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가 걸어온 역사 속에서 발견된 ‘사이비 과학 우생학의 흔적을 과학사, 의학사, 장애사, 젠더 연구의 관점에서 파헤친 책이 나왔다.
우생학이 남긴 역사 속 흔적
『우리 안의 우생학』
조선시대 지식인들이 민족의 생존을 위한 도구로써 우생학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살펴보는 것을 시작으로 우생학이 산아 제한을 통해 페미니즘과 연결된 과정, 한국의 가족계획사업, 산전 진단기술이 만들어낸 우생학적 공포, 우생학의 피해를 입은 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펼친다.『우리 안의 우생학』
불과 50년 전 한국에선 불임수술을 국가가 강제할 수 있었다. 1973년 모자보건법이 처음 발효됐을 당시 제9조 시행령에 따르면, 특정 유전병이 있는 경우 의사는 보건사회부장관에게 불임수술 대상자의 발견을 보고해야 하고 보건사회부장관은 그 환자에게 불임수술을 받도록 명령할 수 있으며, 그 명령을 통해 불임수술을 강제해야 했다.
인권 단체들의 거센 비판의 목소리가 빗발쳤지만 사회적 합의는 쉽게 이뤄지지 않았다. 결국 20여 년이 지난 뒤에야 이 조항은 폐지됐다. 하지만 장애인단체들의 반발에도 여전히 장애 태아의 낙태를 합법화하는 조항은 현재까지 유지돼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책은 이처럼 유전적으로 적격과 부적격을 나누는 ‘우생학의 그림자를 생생히 보여 준다.
글로벌 위기 속 다시 보는 잃어버린 30년
『일본의 30년 경험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일본의 30년 경험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시라카와 마사아키 지음 / 박기영·민지연 옮김 / 부키 펴냄
글로벌 금융위기 와중인 2008년에 취임해 아베노믹스에 저항하다 2013년에 물러난 시라카와 마사아키의 회고록이다. ‘매파 성향인 그는 5년 재임 중 소극적인 통화정책으로 거센 비판을 받았던 인물이다. 2008년 10월 31일과 12월 19일 두 차례에 걸쳐 정책금리를 0.2%포인트씩 내려 0.1%로 끌어내렸으나 인하 폭이 유럽과 미국의 중앙은행보다 작았고, 늦장대응이라는 비판도 일었지만 그는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1989년 마지막 거래일 닛케이지수는 3만 8,915포인트를 가리켰다. 이 수치엔 거품이 잔뜩 끼어 있었다. 지수는 보란 듯이 미끄러지더니 1992년 10월 18일에는 1만 4,309포인트까지 주저앉았다. 최고점 대비 60% 이상 폭락했다. 뒤이어 부동산 버블 붕괴가 벌어졌다. 1990년 이후 30년은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이라고 불린다. 돈을 무한정 푸는 ‘아베노믹스도 결국 해법이 아니었다. 시라카와 마사아키는 장기간에 걸쳐 일본의 물가가 계속 하락한 것은 일자리 유지 대가로 제한된 임금 인상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 책은 글로벌 위기를 직면한 세계가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을 반면교사 삼아야 한다는 점을 피력한다.
[글 송경은 매일경제 기자] [사진 각 출판사]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953호(24.11.05) 기사입니다]