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며야 드러나는 정체성 ‘데코덴티티
젠틀몬스터가 블랙핑크 제니와 협업한 안경과 선글래스 제품들을 보고 살짝 놀랐다. ‘음, 저걸 실제로 착용하고 거리를 활보한다고? 나 같은 일반인은 그걸 쓰면 우스꽝스러워 보일 것만 같았다. 안경과 선글래스에는 탈착 가능한 ‘참(charm)도 함께 구성돼 있었다. 이게 주요 전략 중 하나였다. 몇몇 제품은 품절로, 심지어 웃돈이 붙어 리셀되기도 했다. 바야흐로, 별걸 다 꾸미는 ‘데코덴티티(deco+identity) 세상이다.
새로운 세대의 개인 아이덴티티
이런 시대가 도래하자 또 다른 신조어가 등장한다. 바로 ‘데코덴티티다. 이는 장식을 뜻하는 ‘데코레이션(decoration)과 정체성을 의미하는 ‘아이덴티티(identity)가 결합된 조어다(『친절한 트렌드 뒷담화 2024』(싱긋 펴냄) 참조). 이제 새로운 세대에게는 이 데코덴티티가 곧 개인의 아이덴티티로 여겨지기도 한다. 어떻게 꾸몄느냐가 스스로를 소개하는 결과물이기 때문이다.몇 년 전부터 ‘다꾸라는 말이 들려왔었다. ‘다이어리 꾸미기의 줄임말이다. 나는 이 다꾸 트렌드를 일종의 뉴트로로 해석했다. X세대들에게 다이어리는 청춘의 상징과도 같다. 모바일 캘린더가 없던 시절, 수기로 기록해두는 캘린더 겸 메모장으로 다이어리는 필수였으니까. 당시에는 펜으로 꾸미고, 스티커로 치장하는 다꾸가 한참 유행했다. 물론 지금처럼 전문적인 다꾸라기보다는, 자신만의 노트를 자신의 취향으로 표현하는 소극적 행위의 일환이었지만.
왜냐하면 모두가 꾸안꾸를 따르니, 너무 꾸미지 않은 노멀의 세계가 펼쳐지기 때문이다. 그 탓에 반대 영역에 위치한, 아예 대놓고 꾸미기가 되려 개인의 정체성을 표출할 수 있게 되었다. 다꾸로 시작된 별걸 다 꾸미는 세상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아마도 ‘가꾸 또는 ‘백꾸가 아닐까 싶다. 가꾸, 백꾸는 ‘가방 꾸미기의 줄임말이다. 그러니까 개인 소지품으로 세상에 드러나지 않던 다꾸가, 패션 아이템인 가꾸 혹은 백꾸로 전이되었고, 대놓고 꾸미기 트렌드를 밖으로 끄집어 낸 셈이다. 이 역시 옛것들 중에서 소환되는 것이긴 하다.
토핑경제…다꾸에서 ‘가꾸, ‘백(bag)꾸로 진화
이와 같은 가꾸나 백꾸는 내년 봄까지도 쭉 이어질 거란 전망이다. 왜냐하면 지난 9월에 막을 내린 내년 봄, 여름 컬렉션에서도 이 트렌드가 줄곧 포착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젊은 세대로부터 각광받고 있는 (어머니 세대의) 브랜드인 코치(Coach)가 뉴욕 패션위크에서 굉장히 다양하고 화려하게 꾸며진 가방을 내놨기에 더 그렇다.
전문가들이 2025년 트렌드로 꼽고 있는 ‘토핑경제라는 단어도 이 꾸미기 트렌드를 현상학적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트렌드코리아 2025』(미래의창 펴냄)에 따르면 토핑경제는 본체보다 액세서리 같은 토핑이 더 주목받는 것”을 말한다. 또한 이 설명에 따르면 토핑경제는 동일한 상품이더라도 타인과 다름을 추구하는 경향이 커지면서 생긴 트렌드”이다.
앞서 내가 가장 먼저 일종의 문화적 쇼크를 받았던 젠틀몬스터와 제니의 협업으로 돌아가보자. 이 협업 제품들은 선글래스에 참(charm)을 끼울 수 있는 독특한 형태로 발매되었다. 참을 백에 달아 백꾸를 완성하는 것처럼, 안경이나 선글래스에도 별, 하트 등의 참을 안경 다리에 부착하는 방법이었다. 그러니 자신의 선글래스를 꾸미기 위해서는 2~7만 원 사이 가격인 참을 별도로 구매해야 했다. 그런데 이게 잘 팔렸다. 다이어리, 가방, 신발뿐만 아니라 선글래스 다리 꾸미기까지로 별걸 다 꾸미는 트렌드의 스펙트럼이 넓어진 것이다. 정말 이제는 그 어떤 것을 꾸미지 않으면 안 될 시점에 다다른 듯 해 보인다.
젠지(Z-generation)는 초개인화 시대의 핵심이다. 이들은 모두가 좋아하는 거대한
트렌드보다는, 좀 더 미시적인 마이크로 트렌드를 추구한다. 똑같은 유행 아이템을
가지더라도, 그것 자체가 남들과 다른 자신의 취향이 담기기를 욕망한다. 그것이 바로 커스텀이라는 방식으로 표현되는 것이다.
트렌드보다는, 좀 더 미시적인 마이크로 트렌드를 추구한다. 똑같은 유행 아이템을
가지더라도, 그것 자체가 남들과 다른 자신의 취향이 담기기를 욕망한다. 그것이 바로 커스텀이라는 방식으로 표현되는 것이다.
30년 전 서태지와 아이들이 ‘환상 속의 그대를 부를 무렵 제품 태그를 붙여 둔 채 입고 메던 그들의 패션 스타일을, 또는 원조 아이돌 격인 H.O.T가 ‘캔디 무대에서 착용했던 동화 속 아이템들을 기억하는지. 그 시대의 PCS 폴더폰에는 별, 하트 모양의 스티커들이 덕지덕지 붙어있곤 했었다. 이게 바로 지금의 세대가 호명한 Y2K 감성의 호명이다.
Z세대의 남들과 다른 취향의 욕망, 커스텀 방식
그때도 그랬지만, 지금의 세대는 왜 꾸미기에 열중할까? 사실 여기에서 MZ세대가 아닌 Z세대에 대한 논의가 좀 필요할 듯하다. X세대와 근접해 있는 밀레니얼을 제외한, 더 아래 세대인 젠지는 초개인화 시대의 핵심이다. 이들은 모두가 좋아하는 거대한 트렌드보다는, 좀 더 미시적인 마이크로 트렌드를 추구한다. 물론 최근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한강의 소설에 전 국민이 집중하는 것과는 다른 이야기다.그러니 오해 없기를 바란다. 이들의 초개인화는 단지 스스로의 취향을 존중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이런 연유로 인해, Z세대는 관심사가 각기 다르고, 그것을 받아들이고 표출하는 방식마저 모두 다르다. 수많은 군중 속에 있지만, 그들과 같지 않는 나를 추구한다는 의미다. 이 탓에 똑같은 유행 아이템을 가지더라도, 그것 자체가 남들과 다른 자신의 취향이 담기기를 욕망한다. 그것이 바로 커스텀이라는 방식으로 표현되는 것이다.
꾸미기는 그런 ‘취향의 시대를 대표하는 시대적 트렌드로 자리잡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핫한 제품을 가지기를 희망하는 것 역시 맞지만, 그 물건 자체를 남들과 다르게, 나만의 것으로 보이게 하고 싶은 욕망. 그것이 꾸미기를 다변화하고, 극대화하는 원동력이다.
[글 이주영(라이프스타일 칼럼니스트) 사진 픽사베이 일러스트 게티이미지뱅크]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956호(24.11.26)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