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말 안 들으면 처단'…한 초등학교서 진행된 계엄 수업

담임이 정한 법에 아이들 스스로 법 만들어 무효화
"아이들도 억압에 어른과 똑같은 반응…작은 시민이라 느껴"

비상계엄 사태가 일어난 직후 '선생님 말 안 들으면 처단' 등의 내용을 담은 일명 '김선생님법'을 만들었다는 한 초등학교 교사의 사연이 전해졌습니다.


비상계엄 사태가 국회 표결로 막을 내린 지난 4일 오전, 강원지역 작은 초등학교의 2학년 담임을 맡고 있는 김 모 교사는 간밤의 일을 아이들에게 어떻게 이야기할지 고민하며 교실로 향했습니다.

교실로 들어온 선생님을 보자 한 아이가 "선생님 A가 B를 때렸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이때 김 교사의 머릿속에 '번뜩'하고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김 교사는 아이들을 향해 "안 되겠다. 지금부터 김선생님법을 만들 거야. '김선생님법 1호, 친구가 때리면 같이 때린다' 모두 이 법을 지켜야 하고, 안 지키면 처단당할 거야"라고 말했습니다.

교실 분위기가 순간 푹 가라앉았지만, 아이들은 다시 시끄럽게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김 교사는 다시 "친구 때린 사람 목소리를 들으니까 기분 나빠. 김선생님법 2호. 친구를 때린 사람은 1시간 동안 말을 하지 못한다. 안 지키면 내가 처단할 거야"라며 교실에 선포했습니다.

김선생님법 2호가 선포되자 아이들의 눈빛이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처단이 뭐냐고 묻는 한 아이의 질문에 다른 친구가 "학교에서 쫓아내는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김 교사는 "평소와 같은 학급 생활을 보내던 아이들이 김선생님법을 마주하자 잘못을 저지른 학생이 돼 담임의 눈치를 보게 되었다"며 "교실 전체가 숙연해지는 모습이 어젯밤 포고령을 마주한 자신 같다고 생각했다"고 전했습니다.

김선생님법은 '친구를 때린 사람은 급식을 꼴찌로 먹는다', '수업 준비를 제대로 안 하면 자치 모임에 참여할 수 없다', '거짓말을 하면 점심 놀이 시간 없이 교실에 와서 수업받는다' 등 6호까지 늘어났습니다.

이 법에 따라 자치 모임에 참석하지 못하게 된 2학년 학생들은 6학년 선배들의 교실을 찾아 "선생님이 아이들을 모임에 못 가게 하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얘기했습니다.

6학년 선배들은 미리 선생님과 짜놓은 작전대로 "김선생님을 몰아내자"라고 구호를 외쳤습니다.

아이들은 쉽게 외치지 못했고, 6학년 선배들이 다시 한번 "김선생님을 몰아내자"라고 더 크게 외치자 따라서 소리치며 학생 자치 모임으로 향할 수 있었습니다.

어린이들이 새로 정한 '우리반법'(김모 교사 제공). / 사진=연합뉴스

2학년 어린이들은 이후 '우리반법'을 함께 만들어 김선생님법을 무효화 했습니다.

우리반법이 적혀 있는 종이에는 '김선생님법을 만들 수 없다', '선생님은 바보다', '선생님은 우리에게 맜(맞)아야 한다'라고 비뚠 글씨로 적혀 있었습니다.

김 교사는 오늘(10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아이들이 작아도 (부당한 억압에 대해) 어른과 똑같은 반응을 보인다"며 "'얘들이 뭘 알 수 있을까'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번 일을 통해 어린이 역시 작은 시민이라고 느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아이들은 평소 그래왔듯 놀이를 한 것이지 누굴 때리거나 싸운 것은 아니었다"며 "김선생님법이 교실에서 사라지고 교사와 학생들은 참으로 귀하고 소중한 일상을 알게 됐다"고 덧붙였습니다.

[조수연 디지털뉴스부 인턴기자 suyeonjomail@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