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중요한 건 골프가 아니다 [시시콜콜한 이야기]
입력 2024-11-29 07:00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드라이빙 레인지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로부터 선물 받은 드라이버로 스윙하는 모습. 2017년 2월. 출처 : 트위터
만년 '백돌이' 실력으로 공은 드넓은 페어웨이를 벗어나 좁디좁은 러프와 벙커로 향하기 일쑤입니다. 공을 찾아 뛰어다니다 보면 골프를 치는 건지 등산을 하는 건지 헷갈릴 정도입니다. 이렇게 공과 씨름하다 보면 함께 골프를 치는 일행과의 깊은 대화는 꿈도 꾸지 못하고, 나 자신과의 싸움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인은 클라이언트와 같은 방향으로 공을 보내 단둘이 이동하면서 깊은 대화를 나누면 된다며 저의 고민을 무색하게 했습니다.

최근 대통령실은 윤석열 대통령이 8년 만에 골프 연습을 시작했다고 밝혔습니다. '골프광'으로 알려진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과의 라운딩 대비라고 덧붙였습니다. 골프 외교를 얘기할 때 자주 언급되는 건 일본 아베 전 총리의 사례입니다. 지난 2017년 아베는 트럼프가 당선되자마자 미국을 방문해 순금 장식이 된 황금 드라이버를 선물로 줬습니다. 이튿날 두 사람은 트럼프 소유 골프장으로 이동해 함께 운동을 했습니다. 미·일 양국의 밀월 관계를 상징하는 일화로 꼽힙니다.

하지만, 외교 전문가는 핵심은 골프가 아니라며, 최근 공개된 아베 관련 인터뷰를 그 근거로 들었습니다.

"아베는 트럼프를 만날 때마다 미국 지도를 갖고 갔다. '지난번 만났을 때보다 여기여기에 일본 기업이 투자한 공장이 새롭게 생겼다. 그리고 고용도 이만큼 늘었다'고 설명했다. 특히 7개 경합 주에 대해선 더욱 세밀한 지도를 준비해갔다. 난 이게 가장 트럼프의 마음을 움직였다고 본다." <후나바시 요이치 전 아사히신문 주필>

트럼프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단어는 '비즈니스맨입니다. 철저하게 '잇속'을 차리는 인물이라는 의미입니다. 대부호 출신 대통령에게 황금 드라이버 선물로 환심을 살 수 있다고 믿는다면 순진한 생각일 겁니다.

앞서 말한 전문가는 한국 정부가 이제라도 트럼프 2기에 대비해 부처를 초월한 TF를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미국이 기침하면 전 세계에는 태풍이 붑니다. 경제뿐 아니라 정치·외교·사회·문화 등 미국 정책에 무풍지대인 분야를 찾기 어렵습니다. 협상의 귀재인 트럼프가 골프를 치다 불쑥 방위비 분담에 대한 얘기를 꺼낸다면, 윤 대통령은 어떻게 설득해야 할까요. 관세 폭탄과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폐지가 코앞인데 한국 기업에 미칠 영향은 어느 정도이며 대책은 무엇일까요. 트럼프와의 협상을 통해 우리가 양보할 수 있는 마지노선은 어디까지이고, 또 이를 통해 요청해야 할 이익은 무엇일까요. 1월 12일까지는 채 두 달도 남지 않았는데 고민해야 할 문제는 산더미입니다.

[시시콜콜한 이야기] 외교 안보 분야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부지런히 듣고, 치열하게 고민해서, 쉽게 풀어보겠습니다.


[이성식 기자 | mods@m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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