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보호단체 활동가를 만난 장소는 수원의 도심을 관통하는 도로였습니다. 학교와 주택가 사이의 제법 큰 도로로 자동차가 끊임없이 오가는 곳이었습니다.
이곳을 약속 장소로 정한 이유는 많은 고양이가 차에 치여 죽은 장소였기 때문입니다. 활동가는 이 도로 곳곳에서 고양이가 참혹한 모습으로 발견된 적이 많다”고 말했습니다. 많게는 한 달에 6마리나 발견한 적도 있다며 안타까워했습니다.
고양이는 영역 동물입니다. 원래 살던 공간을 벗어나지 않으려는 습성이 있죠. 고양이는 왜 위험을 무릅쓰고 도로를 건너려고 한 걸까요? 활동가는 원래 살던 공간이 파괴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습니다. 재개발이나 공사로 영역이 사라진 고양이가 먹이를 찾아 도로를 건다는 겁니다. 활동가를 만난 도로 주변에도 재개발 구역이 있었습니다. 활동가는 어미 고양이가 아기 고양이를 물고 함께 길을 건너다 세상을 떠난 적도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지난해 공식적으로 확인된 고양이 로드킬은 38,143건이었습니다. 확인되지 않은 사고까지 포함하면 훨씬 더 많은 고양이가 도로에서 죽었을 겁니다.
아파트 앞에서 발견된 고라니
‘로드킬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무엇인가요?
아마 교외 도로를 달리다 고라니나 너구리가 튀어나와 피하지 못하고 부딪히는 장면을 떠오를 겁니다. 동물은 산과 들, 하천에서 살기 때문에 동물의 생활 영역 주변에 있는 도로에서 사고가 잦을 거라고 예상하는 거죠.
하지만 많은 고양이가 도심에서 죽는다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듯이 로드킬은 교외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닙니다. 도심에서도 로드킬이 꾸준히 발생하고 있고 심지어 고양이만 죽는 게 아닙니다.
동탄 신도시 주변에서 죽은 고라니들 (자료 : 시청자 은수희)
고라니가 쓰러져 있는 사진을 보고 찾아간 곳은 동탄 신도시였습니다. 주변에 수천 세대의 아파트 단지가 밀집돼 있고 그 앞으론 먹자골목이 있어 음식점과 카페가 늘어서 있었습니다.
고라니가 죽은 장소라기엔 어색한 공간이었습니다. 산에 사는 야생동물 고라니가 아파트촌에서 차에 치여 죽었다니요. 그런데 이런 의아한 사고가 이 도로에서만 일어난 건 아니었습니다.
차로 10분 정도 떨어진 오산시의 도로에서도 고라니 사체가 발견됐습니다. 한 마리가 아니라 200m 간격을 두고 두 마리나 쓰러져 있었습니다. 신도시가 생기고 많은 고라니가 교통사고로 죽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설마 도시에서 방심했다간
사실 신도시는 꽤 동물이 로드킬을 당하는 장소입니다.
신도시를 세울 땐 녹지를 없애고 건물을 올리고 도로를 만듭니다. 개발이 끝날 때까지 남은 녹지엔 터전을 잃어버린 야생동물이 모입니다. 안타깝게도 동물은 도시의 잔혹함을 모릅니다. 먹이를 찾아서 혹은 원래 다니던 통로를 (하지만 이미 도로로 변해버린) 따라 걷다가 빠르게 달려오는 차와 부딪쳐 세상을 떠나곤 합니다.
로드킬 발생 위치 (자료 : 국립생태원)
지난해 로드킬이 가장 많이 일어난 도로는 시·군·구도였습니다. 79,278건 가운데 38,432건이 시·군·구도에서 발생했죠. 반면 주로 교외에 있는 국도나 지방도에선 각각 28,780건과 6,439건이 발생했습니다.
2020년만 해도 시·군·구도에서 일어난 로드킬은 689건이었습니다. 하지만 2021년 16,715건으로 늘어납니다. 무려 24배나 증가한 겁니다. 2022년엔 30,711건, 2023년엔 38,432건으로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실제로 사고가 폭증한 건 아닐 겁니다. 몇 년 전부터 지자체가 시·군·구도에서 일어난 로드킬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꾸준히 나왔었고, 최근 들어 집계 방식이 개선되기 시작했습니다. 즉 확인되지 않았던 죽음이 이제야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고 보는 게 타당하겠죠.
현수막의 효과
정부는 주기적으로 동물 찻길 사고 저감 대책을 수립해 사고가 자주 일어나는 구역에 예방 시설을 만들고 있습니다. 생태통로를 만들거나 야생동물 주의 표지판을 세우고 울타리를 설치해 동물이 도로로 넘어오지 못하게 하는 거죠.
하지만 이런 시설은 교외에 몰려 있습니다. 동물 사체가 발견됐다고 제보받은 도심 도로 몇 곳 돌아봤지만, 예방 시설이 있는 곳은 단 한 곳도 없었습니다.
'좋은 냥이 좋은 사람들'이 설치한 족자 모습
동물보호단체 ‘좋은 냥이 좋은 사람들은 지자체와 협력해 경기도에 있는 고양이 사고다발구역에 주의 문구를 담은 족자와 현수막을 걸었습니다.
‘좋은 냥이 좋은 사람들의 대표는 효과가 탁월했다고 말합니다. 대표는 매달 꾸준히 고양이가 죽은 채 발견된 도로에서 족자와 현수막을 걸자마자 사고가 뚝 끊겼다”고 말했습니다. 도심에선 로드킬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방심하는 운전자에게 주의 신호를 주자 큰 변화가 생긴 겁니다.
이상돈 이화여대 환경공학과 교수도 도심 로드킬을 줄이려면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이 교수는 서울 강남에 있는 양재천엔 너구리가 많이 살지만 로드킬이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위치추적장치를 심어 확인해 보니 녹도를 조성해 둔 덕분에 너구리가 녹도를 통해 하천에서 구룡산까지 안전하게 이동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사고다발구역에 울타리를 설치해 동물이 도로로 나오지 못하게 막는 방법도 있습니다. 이 교수는 철제 울타리뿐만 아니라 친환경적으로 빡빡하게 자라는 나무를 심어도 사고를 예방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주의 표지판 설치도 효과적인 예방법으로 꼽았습니다. 그는 로드킬은 대부분 밤에 일어나기 때문에 표지판을 만들 때는 반사판이나 조명을 설치해 운전자가 밤에도 잘 인식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동물 교통사고는 동물뿐만 아니라 사람의 안전도 위협합니다. 동물과 부딪혀 차가 파손되거나 사고를 피하려다가 2차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죠. 사람과 동물 모두의 안전을 위해 도심 로드킬을 줄여야 합니다.
[ 강세현 기자 / accent@mb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