적 저하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삼일회계법인도 내년 경제전망보고서에서 금리인하와 수출의 낙수효과로 일부 내수 회복이 기대되지만, 회복 강도가 기대에 미달할 가능성이 높다고 짚었습니다.

특히 소비의 경우 코로나19 이후 감소한 민간 소비가 과거 수준으로 회복하지 못하고 추세를 큰 폭으로 이탈했다며 잠재 성장력 둔화와 가계부채, 고령화 등으로 가계 소비 여력이 줄어 어려운 한 해가 될 것으로 예측했습니다.

여기에 비상계엄 사태, 탄핵 정국에 소비 심리 위축이 지속되면 침체의 늪은 더 깊어질 수 있습니다. 이번 사태의 파장이 얼마나 갈지는 전문가들도 쉽사리 예상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번 사태에 각 기업이 어떤 방향으로 대응하느냐도 변수 가운데 하나입니다.

한국유통학회 회장인 이동일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업계에서는 최악의 상황을 상정하고 시나리오에 따라 대응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이번 사태 이후 열릴 기회를 잡는 전략을 짜는 기업이 있는가 하면 긴축·구조조정 등으로 가는 기업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김경태 디지털뉴스부 인턴기자 dragonmoon202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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